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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박탈 넘어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고근형┃학생위원장



범죄재벌 한진그룹 총수일가 경영권을 박탈할 기회가 왔다. 국민연금*이 오는 3월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주주권을 행사해 범죄 총수일가 경영권을 박탈하는 방향으로 정관 개정을 추진한다고 시사한 것이다. 이번 3월은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래 첫 주주총회 시즌이다. 이 기회에 범죄재벌 총수들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총수일가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지의 문제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한진칼 주주총회, 범죄재벌 경영권 박탈하는 출발점

작년 말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한 위원이 ‘2019년 3월 한진칼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자’고 제안했다.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온갖 범죄행위가 2018년 내내 사회적 공분을 샀던지라, 범죄자들을 기업 경영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취지다. 결과적으로 지난 2월 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대한항공은 제외하고*** 한진칼에서만 주주권을 행사한다고 결정했다.


중요한 건 주주권 행사의 내용이다. 국민연금은 이번 주총에서 '이사의 배임 또는 횡령죄가 확정되면 해당 이사를 결원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을 한진칼 정관에 추가하기로 했다. 현재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수백억 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만약 이번에 정관 개정이 주총을 통과하고 이후 재판에서 조양호의 형이 확정되면 한진칼 사내이사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횡령, 갑질은 물론이고 노동 탄압 등 악질 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정관 개정을 밀어붙여야 하는 이유다.


이 경우 관심은 다른 범죄재벌 총수들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삼성 이재용과 롯데 신동빈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와 횡령으로 1,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비록 지난해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지만, 여전히 3심이 남아있다. 오는 4월로 예정된 이재용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다면, 이재용은 꼼짝없이 횡령 범죄자가 된다. 조양호를 시작으로 삼성 이재용, 롯데 신동빈 등 모든 범죄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박탈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쌓아 올린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고 사익을 챙긴 범죄 총수들을 처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81_국민연금의 범죄재벌 경영권 개입.jpg

[사진: 변백선]



범죄재벌 밀어낸 자리, 주주자본주의는 대안인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로 범죄재벌 총수일가 경영권을 박탈했다고 치자. 그럼 그 빈자리는 누가 메워야 할까? 국민연금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 목적으로 ‘배당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의 이윤 가운데 주주들에게 배분하는 몫을 더 늘리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당장 남양유업과 현대그린푸드를 콕 집어 배당확대를 요구했고, 이 가운데 현대그린푸드는 요구를 수용해 배당 성향을 두 배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국민연금은 현대그린푸드의 조치에 만족하며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로서 현대차그룹과 현대백화점 사내식당 등에서 급식과 식품사업을 벌이는 이 현대그린푸드라는 회사는 현재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활용해 임금 깎기를 자행하면서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주주의 이익추구가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정면충돌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이윤을 내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주주자본주의와 재벌총수체제는 같다. ‘총수일가 vs 주주'의 구도는 애초에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또다시 노동자를 쥐어짤 다른 누군가를 불러오려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이제 기업의 민주적이고 공적 통제를 위한 대안을 정립해야 한다. 당연히 자본주의에서 그 누구도 이런 민주적 통제를 선사해주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총수, 경영자, 주주 등 자본소유자들의 이해에 맞서 함께 모여 힘을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약 8%를 보유하고 있어, 총수인 조양호 회장(지분율 17%) 다음가는 대주주다.

** 연기금 등의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자금 투자자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행동지침. “수탁자책임 원칙”이라고도 한다.

*** 현행 자본시장법상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보유목적이 ‘단순투자’인지 ‘경영참여’인지 밝혀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대한항공 지분 보유목적은 ‘단순투자’로 돼 있다. 그런데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보유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해야 한다. 이 경우, 자본시장법은 ‘6개월 이내 발생한 해당 주식 매매차익을 기업에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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