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영업비밀보다 대중의 알 권리를 강조한 판결,

통신산업 재공영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백종성집행위원장

 


통신산업 재공영화가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체감하지 못한다. 통신산업은 과거에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저 SK·KT·LG에 의해 돌아갈 것처럼 보일 뿐이다. 대중은 그들이 내놓은 상품과 가격표를 그저 수용해야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412, 휴대전화요금 원가내역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1부는 412일 참여연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통신요금 원가산정 근거자료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당시 출시되지 않았던 4세대 이동통신LTE 관련 정보는 해당되지 않으나, 판결의 핵심은 통신자본이 공개하지 않았던 원가내역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 대중의 알 권리를 통신사의 영업비밀 주장보다 우위에 놓았다는 점이 핵심이다.

통신사는 그간 통신비 원가 내역이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즉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법원은 통신이라는 재화가 공적 성격을 가진다면, 그 재화의 가격산정 역시 공적으로 통제되어야 함을 인정한 것이다.

 

이동통신 자본은 국가 자원을 활용해 대중을 수탈한다

이동통신 산업은 전파가 다니는 길’, 주파수 없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주파수는 국가가 소유한다. 이동통신, TV, 라디오, 위성통신, 항공기 통신 등 광범한 곳에 다양하게 쓰이는 만큼, 주파수가 겹치지 않게 조정하는 것 역시 국가 몫이다. , 주파수는 한정된 국가 자원의 일종이며, 그 소유와 관리 모두 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동통신 자본은 잠시 이용료를 내고 그 자원을 빌려 사업을 진행하고 있을 따름이다.

문제는 공적인 재산을 잠시 빌려 사업을 하는 그들이, 대중을 수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3사의 마케팅 비용은 연간 7~8조 원에 달한다. 서로가 서로의 고객을 빼앗기 위해 허공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뿌리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비용이다. 그들에게 그 비용을 회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중이 그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이다. 연간 6조 원에 달하는 기본료 수입 등이 방법이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통신비 비중은 4.3%OECD 34개국 가운데 1위이며, 이는 정부가 통신비 경감을 공약으로 내건 배경이었다. 통신3사는 차라리 국유화하라며 반발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그렇다면 통신산업 국유화하자고 나설 세력이 아니다. 정부 통신비 인하 공약은 그렇게 취임 한 달 만에 무위로 돌아갔다.

 

통신산업 재공영화, 노동자 민중의 산업통제를 향하여

정부 공약 무산에서 보아야 할 것은, 소유구조를 그대로 둔 채 대중의 소득분배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의 필연적 한계다. 우리가 통신비 인하 요구에 그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생존권 보장 요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간 7~8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허공에 뿌려대면서도 그 비용을 대중에게 전가하는 기형적 산업이라면, 결국 재공영화 이외에는 답이 없다. 이때,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이다. 우리가 있는 상황을 그대로 인지할 권리, ‘알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시작이다. 통신요금 원가를 공개하라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통신산업의 기형적 이윤축적 실태를 속속들이 대중 앞에 드러내야 한다. 영업비밀과의 투쟁은 그래서 중요하다. 모든 장부를 베일 속에 감춘 채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GM과의 투쟁에서도 그 중요성은 드러났다.

영업비밀보다 알 권리를 강조한 판결은 통신사 요금원가 내역공개 판결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 온양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의 유족은, 2016년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작업환경측정보고서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작업 중 유해물질을 측정한 결과가 담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노동자들의 직업병이 생산공정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할 증거자료였다. 유족은 1심 패소를 딛고 지난 21일 대전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물론, 지금껏 영업비밀이라는 명목으로 한 번도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한 적 없는 삼성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삼성은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보고서 공개중지 행정심판을 요청했고, 위원회는 공개중지명령을 내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 관련 내용이 포함됐는지를 산업부에 확인 요청했고, 산업부는 417일 핵심기술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영업비밀이라는 만능 논리가 균열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부가 추진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조차 영업비밀이라는 논리에 막혔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재화는 누구에 의해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 노동자민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생산과 유통, 그 과정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에서 배제되어 있다.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이 영업비밀이라는 방패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 방패로 노동자민중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정보를 가린다. 영업비밀보다 대중의 알 권리를 강조한 판결이 나왔다. 문제 인식과 문제 해결은 하나다. 통신산업 재공영화, 노동자 민중의 산업통제는 가능하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