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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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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1.17 08:45

산맴돌이거저리

 

새해부터 어린이잡지에 자연놀이 연재를 시작했다. 멀리 시골이나 산에 가서 노는 게 아니라 아파트가 빼곡한 동네에서 자연을 찾아 노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겨울방학 때면 손이 얼어서 시커멓게 부르터도 추운 줄 모르고 누런 콧물을 훌쩍이며 온종일 골목과 공터와 동네 뒷산을 쏘다니며 놀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슬렁어슬렁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지만 놀이터에도 공원에도 노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놀 거리를 찾아 아파트 옆 숲으로 갔다. 동네 숲 구석구석에서 겨울을 나는 벌레를 찾아보기로 했다. 숲속 여기저기 쌓아놓은 썩은 참나무를 헤집으면서 벌레를 찾았다. 썩은 나무껍질을 들추니 개미 몇 마리와 노린재가 죽은 듯이 잠자고 있고 돌지네가 허겁지겁 나무더미 속으로 도망갔다. 톱과 도끼를 챙겨가서 나무를 쪼개보았다. 아늑한 벌레들의 겨울별장이 순식간에 여러 토막으로 쪼개졌다. 나무속은 벌레가 파먹은 자국과 벌레가 먹어서 가루가 된 나무부스러기로 차 있다. 나무속에서 조그만 하늘소 애벌레와 제법 큼직한 산맴돌이거저리 애벌레를 찾았다. 산맴돌이거저리 애벌레는 나무 서너 토막에서 여덟 마리나 나왔다.

쌓여있는 저 나무더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산맴돌이거저리 애벌레가 있는 걸까? 쌓여있는 나무의 절반쯤은 이미 많이 썩어서 굳이 도끼를 쓰지 않아도 조금만 힘을 주면 푸석푸석 부서졌다. 나무는 이렇게 점점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곤충학자 정부희는 <갈참나무의 죽음과 곤충왕국>에서 누가 쓰러진 나무를 분해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지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나무가 쓰러지면 나무속을 파먹는 곤충들이 찾아오는데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곤충은 나무좀이다. 나무좀은 나무껍질 바로 아래 나무속을 파먹어서 껍질과 나무속을 서서히 분리시킨다. 두 번째 도착하는 털두꺼비하늘소와 비단벌레류 따위 곤충들은 더 깊이 나무속을 파먹는다. 산맴돌이거저리는 세 번째 도착하는 곤충이다. 산맴돌이거저리 애벌레가 나무속을 불규칙하게 파먹고 돌아다니면 나무속은 닭 가슴살처럼 푸석푸석하게 된다.

동네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산맴돌이거저리는 농촌에 가면 표고버섯 농사를 망치는 해충이 된다. 털두꺼비하늘소처럼 골목(버섯을 키우는 나무) 속을 파먹어서 골목의 수명을 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산맴돌이거저리도 버섯만큼 좋은 먹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갈색거저리 애벌레, 밀웜은 반려동물의 사료로 널리 쓰이고 있고 고소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미래의 식량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갈색거저리 먹이는 곡물이다. 산맴돌이거저리는 썩은 나무만으로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먹는 곡식으로 키우는 갈색거저리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친환경적으로 키울 수 있다. 산맴돌이거저리 애벌레를 보면서 미래의 먹을거리를 생각해 보았다.

산맴돌이거저리 애벌레는 나무속에서 겨울을 나고 4월 말 쯤 나무속에 번데기 방을 만들고 그 번데기 방 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5월에 어른벌레가 되어 나무를 뚫고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아파트 바로 옆 숲속 썩은 나무에 수많은 산맴돌이거저리 애벌레가 겨울을 나는데도 어째서 산맴돌이거저리 어른벌레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산맴돌이거저리는 낮에는 어두운 곳에 숨어있다 밤에 나와서 숲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여름밤에 손전등을 들고 숲속을 살펴보았더라면 산맴돌이거저리 어른벌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작은 동네 숲도 참 많은 걸 품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다. 벌레가 숨어있고 재미있는 놀 거리가 감추어져 있다. 그곳에서 생태적인 미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사육 상자에 나무부스러기를 깔고 썩은 나무속에서 찾은 벌레들을 담았다. 벌레들은 사육 상자에 담겨 베란다에서 겨울을 날 것이다. 벌레들은 베란다에서 어른벌레로 자라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벌레를 키우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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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