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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에다 세금까지 받아 가는 

‘민간’ 회사

- 버스 완전 공영제가 필요한 이유


세연┃경기도당 대표



분명 ‘공공서비스’인데, 이미 민영화됐다고? 우리 생활 곳곳에는 이런 게 널려 있다. ‘공공부문’은 선험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다. 그 모든 게 상품으로 판매될 수도 있고, 국가와 공동체가 직접 책임지고 공급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결국 힘과 힘의 대결이다. 이번 호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생활 속 공공 두기>는 일상에 스며든 민영화‧사유화를 파헤치고, 공영화로 우리 삶과 이 사회를 재편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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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하나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대중교통 관련 세계 각국의 대응과 시사점에 대한 보고서다. 눈길을 끈 대목은 대중교통 이용에서의 젠더‧연령‧계급 지표에 관한 분석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노동자의 비율이 약 25%인데, 이들은 대면 노동을 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로 대부분 저임금 노동자다. 코로나19로 자가용 이용이 증가한다고 하지만, 이는 ‘자가용 소유자’들의 이야기다. 보고서는 ‘저소득층‧여성‧청년‧비(非)백인의 자동차 소유 비율이 낮고, 특히 저소득층 여성일수록 확연히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이들의 대중교통 의존율은 높을 수밖에 없다. 가령 미국 연방정부의 “필수 노동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여성 일자리 1/3이 ‘필수 직업’으로 지정돼 있어 코로나 시기에도 계속 이동해야 하므로, 대중교통은 안전하고 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9년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자가용 이용률은 28.4%인데 비해 여성은 9.8%에 불과하다.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격차도 확연하다.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인 사람의 자가용 이용률은 1.6%에 그쳤지만, 500만 원 이상인 사람의 22.5%가 자가용을 탄다. 결국 저소득‧여성일수록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대면접촉을 꺼리는 코로나19 시대라지만, 콜센터나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집단감염에서 드러나듯 전염병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많다. 이들 중 상당수가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는 캡티브 라이더(Captive Rider: 대중교통 외에 다른 이동수단이 없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미국과 유럽 각국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대중교통 운송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이나 보조금 지급 등 지원책을 펼쳤다. 또한 대중교통 노동자들의 고용 유지와 임금 보전, 승객과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조치를 시행했고, 영국의 경우 민영화됐던 철도를 다시 국유화했다.



코로나 시대, 

대중교통에서도 피해 보는 사람들


한국의 상황은 미국이나 유럽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견된 1월 3주 차 기준으로 3월 1주 차까지 버스와 도시철도는 35.4%,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는 65%까지 이용률이 줄었다. 이후에는 조금씩 회복됐지만, 수도권 확산세가 두드러진 8월에는 서울의 경우 작년 대비 버스 승객이 무려 44%까지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교통을 꼭 이용해야 하는 승객들과 버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철도‧지하철처럼 공기업이 운영하는 곳이나, 적자가 발생해도 지자체가 보전해주는 준공영제 버스의 경우, 이용률이 떨어져도 운행에 큰 변동이 없다. 하지만 전적으로 민간이 운영하는 버스 노선에서는 승객 감소를 이유로 대대적인 감차 운행이 진행됐다. 경기도의 경우 3월에는 시내버스의 약 30%, 공항‧광역버스의 약 70~80%가 이렇게 감축 운행을 실시했다. 민영제로 버스를 운영하는 대다수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이나 대도시에 비해 기차나 지하철처럼 대체할 만한 대중교통수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의 교통약자들은 이동권에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버스 노동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버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 때문에 초과 노동으로 부족한 수입을 메워야 겨우 생활이 가능한데, 자본의 일방적인 감축 운행과 휴직 권고, 구조조정 등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문제의 핵심: 버스 사유화


이렇듯 코로나19 시기에 대중교통에서조차 노동자들과 교통약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한국 버스 운영체계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한국의 버스 운영 형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철도‧지하철처럼 정부가 버스와 노선권을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는 ‘공영제’다.


둘째는 ‘민영제’로,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버스 운영 형태다. 이 경우 버스회사가 노선권을 소유하고 운영을 맡는다. 하지만 민영제로 운영하더라도 버스는 대중교통이기 때문에, 적자가 나도 운행을 중단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보조금으로 적자를 보전해주는데, 각 지자체는 매년 많게는 수천억 원씩 민간버스회사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셋째는 ‘준공영제’인데, 이는 다시 ‘수입금 관리형’‧‘위탁관리형’‧‘노선입찰제’로 나뉜다. 먼저, 서울 등 9개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수입금 관리형 준공영제’는 버스회사가 노선권과 운영권을 모두 갖고 운송수입금을 공동으로 관리‧배분하는 형태다. 운송수입 총액이 운송비용보다 적으면 해당 비용을 지자체가 지원한다. 지자체가 버스회사 경영이윤까지 보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민영제보다 더 자본에 유리한 제도로, 보조금 전용이나 횡령‧비리 등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위탁관리형’은 정부나 지자체가 노선을 소유하되 운영은 버스회사에 위탁하고 특정 노선에 대한 차량 구입‧손실 보상 등 소요 재정을 지원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경기도가 처음으로 시행하는 ‘노선입찰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노선권을 갖되, 입찰로 선정한 버스 사업자에게 일정 기간 해당 노선의 운영을 맡기는 것이다.


철도‧지하철과 마찬가지로, 버스 노선은 공공재다. 하지만 한국에서 버스 노선권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사유재산’으로 돼 있다. 전파나 물, 공기처럼 공공의 것이어야 할 버스 노선권을 개인이 소유하고,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노선권을 정부나 지자체가 소유하는 ‘노선입찰제 준공영제’ 방식은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노선입찰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홍보하는 ‘업체별 경쟁을 통한 서비스 개선’은 적어도 한국에선 가능하지 않다. 지역마다 토착 세력이 오랜 세월 버스회사를 장악하고 담합하면서 이미 과점시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공공성의 확대와 강화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노선입찰제를 시행하는 영국 런던의 사례를 보면, 심야시간대와 주말 운행을 줄이면서 공공성은 약화되고 연간 수송 인원도 대폭 감소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급격히 악화된 점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버스업의 특성상, 자본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버스 노동자들을 최대한 착취한다. 특히나 자본과 이해를 같이 하는 어용노조가 버스 현장의 다수를 점한 한국에서,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는 불 보듯 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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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페이스북]



시민에게 부담 전가하는 정부


이 와중에 정부는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버스 등 대중교통은 지방 사무’라는 핑계를 대며,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재정 확대나 운영체계 전환보다는 요금 인상 등으로 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한다.


이는 지난 2019년 5월 버스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당시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이하 ‘자노련’)은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손실 임금 보전과 정년 보장, 추가인력 확보를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 물론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제한과 인력 충원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그간 주 80시간에 이르는 추가 노동과 수당 중심 임금체계로 버스 노동자들을 쥐어짜 막대한 이익을 얻었던 버스 자본이 져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행태를 용인한 게 대다수 버스 현장을 장악한 자노련이었다. 작년 자노련의 파업 압박은 실제로는 자본의 파업을 대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버스 자본을 편들고,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했다. 결국 요금 인상과 버스 자본에 대한 보조금 추가 지원, 준공영제의 전국적 확대를 대가로 파업은 철회됐다. 그해 9월 경기도는 버스 형태에 따라 각각 200원에서 450원까지 요금을 대폭 인상했다. 경기도 하루 평균 버스 이용자 수가 374만 3천 명 정도임을 고려하면, 요금 인상으로 하루에만 20억 원 이상의 돈이 도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추가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이 돈은 고스란히 민간 버스회사의 금고를 채운다. 대부분의 버스를 민간이 운영하는 경기도처럼 요금을 올리든, 준공영제인 서울처럼 세금으로 지원금을 확대하든, 결국 시민의 돈으로 버스 자본의 배를 불리는 것이니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한국의 ‘버스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그린뉴딜’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전기‧수소차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자동차 자본을 살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의 90%가 상위 20%에게 돌아갔고,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전기차를 충전하는 전기를 정작 화석연료로 만드니,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크지 않다. 한정된 자원을 대중교통 공공성 확보가 아닌 자동차 지원에 쏟는다면, 비수도권‧저소득층‧여성 노동자‧청소년‧노년층 등의 이동권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인 버스의 공공성을 살려서 모든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버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버스 ‘완전 공영화’가 필요하다. 사유화된 버스 노선권을 공공이 되찾기 위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불량업체의 버스 면허를 취소하고, 노선과 운영권을 회수해야 한다. 사업성이 없다고 방치하거나 배제한 노선을 지자체가 직접 운영해야 한다.


정부는 항상 ‘재정이 부족하다’고 변명하지만, 이 역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연간 14조 원이 넘는 “교통시설 특별회계”는 토건업체의 배를 불리는 도로 건설 사업이 대부분이다. 민간 버스회사 이윤을 보전해주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세금도 있다. 이 재원으로 공공 대중교통 지원을 대폭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버스교통에 대한 공적 책임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공공교통네트워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버스교통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 비중은 서울 시내버스의 경우 16%에 불과해, 미국 휴스턴(79%)이나 LA(67.4%), 뉴욕(60%) 등에 비해 대단히 적었다(스페인 마드리드(41.4%), 호주 시드니(40.4%)의 경우에도 서울보다 재정지원 비중이 훨씬 높았다).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모두를 위한 버스 완전 공영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 참고자료


- 이영수, <문재인 정부 대중교통정책 2년 평가와 개선과제>, 사회공공연구원, 2019년.

- 이영수, <코로나19가 대중교통에 미친 영향과 각국 대응의 시사점>, 사회공공연구원,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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