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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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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2.01 14:31

노랑점나나니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연립주택 계단 제일 꼭대기 천장과 벽 두 면이 만나는 구석에 흙덩이가 여러 개 붙어있다. 그런데 그냥 흙을 아무렇게나 발라놓은 것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어린아이 손가락 굵기 만하고, 높이가 3cm쯤 되는 작고 길쭉한 항아리를 30개가량 이어 붙여놓은 것들이다. 겨울에 아이들과 함께 벌레 흔적 찾기를 하면서 찾아낸 이 항아리들을 만든 옹기장이는 작은 벌이다. 노랑점나나니가 지난 여름 만들어 놓은 육아방이다. 입구 쪽이 뚫려있는 것을 보면 이미 어른벌레가 되어 날아가고 남은 빈 요람들이다. 벽에 붙은 것을 손으로 떼어내 보니 쉽게 떨어졌다. 떼어내면서 항아리 서너 개가 부서진 것을 보면 그리 단단하지는 않다. 노랑점나나니는 특별한 접착제를 쓰지 않고 그냥 진흙만으로 만든 것 같다.

잎벌이나 송곳벌처럼 허리가 굵은 벌도 있지만 벌무리는 대개 허리가 잘록하다. 허리가 가는 벌 가운데서도 나나니는 정말 허리가 가는 실처럼 생겼다. 나나니는 노랑점나나니와 달리 땅 속에 구멍을 파고 육아방을 만든다. “나나니가 땅을 팔 때 사아(似我)하는 소리가 나는데 해석하면 나를 닮으라는 뜻이다. 사실 이 소리는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 내는 날개 소리인데, ‘나나니라고 하니 좀 이상하다.”[<곤충의 사생활 엿보기>,김정환,당대] 나나니와 같이 구멍벌 종류인 노랑점나나니 역시 허리가 실처럼 가늘다. 나나니를 닮았는데 가슴등쪽에 노랑점이 있어서 노랑점나나니라 불리게 되었다.

노랑점나나니는 곧잘 집 안에까지 들어와서 집을 짓는다. 집안으로 잘 들어오는 건 도감에도 나온다. “집안에도 침입해서 구석에 진흙으로 원통형 육아실을 여러 개 겹쳐서만든다.[<한국곤충생태도감>,이종욱,고려대학교한국곤충연구소] 아파트 18층에 살 때 겪은 일이다. 그 높은 곳까지 노랑점나나니가 날아 들어와 집을 지었다. 베란다를 지나 방 안쪽 책꽂이 구석에 집을 짓는데 진흙을 작은 경단으로 만들어 가지고 와서 차곡차곡 항아리 모양으로 쌓아올렸다. 육아방 한 개를 만드는 데 진흙 경단이 2030개쯤 드는 것 같다. 육아방을 만든 다음 애벌레를 먹일 거미를 잡아왔다. 작은 거미 20마리쯤을 잡아다 육아방에 넣고는 알을 한 개 낳고 진흙으로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똑같은 육아방을 붙여서 만들었다. 하루에 두세 개쯤 만들었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꼭 출퇴근하는 노동자처럼 날아와서 육아방을 만들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날아들었다. 쫓아다니면서 손으로 막아보았는데 경계하거나 쏘려고 하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귀찮은 듯 손길을 피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노랑점나나니는 왜 건물 안, 심지어 방안에까지 들어와서 집짓기를 좋아할까? 집안으로 들어오는 곤충은 대개 먹이를 찾아 들어오거나 여름밤 불빛에 끌려 들어오고, 겨울 추위를 피해 들어오기도 한다. 육아방을 지으려고 들어오는 것은 노랑점나나니밖에 보지 못했다. 어쩌다 실수로 집안에 들어온 곤충들은 유리창이나 방충망에 갇혀 파닥거리다 죽기도 한다. 집 안팎을 드나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아방을 만들 진흙도 집밖에서 가져와야 하고, 애벌레 먹이인 거미도 집밖에서 잡아와야 한다. 집 안팎을 수천 번 드나들어야 하는데도 노랑점나나니가 굳이 집안으로 들어와 육아방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사람 눈에 띄어서 당하는 피해가 새와 같은 천적의 피해보다 적어서 번식에 더 낫기 때문일까? 노랑점나나니가 주변에 흔한 곤충일 걸 보면 그 전략이 성공한 듯도 하다.

사냥하는 벌들은 주로 애벌레를 먹이기 위해 사냥을 한다. 대모벌은 노랑점나나니처럼 거미를 사냥하는데, 노랑점나나니가 작은 거미를 사냥하는 것과는 달리 왕거미나 닷거미처럼 몸집이 큰 거미를 사냥한다. 호리병벌이나 감탕벌은 나비나 나방 애벌레를 사냥한다. 조롱박벌은 주로 베짱이, 여치를 사냥한다. 구멍벌 종류 가운데는 꽃등에를 사냥하는 벌도 있고, 잎벌레를 사냥하는 벌도 있다. 사냥벌마다 먹는 먹이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사냥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태가 건강하다는 지표가 된다.

건물 구석에서 노랑점나나니의 흔적을 발견하면 조금 안도하게 된다. 자고 일어나면 건물이 사라지고, 뚝딱뚝딱 순식간에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뚫리고, 차들이 홍수를 이루고, 미세먼지로 가슴이 답답하기만 한 이 도시에서 아직 노랑점나나니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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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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