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내 삶을 결정할 권리

어리다고 빼앗길 수 없다

 

상헌청소년운동팀

 



지방선거로 한창 시끌시끌했던 6월 초, SNS상에는 ‘#선거법_위반을_자수합니다라는 해시태그 릴레이가 이어졌다. 현재 법적으로 정해진 나이가 되지 않아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지인들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 말하며 선거법을 위반했노라고 너도나도 자수한 것이다. 이 해시태그 릴레이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청소년들이 선거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 가지 의사표출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자수 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연락해 SNS상의 글을 지우라 하였고, 전라북도 선관위는 이 자수 글을 올린 한 청소년에게 이러한 게시글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이후 귀하의 선거운동이 확인되면 관련 규정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선관위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판단돼 수사기관에 고발하지 않고 행정조치인 구두 경고만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하였지만 한 청소년은 경찰서에서 출석 요구를 받기도 하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현재의 선거제도가 청소년들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이 알 수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제 60(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 1항에 따라 미성년자(19세 미만)의 선거운동을 금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선거운동이란 특정 후보가 당선되거나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자수 글에서 나왔던 지인들에게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견을 말한 것 또한 원칙적으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결국 청소년은 선거기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정신적 성숙은 나이와 상관없다

헌법재판소는 2012헌마287 결정문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상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의 경우,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거나,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단과는 달리, 나이는 미성숙성숙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당장 만 18세에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만 19세가 된다고 자신의 가치관에 일대격변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의 성숙은 특정 연령대에 진입해야만 이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청소년들은 대학 입시와 취업 문제로 많은 고민을 안고 있고, 학교 안에서도 현행 교육체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청소년들을 뭘 모르는 어린 애들이라고 자의적으로 재단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남이 결정하고 있다

왜 청소년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지 한 번 따져보자.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선거라는 수단을 통해 통치기구의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있으며, 그 선출된 대표가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만들거나 집행하는 정책·제도에는 청소년들의 삶이 들어있지 않은가? 아니다. 청소년들의 삶 또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통치기구의 대표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박근혜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려 했을 때 그 영향(피해)을 고스란히 받게 될 주체 역시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우는 청소년이 아니던가. 이처럼 교육정책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노동정책에서도, 보건정책에서도, 복지정책에서도 청소년의 삶은 예외가 아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청소년들이 선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남의 밥상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격이다. 몇몇 비청소년들은 너희는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청소년들 또한 자신의 삶에 직결된 정치에 참여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며, 바로 그렇기에 참정권 또한 청소년의 당연한 권리일 수밖에 없다.

 

필요할 땐 들러리, 아니면 무시

비청소년은 너흰 아직 어려서 정치를 모른다”, “애들은 가라며 청소년을 정치에서 배제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내걸며 학교 앞과 급식실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말하면서도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은 아직 뭘 모른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 이처럼 비청소년과 기성 권력집단의 기만적인 태도에 분노한 청소년들은 해시태그 릴레이를 통해 저항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청소년을 보호와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비청소년과 기성 권력집단은 순종을 거부하며 자수 글을 올린 청소년들에게 징역과 벌금을 운운하며 범죄자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청소년이 언제까지나 비청소년의 들러리로, 순종적인 존재로만 남아있을 순 없다. 정치에서 배제된다면 청소년의 삶은 나중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청소년 또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만 한다. 선거연령 하향, 청소년의 정치활동 보장과 같은 법제도의 개선은 이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