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8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9.01 11:40

화폐 원천은 화폐공동체 구성원

금융사회화의 핵심, 화폐권력을 민중에게


송명관┃사회화전략팀


금융의 사회화를 말하기 전에 금융이 무엇이고, 사회화가 무엇인지 짚어보자. 금융은 돈을 융통하는 것, 즉 빌려주고 빌리는 것이다. 돈을 빌린 사람은 자신의 돈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부족한 물자를 구매할 수 있고, 빌려 쓴 노동력에 대해 사용료를 지급할 수 있다. 그리고 빌려준 사람은 그 힘을 준 대가로 약속한 보상을 받는다.

다음으로 ‘사회화’의 의미를 조금 더 넓혀 생각해보자. 말 그대로 “개인이 알아서 그냥 하는 비가시적인 무엇”이 아니라 “집합적 관계를 통해 나를 비롯한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것”, 이렇게 ‘사회화’의 의미를 정의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금융의 사회화는 단순히 개인들이 서로의 유대감 속에서 빚을 지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사회적이며, 집합적이다. 왜냐하면 지금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것은 국가에 의해 보증되는 상징물이며, 금융에서 발생하는 채권 채무관계는 명료한 법률적 형태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도화 된 금융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막대하다. 유휴자본이 생산에 투자될 수 있도록 만든다. 그것도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자본을 조달하게 만든다. 대규모 건설, 토목, 조선, 플랜트 설비에 투입되는 돈을 모두 개인 혼자 감당할 순 없다. 그래서 은행이 필요하고 이 은행을 관리해주는 중앙은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중앙은행은 다시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국가권력은 화폐공동체를 이루는 인민의 의지로부터 수립된다.

이처럼 돈이 융통되는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리가 행하는 모든 생산 활동의 원천이 국가권력을 매개로 해서 인민의 집단적 능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돈은 이 능력을 전달해주는 전달자다. 그래서 화폐, 즉 돈은 본래적 가치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상대적 관계로부터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화폐가 표현하는 숫자싸움은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 숫자들을 만들어낸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금융의 사회화는 이 힘을 되찾는 것에 있다.


기업특혜․임금결정 모두 자본가 논리

다음 그림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있는 돈, 즉 화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리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중앙은행과 재무부의 대차대조표를 통합하면, 국채를 매개로 발행된 화폐의 원천은 결국 그 화폐공동체 구성원들이 내는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조세기반 화폐체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8-35.jpg

그런데 이 세금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만약 거둔 세금이 이미 정부한테 있다면 굳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금의 실체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돈이 아니다. 미래에 거둬들일 돈이다. 앞으로의 경제활동을 통해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돈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미래조세의 실체는 생산력, 경제력, 더 나아가 사회통합력, 심지어 군사력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왕들이 자신이 지배하는 영토에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왕이 군사력으로 영토를 보전하고 사회통합력으로 원활한 생산 활동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실패한다면 왕이 발행한 화폐는 그저 쓸모없는 장식물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이 미래조세가 상징하는 힘은 생산력부터 사회통합력, 군사력까지 포괄하는 매우 큰 집단적 개념으로서 화폐주권의 원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엔 왕이 이 힘들을 독점했다고 한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민주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집단이 이를 통제하고 관리한다. 그래서 화폐에 대한 접근을 공평하게 배분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화폐주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익추구를 위해 이 힘을 독점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며, 심지어 이 힘의 원천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차등적으로 배제하기도 한다. 흔히 ‘화폐권력’이니 ‘금융권력’이니 하는 말들은 이런 힘을 위임받은 권력집단이 특정한 세력과 결탁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계급투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화폐권력의 원천은 화폐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인데, 그로부터 만들어진 화폐에 대한 접근권과 분배규칙은 특정 계급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 기업들에게 특혜성 정책자금을 공급해 주거나, 임노동 관계에서 기업의 수익에 근거해 임금을 결정하는 자본가들의 논리는 모두 화폐의 분배규칙을 자본가계급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손실의 사회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대마불사라는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다. 화폐에 대한 접근권이 차등적으로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순(화폐의 원천은 화폐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나오지만 화폐의 분배규칙과 접근권은 특정 계급에 의해 독점된 현상)을 짚어내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

8-37.jpg

국가 돈,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만큼이나 사회화된 영역이 없을 것이다. 대규모의 생산을 위한 자금 조달은 사회화된 방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간자본이 성장하지 못했거나 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큰 사업들은 국가에서 직접 그 생산을 담당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본주의가 이식된 대부분의 국가들이 직접 생산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래서 국가가 취하는 재정, 조세, 통화 정책은 자본과 노동의 재생산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는,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2008년 금융위기의 여진들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가져온 세계적 변화를 흔히 언론에서 새로운 3저 현상(저금리-저물가-저성장)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인구학적 변화를 일본화(japanification)라 칭하면서 저출산-고령화 담론을 이야기 한다. 묵시록적인 이 담론은 지금 위기의 모든 책임을 세대의 변화, 인식의 변화에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대안도 세대 간 양보나 인식의 전환 등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재생산의 위기는 노동에만 있지 않다. 자본에게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은 엄청난 금융 부실자산에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고, 이도 모자라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돈을 찍어 메웠다. 사회화 된 금융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을 동원했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 이 권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화폐주권이라 표현되는 인민 전체의 힘이다. 손실의 사회화라는 현상 뒤엔 이런 화폐권력의 왜곡된 실체가 숨겨져 있었다.

이젠 국가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직접 개입하여 식별하고 공공투자를 이끄는 방식으로 재생산에 개입해야 한다. 국가는 더 이상 시장을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라 생산과 분배를 책임지는 주체로 바뀌어야 한다.

복지재정을 논할 때 마다 등장하는 “재원은 어디서?” 라는 말은 국가는 기본적으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에 돈이 없는 걸까? 국가의 권능에 의해 발권되는 화폐가 국가 수중에 없다는 건 아무리 봐도 어불성설이다. 국부펀드 규모만 100조이고,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만 해도 400조다. 설령 이 돈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고정된 돈이라면, 공공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된다. 국민연금 500조가 쌓여 있는데 이 돈을 국가가 30년 장기국채로 조달하는 건 어떨까? 주식시장의 출렁임에 따라 수조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 이 기금을 국가재정으로 안전하게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국민연금의 성격이 노후보장기금이라면 이것을 국가재정에 투자하여 더 나은 노후복지를 사회적으로 건설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투자일 것이다.

첨언하면 이것이 일본이 했던 방식이다. 국내 연기금들이 일본국채의 주요한 매수자였고, 이 자금순환을 통해 일본은 20년 넘게 버텨왔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보면서 GDP 성장만을 위해 쏟아 부은 재정투여가 야기하는 부정적 요소들도 확인했다. 토건 사업에 들어간 돈이 모두에게 평등한 분배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서 생산과 재생산의 사회화를 전제하지 않는 금융의 사회화는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케인즈식 정부투자론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조달된 돈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다. 4대강 사업처럼 토건 재벌들한테 몰아주거나 사회적 효용은 불확실한 채 운영비용만 늘리고 있는 애물단지를 만들어선 곤란하다. 각종 국제행사를 치르기 위해 지었던 경기장, 박람회장, 전시물 등이 일회성 행사가 끝나고 지자체 재정을 좀먹는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격하고 있다. 과연 누굴 위해 돈을 뿌릴 것인가? 돈은 얼마든지 있다. 단지 우리가 되찾지 못했을 뿐 이 돈을 관리하는 재정정책, 조세정책, 통화정책은 자본의 재생산을 지탱하면서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금융 사회화의 목표는 이 권력을 되찾는 것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