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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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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3.01 13:29

알락수염노린재



겨울이면 아파트 베란다 구석으로 들어와 겨울을 나고 가는 손님이 있다. 고마로브집게벌레, 썩덩나무노린재, 알락수염노린재가 그런 겨울 손님이다. 이 겨울 손님은 집안에서 내내 살아가는 바퀴나 애집개미와 달리 겨울 한 철 베란다에 들어와 겨울잠만 자고 간다. 베란다를 지나서 집안으로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이 겨울 손님은 무당벌레처럼 떼를 지어 몰려오지 않는다. 한 마리씩 슬그머니 베란다 틈새로 찾아든다. 대 집주인은 한겨울에 베란다 구석구석을 들추어 대청소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 겨울 손님이 머물다 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우리 집처럼 베란다 창틀이 낡고 허술한 집엔 어김없이 이 겨울 손님이 찾아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겨울이면 놀이 삼아 집안에서 겨울을 나는 벌레 찾기를 해서 겨울잠을 자는 이 세 종류의 겨울 손님을 괴롭히곤 했다.


알락수염노린재는 텃밭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텃밭에서 만난 알락수염노린재는 베란다에 조용히 머물다 가는 겨울 손님이 아니라 길쭉한 주둥이를 작물에 찔러 넣고 즙을 빠는 해충이다. 긴 주둥이는 평소엔 가슴 아랫부분에 접고 있어서 볼 수 없지만, 작물에 찔러 넣고 즙을 빨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긴 주둥이를 찔러 넣고 즙을 빨면 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시들거나 병에 걸린다. 알락수염노린재는 봄에는 배추나 무 잎을 빨아먹고 가을에는 콩이나 참깨, 벼, 귤이나 감나무에 피해를 준다. 아직 여물지 않은 콩이나 참깨, 벼 이삭에 주둥이를 찔러 넣고 즙을 빨면 콩꼬투리나 벼 이삭이 까맣게 되고 열매가 들지 않는다. 여물어 가는 감에 주둥이를 찔러 넣고 즙을 빨면 빨아먹은 자리가 까맣게 된다.


주말농장 텃밭은 돌보지 않으면 금세 잡초로 덮여 풀밭이 되고 만다. 이런 풀밭에 꼬인 알락수염노린재와 같은 잡식성 곤충은 이웃 텃밭에 작물이 자라나면 더 맛있는 배추, 무, 가지, 토마토, 콩 따위 작물로 옮겨가서 피해를 준다. 알락수염노린재처럼 잡초와 작물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곤충 때문에 나처럼 게으른 얼치기 농부는 이웃 텃밭 사람들에게 ‘풀밭을 만들어 벌레를 꼬이게 한다’고 욕을 먹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밭과 논 과수원에 노린재가 몰려들어 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콩밭은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가 점령해 버렸다. 논엔 흙다리긴노린재, 더듬이긴노린재가 떼로 발생해서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과수원엔 썩덩나무노린재, 갈색날개노린재가 피해를 준다. 알락수염노린재 역시 점점 더 해충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노린재가 해충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노린재는 2000년대 들어서 빠르게 늘어나 여러 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해충이 되었다.


왜 노린재는 갑자기 불어나서 해충이 되었을까? “지구온난화로 인한 겨울철 고온 현상 때문이다. 산림, 논두렁, 강둑 등에서 월동하던 노린재가 겨울에 죽지 않고 이듬해 모두 발생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노린재의 천적인 양서파충류 숫자도 급감했다. 하우스 재배 증가와 농작물의 재배순서변화도 노린재 발생을 부추겼다. 노린재가 좋아하는 과수와 활엽수가 증가하는 식재 변화도 번성을 도왔다. 아무튼 노린재가 살기 유리한 방향으로 환경 조건이 변하고 있어서 개체 수는 더욱 급증하고 있다... 노린재는 새롭게 등장한 신흥해충세력이 되고 있다.”(작물을 사랑한 곤충/한영식/들녘)


텃밭에서 알락수염노린재는 아직 그리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알락수염노린재가 배추와 무 같은 십자화과 작물의 주요 해충으로 등록되어 있다는데, 배추벌레, 무잎벌, 벼룩잎벌레 따위엔 견줄 바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알락수염노린재를 점점 더 악명높은 해충으로 만들어갈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벌레 찾기를 해서 찾은 알락수염노린재 몇 마리를 그대로 베란다 구석에 돌려놓아 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베란다에 겨울을 나러 찾아온 겨울 손님 알락수염노린재를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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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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