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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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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3.01 13:51

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기획 회의가 끝나고 “잘 부탁드립니다. 산별 결의는 이 영상에 달려있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한 금속노조 교육실장의 기대와 농담이 섞인 말에 너무 부담스러워 ‘저희 안 할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그만큼 2006년 금속노조의 산별노조 전환 결의는 절박했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무거운 책임감이 속에서 <우리 하자!!>의 작업은 시작됐다.


2006년 금속노조는 그 해에 어떻게든 온전한 산별노조를 건설하려 했다. 2002년에 만든 금속산별노조는 대기업 노조가 빠진 반쪽짜리라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산별 전환을 결의하지 못한 대기업 노조들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금속노조 최대 사업장 현대자동차 노조는 조합원 총회에서 2번이나 산별 결의가 부결되며 ‘산별 트라우마’가 생겼다. 금속노조는 연초부터 산별 결의 분위기를 띄우고 조합원 교육도 빨리하고 싶어 했다. 이 일을 노뉴단이 잘하는 ‘닥치고 합시다’ 식의 목적성 강한 선전 교육물에 얹고 싶어 했다.


“자본주의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고 계십니까? 얼마나 억울하고 분해요? 그래도 살아야는 하지 않겠습니까? 방법이 뭘까요? 상대가 워낙 가진 것이 많으니 혼자보다는 힘을 모으는 것은 어떨까요? 노조 어때요? 한 노조보다는 몇 개 노조가 모여서 하는 것은 어때요? 아, 이제는 안 될 것 같아요. 산별이어야 되지 않을까요?” IMF 위기 이후 10여 년간 노동운동의 조직적 과제에 대한 화두는 단연 ‘산별’이었다. 이 시기 우리의 작업도 딱 거기에 있었다. 당시 우리 교육영상물 대부분은 이렇게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우리 하자!!>는 그 설득을 가장 그럴싸하게 한 작업이었다.


영상 첫 단락은 신자유주의에서 얼마나 힘든지 묻는다. 그러고 나면, 법이 허용하는 한 열심히 싸웠으나 도대체 이길 수가 없다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자고 말한다. 셋째 단락은 그래서 산별을 해야 한다고 ‘꼬시는’ 이야기다. 산별이 되면 노조의 힘이 강해지고, 힘이 있으니 그동안 못했던 요구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우리의 마지막 단락이 늘 그렇듯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몰아가면서 영상은 끝난다. 전체적으로 강한 이분법과 과감한 생략으로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극대화하는 전형적인 홍보 선전물이었다. 당연히 주입식이었지만 우리는 너무 적나라하지 않게 살짝 눙치는 방식을 고민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노동자들의 일상이 나온다. 이어서 인터뷰가 쏟아진다. “산별 알아요?” “모르는데요.” “글쎄요.” “들어는 봤는데요.” “산별 필요해요?” “무조건 찬성은 아니야!” “낙관적으로 보지는 않아요.” “당장은 그렇지만 크게 봤을 때 단사에 이익 아닌가?” “산별 만들 수 있을까요?” “해야죠.”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어, 하면 되지.” 이 3분의 프롤로그가 사실 작품의 전부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42분은 프롤로그를 자세히 늘린 것이고 형식도 프롤로그 인터뷰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은 이전보다 조합원 인터뷰와 사례 인용을 압도적으로 늘렸다. 인터뷰 분량도 그렇지만 전국에 흩어진 자동차 4사 조합원들을 만나려고 꼬박 3주가량 지역을 돌며 인터뷰 촬영을 촘촘히 해냈다. 이 작품은 나레이션 중간에 가끔 인터뷰가 나오는 게 아니라, 인터뷰 사이를 잇기 위해 나레이션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터뷰가 주요 서사구조였다. 어쩌면 작품에 대한 부담을 조합원들에게 살짝 떠넘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봐요! 우리가 한 말이 아니에요. 조합원들이 말하고 있잖아요.’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망정 결국 모두 해피한 결말에 이르렀다. 금속노조는 작품의 풍부한 인터뷰가 산별 결의를 마치 조합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 같은 인식을 심어줘 좋았다. 작품은 산별 결의를 앞두고 상당히 활용도 있게 잘 썼다. 이 해에 현대자동차 노조를 시작으로 자동차 4사 노조가 산별 결의를 가결하며 작품을 시작한 지 딱 1년 뒤인 2007년 2월 대의원 대회에서 금속노조는 보다 완전한 산별로 새롭게 태어났다. 부디 “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의 가사처럼 몸과 마음이 죽을 만큼 힘든 노동자에게,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에 빠져있는 노동자에게, 산별노조가 친구가 되고 위로가 되어 주기를.



* <우리 하자!!>: 2006년 2월 45분 / 제작 전국금속노조 / 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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