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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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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11.01 15:10

꼬리박각시

 

올가을엔 마을에 행사가 많다. 해가 갈수록 축제와 공연은 늘어가고 규모도 커지는데, 정작 내용은 다른 지역에서 하는 여느 축제나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만그만하게 닮아간다. 관이 이끌고 가니 행사가 다 어슷비슷해진다. 소박하지만 그래도 주민 스스로 만들었던 행사들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마을 행사 준비로 바쁜 탓인지 이달 마을걷기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세 명이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 개울 옹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는 마을 주민을 만났다. 벽화는 관이 발주한 시공 업체에서 밑그림을 주어 그걸 그대로 베껴 그리는 것이고, 작업은 대부분 재능 기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벽화 그리는 이의 표정엔 즐거움이 없다. 이 개울은 몇 해 전 청계천처럼 공사를 해서 중랑천 물을 끌어와 흘려보내는 가짜 개울이 되었다. 벽화도 개울도 다 어디에서 본 듯하다.

중랑천을 따라 걸어서 지난봄에 꼬리명주나비 서식지를 복원했다는 곳으로 가 보았다. 꼬리명주나비의 먹이식물인 쥐방울덩굴을 옮겨 심은 곳은 온통 칡과 환삼덩굴로 덮여 있다. 드나들지 못하게 둘러친 울타리로 그곳이 꼬리명주나비 서식지를 복원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어렵사리 쥐방울덩굴 한 그루를 찾아냈지만, 한 그루조차 칡과 환삼덩굴 기세에 눌려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꼬리명주나비는 왜 사라졌을까? 꼬리명주나비가 살던 중랑천 둘레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쥐방울덩굴은 점점 칡과 환삼덩굴에 밀려났을 테고, 쥐방울덩굴을 먹는 꼬리명주나비도 살기 힘들게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천변에 산책길과 자전거도로를 내고, 백일홍, 큰금계국, 천인국 따위를 심으면서 쥐방울 덩굴과 꼬리명주나비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곳에 쥐방울덩굴을 다시 심고, 꼬리명주나비를 풀어놓는다고 서식지가 복원될까? 여름 한철이 지났는데도 그곳은 칡과 환삼덩굴로 덮여 버렸다. 더 많은 예산을 들여서 칡과 환삼덩굴을 지속적으로 거둬 내고 쥐방울덩굴을 화초처럼 돌본다면 꼬리명주나비가 살 수는 있을 것이지만, 사람 손을 놓은 순간 그곳은 다시 칡과 환삼덩굴로 덮일 것이다.

중랑천변엔 가을꽃이 한창이다. 산책길과 자전거도로를 따라 심은 노란코스모스, 백일홍, 천수국 따위 국화과 식물들이 다퉈 꽃 피고 있다. 이 원예식물들은 이곳에 점점 더 잘 적응해서 이젠 심고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퍼져 자라는 귀화식물이 되어간다. 천수국이 무리지어 핀 곳에 나방 종류인 꼬리박각시 몇 마리가 날아다니며 꿀을 빨고 있다. 날개에 주황색 빛깔이 언뜻언뜻 보이고 까만 꽁지엔 흰무늬가 돋보인다. 붕붕 소리를 내며 수선스럽게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닌다. 꽃에 앉지도 않고 꽃 앞에서 정지비행을 하면서 긴 주둥이를 빨대처럼 꽃에 꽂고 꿀을 빤다. 꿀을 빠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다른 꽃으로 휙 날아가 버린다. 그 모습 때문에 꼬리박각시를 벌새나 몸집이 큰 벌 종류로 착각하기도 한다. 꼬리박각시가 꿀을 빠는 모습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벌새 모습과 꼭 닮았고, 또 낮에 꽃 사이를 빠르게 날면서 꿀을 빠는 모습은 나방보다는 벌에 더 가까워 보이니 착각할 만도 하다. 벌새를 직접 보려면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 흔히 나방은 밤에 날아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낮에 활동하는 나방도 여럿 있다. 꼬리박각시 종류와 요즘 사철나무 둘레에서 한참 극성을 떨고 있는 노랑털알락나방 따위가 쉽게 볼수 있는 낮에 활동하는 나방들이다.

꼬리박각시는 숲에서 자라는 물봉선이나 누리장나무 꽃에 날아오지만, 공원이나 길가에 심은 노란코스모스, 백일홍, 천수국 같은 원예용 화초에 더 잘 날아온다. 그래서 도심 한가운데서도 원예용 화초를 심은 길가 화단에서 꼬리박각시를 만날 수 있다. 한낮에도 볼 수 있지만 해가 설핏 기운 즈음이 더 낫다. 중랑천 생태를 예전처럼 되돌릴 수 없다. 뚝딱뚝딱 만든 서식지는 기껏해야 사육지밖에 되지 못한다. 노란코스모스, 백일홍, 천수국이 퍼져 자라는 중랑천엔 꼬리명주나비보다는 꼬리박각시가 더 어울리는 곳이 되었다. 모양만 그럴 듯하게 꾸민다고 해서 마을공동체가 복원되고 공동체 문화가 살아나는 건 아니다. 그렇게 꾸미면 꾸밀수록 오히려 마을은 더 자기 색깔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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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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