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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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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7.16 13:13

넓적사슴벌레

 

다달이 마을길을 걷는다. 한여름 밤 골목길과 숲길을 걷다 보면 낮에는 보지 못하는 곤충을 만나게 된다. 골목길 가로등엔 불빛을 찾아 날아온 곤충들이 바글바글하다.

아이들은 어두운 숲길에서도 곤충을 잘 찾아낸다. 저만치 앞질러 뛰어나가던 아이들이 무언가를 찾았는지 소리를 질러댔다.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넓적사슴벌레 암컷이다. 한여름 숲에서는 시금한 듯 들쩍지근한 냄새가 난다. 참나무 줄기에서 흘러내린 나무진이 여름 더위에 발효되어 나는 냄새이다. 낮에 매미가 나무진을 빨아먹으려고 뚫어놓은 곳에서 흘러넘친 걸까? 광릉긴나무좀이 파들어 간 구멍에서 흘러나온 나무진일까? 넓적사슴벌레는 나무진이 흐르는 샘을 찾으러가다 눈 밝은 아이들한테 딱 걸렸다. 낮에는 나무 아래 부엽토 속에서 쉬다가 기어 나왔는지 흙이 잔뜩 묻어 있다. 흙을 털어내니 반짝거리는 까만 딱정날개가 드러났다. 아이들은 넓적사슴벌레를 잘 안다. 넓적사슴벌레는 장수풍뎅이와 함께 집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반려곤충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쌌을 땐 적은 수의 곤충 마니아들만 키웠지만, 곤충을 길러 파는 곤충농장이 많아지고 값이 싸지면서 키우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우리 집 아이들도 초등학교 때 얼떨결에 넓적사슴벌레를 키웠다. 방과 후 학교 생명과학교실에서 매주 동물이나 식물을 한 가지씩 가지고 왔다. 비닐봉지에 베타라는 물고기를 담아들고 와서 대책 없이 내미는 아이들한테 우리는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물고기를 되돌려 주고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건만 다음번에도 넓적사슴벌레 한 쌍을 들고 왔다. 방과 후 학교 선생님께서 꼭 가져가야 한다고 했단다. 생명과학교실이 아니라 반생명과학교실이라고 아이들한테 한바탕 퍼붓고, 집을 뒤져서 쓰지 않는 플라스틱 통을 찾고 시장에 가서 톱밥과 젤리도 샀다.

사육통 속에서 수컷은 먹이로 넣어 준 젤리 근처에는 암컷이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암컷을 쫓아다니며 괴롭혔지만 우리는 수컷이 구애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어느 날 몸이 두 동강난 채 죽어 있는 암컷을 발견했다. 수컷의 짓이다. 아니, 좁은 통 속에 암컷과 수컷을 무작정 몰아넣은 사람이 죽인 것이다. 넓적사슴벌레 수컷은 힘이 세고 공격적이다. 큰 턱에 손가락을 물려서 상처를 입고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 물렸을 땐 쉽게 턱을 벌리고 손가락을 빼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턱은 벌려지지 않았고 더욱 조여 왔다. 결국 넓적사슴벌레가 스스로 턱을 벌릴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국내에 사는 사슴벌레는 열여덟 종이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넓적사슴벌레가 가장 크다. 수컷은 자란 환경에 따라 몸의 크기 차이가 크다. 3센티미터도 안 되는 게 있고 8센티미터가 넘는 것도 있다. 그래서 다른 종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넓적사슴벌레는 가장 흔한 사슴벌레다. 참나무가 자라는 숲이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사슴벌레는 애벌레 시기 나무줄기 속을 파먹으면서 자란다. 많은 종류의 딱정벌레 애벌레가 나무줄기 속을 파먹으면서 자라는데, 나무의 상태에 따라 딱정벌레 종류가 다르다. 싱싱하게 살아있는 나무를 좋아하는 딱정벌레가 있고, 힘이 약해진 나무를 좋아하는 딱정벌레가 있다. 사슴벌레 애벌레는 죽은 지 오래 된 썩은 나무 속에서 산다. 사슴벌레는 썩은 나무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분해자 역할을 한다. 사슴벌레는 어른벌레가 되면 먹이가 달라진다. 나무진이나 과일즙을 먹는다.

넓적사슴벌레를 나무줄기에 다시 붙여주자, 슬금슬금 나무 위로 기어오른다. 저 넓적사슴벌레는 짧은 여름밤에 할 일이 많다. 나무진을 찾아서 먹어야 하고 짝짓기를 하고 썩은 나무 속에 알도 낳아야 한다. 숲정이(마을에서 가까운 숲)라는 말조차 사라져가는 것을 슬퍼하면서 사라진 숲정이 문화를 되살리자는 어느 생물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름도 어려운 근린공원이나 어설프게 흉내나 내는 수많은 축제들을 내다 버리고 숲정이 공원을 만들고, 숲정이 축제, 참나무 축제를 벌이는 것을 제안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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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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