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8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9.01 11:49

이데올로기 투쟁을 선포한다


박선봉┃경기


‘문화’는 나에게 무거운 짐이자 숙제다. 여러 부문운동 중에 하필 문화를 선택했는지 후회할 때가 많다. 다른 부문운동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만 문화운동은 아주 취약한 부분이 있다. 바로 이론 영역이다. 이론이 부족하다보니 정책 생산이 어렵고, 정책 생산이 안 되다보니 문화운동은 항상 그 모양 그 꼴이다. 그래서 문화패는 문 안에 못 들어가고 문 앞에서 그치고 만다.

기관지에 문화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노동자문화운동이 죽을 쓰고 있고, 노동자 문화패 찾기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워진 상황에서, 노동자문화운동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이 근처에서 겉돌고 있는 것이 현재 내 처지다. 특출한 이론이나 정책적인 대안도 없다. 그렇다고 이전에 썼던 글들을 우려먹으려 해도 지금 상황과 맞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래도 주변에 보는 눈이 있는데 명색이 조직의 기관지에 대충 끼적거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교수 중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모 교수님에게 혹시 문화이론 연구자를 소개해 줄 수 없냐고 했더니, 아마도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문화이론만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없을 거라고 한다. 정말 이래도 되는지 성질도 나고 답답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없는 시간을 쪼개고 녹슨 머리를 굴려보는 수밖에. 할 수 없이 인터넷 서점을 뒤져 문화이론 관련 책을 몇 권 샀다. 이렇게 장황하게 넋두리를 하는 이유를 다들 눈치 챘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쓸 문화칼럼에 별로 기대를 하지 마시란 얘기다.


8-43.jpg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불리는 월마트가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시의 "자본주의를 파괴하다" 벽화 이미지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Destroy Capitalism, BANKSY]


문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를 향한 짝사랑이나 욕정 때문이 아니다. 사랑도 변한다는데 그깟 문화에 대한 애정쯤이야 변한다고 무슨 욕을 먹겠는가? 그래도 문화 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몹쓸 각인 때문이다. 문화는 언제나 좁은 의미의 ‘문화예술’ ‘문화예술인들의 영역’으로만 간주되고 있지만, 문화는 경제, 정치 등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적 층위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화는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텍스트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사회적 대립에서 한 편을 지지하게 된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영향을 주지 않는 예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텍스트들은 궁극적으로 정치적이다.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관념들의 집합으로 볼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실천행위로 봐야한다는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바닷가의 휴가나 크리스마스 축제는 즐거움을 주고 사회질서의 일상적인 요구에서 해방시켜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음번 공식적인 휴가 때까지 힘을 되찾아 착취와 억압에 견뎌나가도록 본래의 질서 속으로 되돌려놓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한 경제적 상황과 경제적 관계에 필요한 사회적 상황과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taste'마저 이데올로기적인 범주로 판단했다. 문화의 소비가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계급의 차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회적 작용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미 배치된 것이라고 본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문화는 그 자체로 중요성을 가지는 층위임에 분명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동자문화운동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 낡은 줄의 한쪽 끝이라도 애써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우리 주변에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어느새 당하고 마는 적들의 이데올로기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제 그런 이데올로기와의 선전 포고를 해야 한다. 그런 이데올로기를 눈을 부릅뜨고, 색안경을 끼고, 돋보기를 들이대고 찾아내서 분석하고 해석해내야 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될 작업이다. 그 역할을 덜 떨어진 나에게만 맡기지 말고 여러분들도 눈을 씻고 같이 찾아보고, 잘못된 해석이 있으면 고쳐주고, 게으름을 피우거든 채찍질을 가해주길 부탁드린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이기 때문에 그 짐을 나누어 질 동지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