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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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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어디까지 왔나?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한 항쟁 1, 평가와 과제


정경유착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대중적 공분이 일거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지도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촛불항쟁 계승을 자처하는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우리는 아직 한국사회의 낡은 적폐들을 청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촛불항쟁 1년을 돌아보며 우리의 투쟁을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을 나누고자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특별좌담회를 가졌다.


20171027() 오후7, 민주노총


진행 김태연 사회변혁노동자당 투쟁연대위원장, 퇴진행동 재벌구속특별위원장

좌담 김혁 민주노총 사무부총장, 퇴진행동 운영위원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퇴진행동 공동대변인

정리 용현 사회변혁노동자당 기관지위원장


 

 촛불항쟁의 정세적, 운동사적 의미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된 사회가 대중적 분노 키웠다

절반의 성공, 양극화와 불평등의 청산으로 이어져야

저항 주체들의 조직화로 연결 못한 점 아쉬워


김태연(이하 진행’) 지난해 늦가을, JTBC의 보도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박근혜 퇴진운동이 급성장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퇴행, 경제위기와 불평등의 심화는 피억압 대중을 변화를 향한 열망으로 넘쳐나게 했다. 촛불항쟁이 6개월 가까이 열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진(이하 ’) 이번 항쟁이 촉발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 사태였는데, 사실 권력의 부정부패는 여느 정부에서나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유독 큰 분노를 표출했던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저는 정유라 사건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데,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했던 특권이나 반칙이라는 행태가 정유라를 통해 사람들의 억눌렸던 감정을 자극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는 생각이 전 세대에 걸쳐 도화선이 됐고 그게 박근혜를 무너트리는 데까지 나아간 원동력 아니었을까.

안진걸(이하 ’) 촛불항쟁에서 기층의 역할이 정말 대단했다. 노동개악 문제도 있고, 백남기농민의 국가폭력 희생 문제도 있고, 또 세월호 참사를 계속 지우려고만 하는 문제까지... 이 사회에 누적된 문제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을 대의민주주의를 수행하는 기관인 국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무능한 모습만 보이니까 일단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김혁(이하 ’)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2015년도에 노동개악 저지, 사회적 총파업을 했고, 이후 박근혜 정권 퇴진을 내걸고 민중총궐기까지 이어진 과정이었다.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불이익변경 등 노동개악이 이뤄지면서 노동을 적대시하는 정부 정책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국면이었다. 이렇게 노조 자체를 혐오하고 적대하는 정책과 나란히 노동자들의 생존권도 악화하면서,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자들이 대중의 정당한 항의나 분노를 억압하거나 무마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까, 이 싸움이 오랫동안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행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에 전국 23백여 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할 정도로 사회운동의 참여 열기도 높았지만, 정말 놀라웠던 것은 매주 수백만 인파로 가득찼던 광장투쟁의 규모였다. 만약 기존 정치나 사회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규모 있는 운동이 가능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정권퇴진운동이 진보적 운동세력과 미조직 대중의 결합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 전체를 일대 개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후 그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주체 역량이 새롭게 생성되거나 강화되는 것이 무척 중요했던 건데, 그 지점에서 촛불항쟁이 드러냈던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주체의 조직화라는 측면에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작년 1130일 민중총파업을 돌아보면 노동자들의 참여가 조직(노동조합)의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민주노총의 96,97 총파업과 비견되는 것이기도 한데, 당시 96,97 총파업은 위로부터 결정과 아래로부터 투쟁의지가 맞물려 가공할 위력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도부의 결정이 대중적 투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기에 대한 원인 분석이나 평가는 앞으로 세밀하게 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것이 폭발적인 양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황에 대해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지를 북돋는 운동적 모티브가 부족했던 건 아닌지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저는 일단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촛불항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년이지만, 마무리된 건 몇 개월 안 됐고... 그 사이 일상적인 시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격동기를 우리 모두가 보냈기 때문에 변화의 양상이나 성과를 갈무리할 시점은 아니라고 본다. 말씀하신 대로 민중총파업이 96,97총파업처럼 힘있게 진행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이 촛불항쟁 이후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처럼 일상에서 변화를 만들어 나갈 조직에 대해 더 이상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긍정적인 면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저는 이제 막 변화가 시작됐을 뿐이고, 뿌려진 씨앗을 틔우고 가꾸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촛불항쟁의 운동사적 의미는 무엇보다 촛불을 든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박근혜정권을 끌어내리고 감옥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거기에 박근혜보다 실은 더 거대한 권력이라고 여겼던 삼성의 최고 총수를 구속시켰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본다. 그러나, 박근혜, 이재용을 감옥으로 보냈다고 한들 노동자민중의 삶이 여전히 불평등에 시달리고 팍팍하다면 이는 촛불혁명의 부족함이나 한계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주권자혁명, 시민혁명의 지위를 획득할 정도로 위대한 항쟁이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촛불항쟁이 명실상부한 역사적 혁명의 지위를 갖기 위해서는 지금의 양극화, 불평등의 문제가 타파되고 노동과 민생이 최우선으로 존중되는 2단계 성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절반은 성공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 노동자민중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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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민주노총 사무부총장, 퇴진행동 운영위원 ◁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퇴진행동 공동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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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 ◁ ▷ 김태연 사회변혁노동자당 투쟁연대위원장, 퇴진행동 재벌구속특별위원장


 촛불항쟁 이후 현 정세 진단   

적폐청산 위한 사회운동의 역량, 장기적 안목 필요해

촛불 개혁과제, 고작 2% 이행에 머물고 있어

산적한 노동현안, 정부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 해결 가능


진행 퇴진행동을 해소하면서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과제를 촛불민심의 요구로 모아낸 바 있다. 촛불항쟁 이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면, 그것부터 이야기해 보자.

먼저 단적으로 포착되는 변화는 공권력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모습을 내비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권리를 억압하기만 했던 공권력이 갑자기 개혁이라는 옷을 걸치게 된 것,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인 것 같다. 그리고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광장에서 촛불이 외쳤던 구호를 형식적이나마 하나하나 수용하는 모습들도 눈에 띄는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취임 직후 대통령이 직접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정규직화를 약속한다거나, 탈핵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모습들은 비록 그 이행과정에서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내고 있지만, 시민들 눈에는 이전 정권에 비해 진일보한 모습처럼 비춰지는 것도 사실이다.

퇴진행동이 발표한 개혁과제로 보면 이제 고작 2%를 이행했을 뿐이라서, 냉정하게 볼 때 사회 곳곳에서 많은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순 없다. 국정원, 경찰,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개혁은 우리가 이전부터 줄곧 요구해왔던 것인데, 해체 수준의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상당수의 권력기관들이 적폐청산TF를 꾸리고 개혁의지를 선보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특히 지난 9년의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선거 개입을 비롯한 중대한 국기문란, 불법을 저질렀던 국정원의 행적이 드러났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치공작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강정마을, 전교조, 심지어 참여연대까지 사회운동 전체를 마치 주적처럼 놓고 온갖 사찰이나 공작을 벌였다는 게 사실로 드러났다. 그동안 운동진영에서 국정원의 이런 행태들에 대해 의혹은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아주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걸 봤을 때 권력기관들의 개혁이 의미 있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지만, 가만히 지켜만 본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더 강력하게 개혁을 압박하고 촉구하는 시민사회운동의 집요한 감시와 견제가 요구된다.

그런데 한 번 돌이켜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6대 적폐라고 해서 성과연봉제, 세월호 참사, 국정교과서, 언론 장악, 사드 배치, 백남기농민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나. 이 중 성과연봉제, 국정교과서는 정부가 폐기했고, 백남기농민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경찰개혁안이 나온 정도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나 책임자 처벌은 요원한 상황이다. 언론 장악이나 세월호 문제는 아직 진행형인 상황이라고 볼 때, 사드 철회 문제의 경우 정부가 적폐청산 요구를 완전히 저버린 것 아닌가.

전반적으로 보면 정부의 개혁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일정한 진전이 있는 것도 맞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측면이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틈날 때마다 노동존중사회를 말하면서 노동 여건이나 지위를 개선하는 데 나름대로 힘을 쏟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 등 고용의 양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지만, 고용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오히려 개별노사관계의 정상화가 절박한 게 현실이라고 본다. 대표적으로 5인 이하 사업장에 근기법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 특수고용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 박탈, 전교조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화 등 산적한 현안들이 많다. 또 노조가 있더라도 노조파괴 같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방치되고 있다. 정부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제도 개선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당장 정부의 행정조치로 얼마든지 개혁할 수 있는 사안도 많고 지금 있는 법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문제도 제대로 법집행하면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진행 집권 초반기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을 대략적으로 짚어 봤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적폐청산이나 사회대개혁의 내용도 그렇거니와, 정부 개혁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결국 제도 개혁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현 정부 들어 대선공약을 파기한 최초 사례가 아마 통신비 인하일 것 같은데, 문재인정부가 통신재벌과의 힘겨루기에서 패배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벌개혁이라는 큰 산을 과연 이 정부가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 그게 아마 중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과거 시절 정부들이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과 노골적인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지금 이 정부가 할 수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촛불시민혁명을 만들어 낸 광장의 정신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그렇지만, 지난 촛불항쟁에서 재벌도 공범이다라고 외쳤듯이 지금 이재용 하나 처벌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는데, 나머지 재벌총수의 처벌 문제에 대해서는 현 집권세력이나 검찰이 적극성을 안 보이고 있는 듯하다. 그런 태도가 있으니까 기본요금 폐지 시 통신비 11,000원을 절감할 수 있는데, 이 공약도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SK, KT, LG 이 재벌3사가 통신시장을 장악해서 십 수 년간 이윤을 독식하고 있는 구조에 대해 정부가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벌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관료들도 이에 편승한 결과 아니겠나. 이런 관행들이 점차 누적되면 재벌개혁 정책도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는 대중의 실망이 누적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고 그로 인해 다른 개혁에 있어서도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있다. 재벌체제의 탐욕과 불공정이 상식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이 정도 공약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에선 의지가 부족하거나 무능한 정권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좀 더 냉철하게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문재인정부만 바라보고 평가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시 퇴진행동이나 전체 사회운동진영의 중장기적인, 또는 단기적인 목표들을 우리가 잘 합의해내지 못했다고 본다. 각 단체나 부문들이 요구하는 것이 언제나 선결과제였지, 공통으로 전략과 목표를 만들어내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재벌문제도 마찬가지다. 재벌체제 청산을 운동진영 전체의 요구로 힘을 모으는 싸움을 만들기 위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노력했었나 내부적인 성찰이나 질문이 저는 지금 필요하다고 본다. 자본권력이 한국사회를 계속 지배해왔던 이 현실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그 전략과 전술을 여러 갈래로 흩뜨리지 않고 어떻게 하나로 모을 것인지 고민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국정농단을 뒷받침했던 건 삼성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재벌들이었다. 결국 적폐의 근원이었던 재벌들이 이재용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다 면죄부를 받았다. 최근에 청와대가 노동계와 만찬을 가졌었는데, 그 이전에 재벌과도 만남을 가지지 않았나. 이 때 정부가 재계에 던졌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였었다고 본다. 하나는 정경유착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가 원하청불공정거래를 근절하라는 것. 이 두 가지 문제를 정부가 제기하면서, 나머지 문제들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재벌에 요구하는 수준은 공정경제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재벌을 적폐로서 규정했지만, 이 정부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따른다는 전제 하에서 재벌을 돕는 정책을 견지할 거라고 본다. 결국 아래로부터 재벌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지 않는다면,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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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정권 하에서  정치운동 또는 대중운동의 과제    

개혁 추동할 부문별 운동과 연대체 활동 촉진해야

새로운 사회의 청사진, 사회운동이 앞장서 만들어가야

일상의 변화 가능케 할 단체에 가입하자


진행 돌이켜보면 지난 촛불항쟁은 직접정치의 가능성을 내재한 노동자민중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 진출할 수 있는 호기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유의미한 사회구조적 변화, 심지어 제도적 변화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개헌을 통해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보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최근 개헌 논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개헌 관련한 논의는 지금 노농빈이 함께 하고 있는데, 민주노총은 타 단위에 비해 논의속도가 더딘 편이다. 농민 쪽은 개헌논의가 상대적으로 활발한 편이다. 최저임금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조문화한 것처럼, 쌀값 보장도 헌법 상의 권리로 만들자는 얘기다. 어쨌든 민주노총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개헌은 권력구조의 개편보다는 노동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에 관련된 부분이 아마도 주를 이룰 것이다. ‘근로노동으로 바꾸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민주노총은 중집 단위에서 브리핑 수준으로 개헌 논의가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대략적인 방향만 말씀드리겠다.

제가 속해 있는 다산인권센터는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약칭 개헌넷’)에 참여하고 있다. 저는 이 개헌 논의를 통해 인권의 가치들이 기본권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운동단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회개헌특위나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기본권 조항을 보면 상당히 진일보해 있다. 사형제 폐지나 성평등 조항,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권까지 인정하는 등, 인권운동의 오랜 과제들이 어쩌면 개헌 논의를 통해서도 풀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데, 아시겠지만 이런 조항들로 인해서 보수기독교를 위시한 수구세력들의 굉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광장의 외침이 그랬듯이 우리 요구가 모아지지 않는다면 이 개헌 논의가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통치 형태의 변화나 몇 가지 합의 가능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조항들이 쟁점으로 형성될 소지가 큰 것이다. 개헌넷의 핵심 기조가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국회 주도에 국민은 들러리 서는 개헌 판이라는 것이다. 실제 개헌이 되더라도 어떤 싸움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인권운동은 인권의 가치를 어떻게 부여할 것이냐가 앞으로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두 가지가 얘기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우선 국민의 기본권이 강화되는 개헌이 돼야 할 것이고, 두 번째는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사실 개헌도 촛불정신이 함축된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5.18민중항쟁, 87민주화운동, 그리고 촛불시민혁명까지 실제 개정헌법 전문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할 수만 있다면 개헌 내용에 경제민주화, 노동 관련한 조항들이 포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전체 사회운동 진영들이 적극 대응했으면 한다.

진행 지금 헌법을 흔히 ‘87체제로 표현하는데, 그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집약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저는 이것을 ‘97체제라고 표현하든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표현하든 지난 20년 간 한국사회가 겪은 구조적 모순을 개헌 과정에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헌을 둘러싼 많은 담론들이 회자되고 있지만, 적자생존, 경쟁체제의 논리를 경험한 촛불항쟁 주역들이 사회공공성과 국가책임을 새로운 헌법 정신으로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한편으로는, 광장을 통해 표출했던 대중적 분노와 저항의 힘이 어떻게 일상적 공간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 고민도 깊다. 촛불항쟁 1주년을 맞아 여전히 남아있는 적폐청산, 사회대개혁의 과제를 이후 어떻게 실현해야 한다고 보는가?

광장의 정서를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장에 모인 1,700만의 촛불은 박근혜퇴진이라는 열망으로 일체감을 형성했지만, 사회대개혁을 위한 청사진에서는 합일된 목소리를 내진 못했다. 그렇게 봤을 때, 이 적폐청산의 과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회운동과 적극적인 시민들의 몫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이 저변을 어떻게 넓힐 것인가가 지금 당장 고민되어야 하고, 광장의 정치를 어떻게 내 삶의 정치, 내 삶의 변화로 이끌어낼 것인가가 관건인 것 같다. 단적으로 노조를 가입하는 사람이 많고, 시민사회단체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층위의 목소리들이 결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하기엔 지금이 어쩌면 호조건이 아닌가 싶다.

일단, 촛불시민혁명을 표방하는 정부라고 해서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동일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회의 변화가 미진하다면 당연히 그것을 앞당기기 위해서 노동자민중은 목소리 내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의 살 길은 노조, 시민단체, 진보정당이 아니겠는가. 지난 촛불항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위해서 노조와 시민단체, 진보정당들이 함께 연대하고 응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들이 동네와 회사 곳곳에서 활성화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사실 민주노총으로는 퇴진행동의 해산이 매우 아쉬웠다. 현재로서는 적폐청산을 위해 각 영역별로 주력하고 있는 사업에 충실하되, 사안에 따라서는 연대체를 구성하는 방식이 최선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민주노총이 하반기 노조하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를 구성했는데, 이렇게 특정한 사안이나 계기를 통해 각 단위들이 공동대응을 해나가다 보면 머지않아 운동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시기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행  촛불항쟁을 통해 드러났던 광장민주주의의 실험이 이대로 좌초됐다고 단언하기엔 이른 것 같다. 불평등과 소외, 차별이 온존하는 체제에 갇혀서는 적폐청산, 사회대개혁은 난망할 것이다. 오늘 좌담에서는 구체적 대안이나 경로까지 얘기해보진 못했지만, 이를 실현할 주체로서 노동자민중의 조직화가 절실하다는 것은 다들 한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상 좌담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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