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변혁적 여성운동, 

이제 대중 앞에 서야 한다


선지현┃충북



최근 이토록 파괴적이고, 힘 있는, 대중운동이 있었을까

2015년, 온라인에서 퍼진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여성 혐오‧차별과 억압의 질서가 여성들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많은 논란이 이어졌고 일부에서 드러나는 분리주의** 경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이 논쟁은 여성혐오와 억압 문제를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이어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은 이제 온라인에서 공유하던 그녀들의 분노와 각성을 거리에서 발산했다. 남성 권력과 국가,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제도들이 통제하고 은폐했던 문제들을 드러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촛불항쟁과 만난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혐오와 억압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며 여성에 대한 폭력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성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3.8여성의 날을 계기로 성별 임금 격차, 낙태죄 폐지, 여성 노동에 대한 구조적 차별 등 성 평등을 위한 여러 요구가 등장했다.


아주 오랫동안 뿌리내렸던 한국 사회 성별 권력과 위계적 질서, 그 속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뿌리째 뒤흔든 것은 바로 2017년 미투 운동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연극영화계, 문학계, 학교, 정치권, 종교계로 퍼져나간 미투는 그야말로 폭발이었고, 기존 질서의 파괴였다. 미투 운동은 사회의 남성 권력자들을 놀라게 했고, 그들을 주춤거리게 했다. 물론 곧바로 남성 권력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여성주의(를 자처하는)자들이 백래시***와 반격을 시도했지만, 여성들의 분노는 주저앉지 않을 기세다.


5차례 걸쳐 열렸고 최대 6만 명이 모인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해왔던 활동가들을 놀라게 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여성(해방)운동 이후 처음 경험하는 대규모 여성 집회였다. 이 시위 역시 많은 논란을 낳았고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의 논쟁도 만들었지만, 이는 대중화한 여성운동이 겪는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다양한 여성 주체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크고 작은 페미니즘 모임이 엄청나게 생겨났고 페미니즘을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연극과 영화들도 나왔다. 법의 판결과 정책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여성들이 침묵을 거부하고, 일각에서 벌이는 마녀사냥에 굴하지 않으면서 투쟁한 결과다. 이는 분명 한국 사회 변화를 추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다.


본격화하는 반격들

2019년에도 이어질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 성차별적 권력 관계와 함께 성폭력을 용인하는 사회구조를 뒤집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회적 반격은 만만치 않다. 권력화 한 남성들의 폭력에 대항하는 미러링은 ‘도덕적 정의’를 내세우는 공격에 시달리고, 일부 여성 시위에서 나타난 분리주의 경향들은 거센 반격을 맞고 있다. 이 반격을 행하는 것은 권력자들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여성(해방)운동 활동가들도 불편함을 표출하고, 논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반격의 초점은 그것이 아니다. 여전히 성별 권력 체제를 옹호하는 흐름이고, ‘여성(해방)운동은 평등주의에서 멈춰야 한다’는 흐름이며, 나아가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나서 사회 변화를 이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현재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반격과 다양한 백래시는 여성들을 다시 저들이 말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묶어두고, 국가의 필요에 따라 동원하며, 평등을 여전히 소수 여성 엘리트의 전유물로 제한하려는 권력자들의 몸부림이다. 이를 전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양하게 확산하는 여성(해방)운동을 일차적으로 옹호할 필요가 있다.


변혁적 여성운동, 묻지 말고 답해야 한다

여성(해방)운동이 대중화하면서 당연히도 다양한 입장이 표출된다. 수십 년 동안 여성 운동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자유주의 경향이 있다. 1960년대 급진적 여성운동의 세례를 받은 여성(해방)운동의 분화는 꽤 다양하다. 특히 최근 미투 운동 과정에서 나타나듯 ‘여성들에게만, 여성들만, 여성들을 관통하는 폭력과 억압’을 강조하며 여성운동의 주체와 운동 방향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하는 시도와 주장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흐름은 다양한 맥락과 역사적 흐름, 경제‧사회적 조건에서 비롯하는 여성의 억압과 차별 문제를 묻어 버리고 때로는 주변화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위계적 권력 구조가 배제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것은 결코 여성(해방)운동의 길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81_대중적 여성운동이 던진 과제.jpg




그에 비해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변혁적 여성운동은 대중에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여성(해방)운동에서 ‘노동’의 문제가 기각되는 상황은 전적으로 사회변혁과 여성운동을 결합해왔던 운동 주체들의 책임이 크다. 지난 미투 운동 과정에서 성별 임금 격차,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여성 차별적 고용구조와 관행의 문제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슈를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여성의 경제 진출은 수적으로 늘어났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 노동 전반에 만연한 저임금구조가 존재한다. 더군다나 ‘일‧가정 양립’이라는 명분으로 여전히 여성들은 재생산 노동의 굴레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체제를 변혁하는 운동과 직결하는 이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운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부차적으로 남아있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미투 운동으로 확산하는 대중적 여성운동을 쫓아가거나, 기각되고 있는 문제들을 제기할 뿐, 변혁적 여성운동의 전망을 세워 주체를 결집하고 운동의 의제를 선도적으로 던지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 변혁적 여성운동은 여전히 자유주의와 급진주의 운동 사이에서 부유하거나, ‘문제는 계급’이라는 말로 환원하면서 무력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미 우리는 △여성의 노동을 제약하는 가사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여성의 몸에 대한 온전한 권리 △여성 노동에 대한 동동한 인정 △위계적 조직문화의 단절과 파괴 등 여러 의제를 제출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와 맞물려 견고하게 뿌리내린 성별 권력,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 성적 통제와 착취의 질서를 바꾸는 문제에 대해 이론적 논쟁을 넘어 대중운동의 조직화로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변혁 운동 안에도 여성(해방)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려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를 ‘노동’의 문제와 ‘()성’의 문제로 분리해 과제를 나눠버리면 변혁적 여성운동 주체는 만들어질 수 없다. 또한 우리의 실천이 여전히 자유주의 혹은 급진적 경향의 여성운동 주체들이 이끄는 의제에 갇혀 있거나, 모든 것을 그저 계급 운동으로 환원하는 태도(말은 아니라고 하더라도)에 머물러 있다면 사회변혁 운동에서 여성(해방)운동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변혁적 여성운동은 여성(해방)운동의 요구들을 정치화하고 세력화해야 한다. 우리를 집단으로 세워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변혁적 여성운동은 기존 운동 사회에서 마녀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운동 사회의 위계적 성별 권력과 성별 분업, 여성운동을 주변화하는 이데올로기들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를 흔들며 전개된 지난 4년의 여성(해방)운동은 남성 권력자들과 주류 세력을 향해 ‘우리는 마녀다’라고 각인시켰다. 미투 운동이 보여준 기존 질서의 파괴는 변혁적 여성운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많은 성찰과 영감을 준다. 변혁적 여성운동은 이제 대중적 여성운동 속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낼 준비에 나서야 한다.



* ‘거울’을 뜻하는 영어단어 ‘미러(mirror)’에서 따온 말로,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만연한 여성혐오적 언행을 의도적으로 성별 구도를 바꿔 모방한 것.

** 남성이나 성소수자 등 여성이 아닌 집단과의 연대에 부정적이고, 여성만이 온전히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상정하는 여성주의의 한 경향.

*** ‘백래시(backlash)’는 사회변화에 대한 반발을 뜻하며, 특히 대중적 여성운동의 성장과 함께 그에 대한 혐오나 반동적 흐름이 거세지는 것을 의미.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