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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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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개정 아니라 폐기해야

 

홍석만참세상연구소()

 


한미FTA,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한미FTA는 무역 자유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보다도 처음부터 양국간 국내 자본운동의 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한미FTA의 협정문 외에도 그 내용에 맞추기 위해 국내 79개의 법령과 규칙 등을 제개정 했다. 한미FTA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미국과 협의를 하며 국내 관련 규정을 손봤다. 이는 한미FTA 협상의 결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협상 사전 단계와 진행과정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됐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국제기준에 맞게 유연화 한다며, 변형시간근로제와 비정규직화, 외주화 등을 강제했다. 한미FTA는 이를 더 확대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했다. 가령, 2012315일 한미FTA가 발효되기 전까지 정부는 노동규범을 국제적인 수준에 맞추고 적응해야 한다며 노동유연화를 더 확대 강화해 왔다. 한미FTA가 발효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규제 프리존과 노동법 개악 등이 이뤄졌다. 이처럼 한미FTATTIP(범대서양무역투자협정)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같이 무역 거래 자체보다도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제도와 규범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미 의회조사국 2007년 리포트에 따르면 한미FTA의 근본 목적은 관세장벽이 아니라 한국의 법과 제도, 즉 비관세장벽을 철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자본이 내국민 대우를 받게 된다하더라도 그 나라 특유의 규범과 관행이 존재한다. 물 건너 있는 미국의 초국적 자본보다 가까이 있는 한국 재벌이 이 같은 규제 완화에 더 크게 반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시장개방과 노동유연화, 규제완화는 물론 민영화 등 모든 정책에서 최대수혜자는 재벌이다. FTA도 예외는 아니다. 한미FTA는 래칫(ratchet, 역진방지)조항이 있어 한번 개방한 시장, 민영화한 부문은 되돌릴 수가 없다. 또 국내에서는 반발 때문에 결코 하지 못했던 영리병원의 허용과 원격의료, (민간)의료보험 개편 등도 한미FTA를 통해 우회로를 만들 수 있었다. 한미FTA는 비단 미국의 글로벌 자본에 길을 열어 두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의 재벌들에게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FTA는 무역개방 그 차제보다 자본운동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남의 칼(미국과의 무역)을 빌어 내부(한국의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를 치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와 같다. 미국에서도 한국에 비해 자본 규제 철폐 정도가 작지만 한미FTA의 기본 성격은 그대로 관철된다.

지난 5년 동안 한미FTA 결과가 이를 가장 잘 웅변해 주는데, 한국의 농업을 희생시키면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도 자동차, 전자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다. 미국에서도 자동차 수출이 3배 늘었고, 미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로얄티) 수입도 증가 예상치보다 수백배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비관세장벽과 자본 규제를 철폐하고 노동유연화를 확대한 한미FTA의 전후방 효과를 고려하면 한미FTA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FTA의 운용도 애초의 목표대로 재벌 대기업 위주로 진행됐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57월 현재 기업규모별 FTA 수출활용률은 대기업이 79.3%인 반면, 중소기업은 63.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도 대기업 품목군인 기계류의 수출 활용률은 77.8%로 가장 높지만, 전형적인 중소기업 제품인 섬유류는 50.7%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중소기업이 활용건당 수출물량과 수출액이 대기업에 비해 월등히 적은 점을 고려하면 재벌 대기업의 FTA 활용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재벌 대기업들은 한미FTA 발효와 함께 국내 수출물량은 줄이고 현지 생산을 늘렸다. 법인세 실효세율을 보면 FTA가 어떤 효과를 만들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10대 기업의 외국 납부세액을 포함한 것과 제외한 법인세 실효세율은 한미FTA 시작 직전인 2011년 각각 15.0%13.0%를 보였고, 격차는 불과 2.0%에 불과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2015년 이는 각각 17.7%12.1%로 격차는 5.6%2.8배 증가했다. 이 기간 재벌기업들은 해외투자와 진출이 커졌다.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FTA 발효 후 5년 사이 120% 넘게 상승했고 대부분 한국 재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재벌 대기업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외국에 납부했다. 더구나 국내에 납부 세액을 기준으로 본 10대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같은 기간 동안 계속 줄어 한미FTA 시작 전보다 0.9% 줄었다.*


* 국내 대기업의 해외 법인이나 자회사가 외국에서 법인세를 납부하고 수익금을 국내에 송금하면 이중과세 방지를 이유로 국내에서는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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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식민지?

한미FTA가 자본 자유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국내법과 규범을 상위에서 역규정 한다. 또한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와 같은 사법질서, 의료민영화와 같은 사회질서들을 재편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미 FTA되면 경제주권 다 뺏기고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한다는 말이 돌았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경제규모와 산업적 관계 측면에서 한미FTA는 식민지, 신식민지적 종속관계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잘못이다. 미국은 이미 자본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법제화 된 곳이다. 미국화 한다는 것은 곧 자본에 유리하게 바꾼다는 것이며, 이것이 미국의 경제종속국이 되거나, 경제주권이 침탈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지배력, 특히 재벌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문제다.

가령,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57.2억 달러(2012)에서 129억 달러(2016)으로 120% 넘게 상승했지만, 미국의 대한국 직접투자는 36.7억 달러(2012)에서 38.8억 달러(2016)으로 별로 증가하지 않았고, 액수도 한국보다 훨씬 적다. 미국에 유리한 것은 자본 특히 독점 대자본에 유리하다는 이야기이며 이는 재벌이라는 매판자본이 나라를 팔아먹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한미FTA 문제를 한국 vs 미국과 같이 국가문제, 민족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다. “한미FTA는 식민지 조약이고 제2의 을사늑약이다. “한미FTA가 발효된 2012315일은 제2의 국치일이라고 한 비판은 과연 적절했는가? 이런 민족주의적 시각은 특히 무역의 양과 규모만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한미FTA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게 한다. 당장 민족문제로 FTA를 만들고 나니 국민의 공분을 더 쉽게 자아내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방식으로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프랑스 르펜이나 유럽 극우세력들이 반세계화를 자국중심주의와 결부시키고 있다. 양적인 비판은 한미FTA의 대차대조표 앞에서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하게 됐다.

 

한미FTA 개정 협상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산업쇠퇴와 공장이전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문제들을 FTA로 지목하고 이를 공격하고 나섰다. NAFTA 재협상에 이어 무역수지 적자를 빌미로 한미FTA 재협상까지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스크린 쿼터 확대, 신문방송의 외국지분 투자 허용, 디지털 교역 등 비관세 장벽에 대한 규제철폐, 서비스 시장 추가개방,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USTR‘2015년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화평법을 기술 장벽부분에서 한·미 양국의 무역을 저해하는 첫 번째 요인으로 적시했다. 또한 화평법 규제를 세계무역기구 무역기술장벽 위원회에 통보하고 시행 전 관련 업계의 의견수렴을 위한 시간을 추가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화평법은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이후 만들어진 법이다. 이 법은 입법과정을 거치면서 재계의 반발로 핵심조항이 삭제되고 누더기가 된 채로 시행됐다. 시행이후에도 재계는 화평법의 폐지 또는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한국의 대기업과 미국의 글로벌 자본의 이해가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바로 화평법 폐지다.

여기에 미국은 산업구조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되어 있다. 제조업 비중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때문에 상품 교역보다도 서비스 시장 개방에 더 큰 무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품시장 개방은 기존 개방 품목에 대한 조정,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등 일부에 그치고, 서비스 시장 개방과 연관된 각종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은 FTA의 기본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더 강화하는 형태의 진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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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의 전망

자유무역협정FTA은 상품과 서비스 교역, 투자를 포괄하는 협정이다. 이것이 자유무역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 별개로 교역과 투자의 활성화는 세계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현재 회복세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전 세계에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횡행하고 있다. 각국 경제 상황이 좋아야 상품교역이든 투자든 활성화 될 텐데, 세계자본주의가 아직도 불황의 터널을 헤매고 앉았는데, FTA를 한다고 그 동안 잘되지 않던 무역이 활성화 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미몽과도 같다.

최근 세계무역이 어느 정도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완전히 다시 살아날 조짐은 없다. 일부 지표의 호조, 실업률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률은 제자리다. 이른바 필립스 곡선의 대전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물가는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임금도 오르지 않아 소비수요는 거의 제자리다. 게다가 개인, 기업, 국가의 총부채가 자본주의 역사 이래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 소비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레리 서머스가 현재 상황을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라고 명명했듯이 장기침체 속에서 이를 넘어설 어떤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각국 자본의 이윤율 회복을 위한 경쟁 속에서 투자율도 떨어지고 있다. 남아도는 자본의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기업 수준의 생산적 활동이 확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은 자유무역 확대보다도 자본의 이윤율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각종 비관세장벽, 무역기술장벽을 다시 확대하고 있다. 한미FTA 또는 FTA 체결 이후 통상마찰은 오히려 더 증가해 그 이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79월말 기준으로 27개국에서 총 190(규제중 150, 조사중 40)의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가 실시중이다.**

이처럼 장기침체와 경제위기 속에서 FTA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양적 규모는 축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질적인 효과는 사라지지 않고 더 강력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재벌중심-수출주도 경제구조 아래에서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재벌과 자본 활동의 자유를 더 확대하지 않으면 경제 문제가 더 심각해 질 것이라는 위협이 존재한다. 여기서 FTA와 세계화는 기존 재벌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불가피한 존재로 재규정 된다. FTA가 이전에는 수출확대의 수단이었다면 보호무역의 확대 속에서는 최대의 방어수단이라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경우 삼성의 전자와 반도체 수출이 위축되면 전체 경제가 무너질 만큼 재벌 의존적인 수출과 성장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수출의 위기=한국경제의 위기로, 삼성의 위기=한국의 위기로 표현되는 내적 강제가 이뤄진다.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경제위기 속에서 삼성과 재벌 살리기를 위한 전제로 존재해, 무역의 퇴조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한미FTA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더 확대시키려 할 것이다.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10110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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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위한 한미FTA 폐기하고 연관법 개정해야

한미FTA는 한미 양국 독점자본과 초국적 자본의 활동을 자유화하기 위한 조치다. 그에 따라 양국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락시키고 주요한 사법제도와 복지제도, 안전 등 사회질서의 공공성을 해체시키고 있다.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도 기존 한미FTA 성격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양국 독점자본 운동에 깔아 준 고속도로를 확장하는 협상이며, 노동 안정성과 시민 안전 등 사회공공성을 위협하는 협상이다. 또한 무역 측면에서도 재벌에만 유리한 한미FTA를 더 이상 유지할 근거가 별로 없다. 앞서 무역협회 분석에서도 드러났듯이, 장기침체와 세계경기 악화 속에서 한미FTAFTA는 상대국의 보호무역장벽을 더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FTA가 무색하게 미국에서도 세이프가드 조치나 무역규제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원산지 규정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여 무관세 혜택을 보기는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이처럼 자유무역에도 도움이 안되고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한미FTA는 개정이 아니라 폐기돼야 한다. 또한 한미FTA를 유지하기 위해 80여 가지 국내법과 제도를 바꾼 것도 한미FTA 그 자체 못지않은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최소한 FTA 이전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한편, 세계화 반대가 미국 대선에서 자국의 독점자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멕시코와 중국이라는 국가와 멕시코와 중국 노동자들에 대한 혐오로 전환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FTA에 대응에서 노동자국제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 차원의 노동자 대응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세계화 반대가 우익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로 귀결된 이유도 자본주의 세계경제질서를 넘어서는 대안적 질서를 확인시켜 주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자국제주의가 확대되지 않아 국경을 건너지 못하고 찻잔 속에서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의 노동자연대를 확대하고 한국과 미국의 독점자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공동대응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은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당면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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