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81_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 파업.jpg

[사진: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난방 파업’, 추위를 이겨낸 연대


허운┃학생위원회(서울대분회)



‘난방 파업’이라고 알려진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이 지난 2월 12일 닷새 만에 막을 내렸다. 예상치 못한 사회적 관심 속에서 학생들의 여론도 크게 두 갈래로 나뉘며 긴장을 낳기도 했다.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이 파업에 이른 과정과 투쟁 경과를 살펴보며, 그 속에서 발견한 연대의 가능성을 다시 짚어보자.


이름만 정규직화, 책임은 외면한 대학 당국

2017년, 문재인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정규직화”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실상은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전환처럼 계속 차별을 유지‧고착하는 방식이었고, 실질적인 개선은 기대할 수 없었다. 2018년 3월, 서울대학교도 그 기만적인 대열에 합류했음을 공표했다. 전환된 노동자들은 일부에 불과했고, 2019년 2월 현재까지 무기계약직으로조차 전환되지 못한 채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


2018년 9월, 시설관리노동자들과 학교당국간 단체교섭이 시작되었다. 학교 측 담당자들은 온갖 구실로 책임을 회피했는데, 당시 총장이 공석이라는 핑계도 댔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은 1년 전인 2017년에 결정된 임금에 최저임금 미달분만 추가로 받으며 일해야 했다.


양보 끝에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

그 와중에 노동자들은 교섭 성사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교섭의 성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러 요구 조건을 양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당국의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은 11차례나 파행을 맞았고, 지방 노동위원회 조정회의 또한 두 차례나 연기되었다. 노동자들이 파업권을 얻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 노동조합 간부는 “차마 연휴를 앞두고 그런 소식을 조합원들에게 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연휴가 지나고 파업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하면서 여전히 학교의 운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파업 기간 중 학생들이 지지 방문하자, 한 노동자는 학내 중요 연구 시설 등에는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하려고 노동조합에서도 고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전기가 끊긴 건물은 한 곳도 없었고, 도서관을 포함한 서너 개 건물의 난방이 중단됐다. 그러나 역시 파업은 파업이었고, 학내 구성원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학생을 볼모로”? 노골적인 노조 혐오

학생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총학생회에 도서관 난방 중단에 대한 제보가 접수됐고, 총학생회는 “파업권을 존중”하지만 “도서관은 파업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발송했다. 이는 총학생회 입장이 ‘사실상 파업권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는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고, 같은 학내구성원인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위해 학생들이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쏟아졌다. 이에 따라 총학생회는 결국 입장을 수정하게 됐다. 하지만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이나 자유한국당 등이 잇따라 표명하고 보수언론이 확산시킨 노조 혐오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중앙도서관장 서이종 교수의 글을 보자. 그는 조선일보에 기고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 대학의 핵심 시설인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을 끄고… 임금 투쟁하는 나라가 있는지” 묻고 싶다며 글을 끝맺었다. 그런데 실상 그 ‘어느 나라’들에서는 공공기관 파업을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노총 격인 노동총동맹(CGT)이 직접 민주노총에 ‘학생을 볼모로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며 대체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 재차 되묻기까지 했을까.


그들이 외면한 학생들의 연대

학내에서는 이전부터 노동자들과 연대하던 학생들이 파업을 맞아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고, 파업을 지지하는 단체와 개인 대자보도 곳곳에 붙었다. 총학생회 역시 초기 입장을 둘러싼 논란 이후 간담회와 내부 논의를 거쳐 노동자들과 연대해 빠른 해결을 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학교 당국의 바람과 달리, 학생들의 반발과 사회적 비난 여론에 부딪혀 파업이 힘을 잃는 일은 없었다.


학생들은 한편으로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공동 책임을, 다른 한편으로는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연대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가능성을 강조하며 투쟁에 함께했다. 또한 파업을 거치면서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언제나 당연하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사합의와 파업 종료, 끝이 아닌 시작

비록 파업이 승리하고 노사합의를 끌어냈다고는 하나, 그 합의는 노동자들의 양보 끝에 나왔다. 20% 임금인상, 대부분의 국립대에서 사라진 상여금, 최소한의 복지 등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온전한 정규직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고 시설관리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수준도 여전하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 발견한 가능성을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이번 파업에서 발견한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는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소중한 발판이다. 파업은 끝났지만, 우리의 연대는 끝나지 않았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