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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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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 

이제 동요의 시간을 끝내야 할 때


정나위┃서울


문재인정부, “2019년은 친재벌의 해” 선언

지난 12월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82쪽 분량의 이 문서에는 “혁신”이 21번, “성장”이 20번, “규제”가 13번 등장한다. 반면 “노동”이라는 단어는 고작 8번에 그친다. 그나마 ‘노동시장 구조개혁’, ‘노동시장 애로 해소’, ‘노동생산성’ 등으로 표현될 뿐이다. “노동존중”은 사라졌다. 문재인정부 3년차, 바야흐로 정책 키워드는 “노동존중, 소득주도성장”에서 “규제완화, 혁신성장”으로 탈바꿈했다.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민영화와 규제완화다. 재벌대기업 지원과 기업투자 활성화에 사활을 건다. 공공시설에 대한 민간투자 범위는 기존에 허용하던 도로‧철도 등 53종에서 아예 모든 공공시설로 확대했다. 공공투자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 검토를(신규 공공 투자사업을 사전 검토하는 제도로, 사업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일명 ‘예타) 면제한다. 여기에 정부가 최소 6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반해 노동정책은 처참하다. 최저임금, 노동시간은 개악 시기까지 명시했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기업 지불능력’을 포함해 기업의 편의를 봐주고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명분으로 결정구조에서 노사합의를 무력화하는 개편안을 내놓았으며 △이를 위해 2월 중 법 개정을 예고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52시간 노동제를 ‘보완’한다며 2월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기간확대를 처리하고, 노동시간 단축 위반사업장 계도기간은 추가연장을 검토한다며 처벌을 다시 미룬다. 공공기관부터 직무급제 도입, 광주형 일자리 확산 등도 계획으로 내놨다.


지난 2월 19일, 이 경제정책방향에 따른 첫 야합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벌어졌다. 이제 문서는 종이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이 되고 있다.


탄력근로제: 재벌에 노동시간 유연화 선물

첫 개악은 노동시간 유연화다. 경사노위에서 노‧사‧정이 야합한 탄력근로제 기간확대는 경영계의 오랜 민원이었다. 이로써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제 기간이 6개월로 늘고, 도입요건도 대폭 완화된다.


경영계는 단위기간 확대뿐만 아니라 기존에 노동시간을 일별로 정하던 것을 주별로 정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업주가 노동시간을 훨씬 유연하게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도록 해줬다. 공짜 장시간 노동이라는 현찰을 얻은 셈이다. 반면 노동일 사이의 11시간 연속 휴게시간이나, 탄력근로제 확대로 줄어드는 임금에 대한 보전방안은 구체적 내용도, 강제력도 없는 백지수표다.


합의 직후, 청와대와 민주당은 경사노위 합의안을 토대로 빠르게 법안 처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영계는 환영 일색이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은 한 술 더 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1년으로 확대, 도입요건 추가 완화 등을 언급하며 국회 처리과정에서 추가개악 가능성을 내비쳤다. 탄력근로제는 국회 개원 시 1순위 처리 법안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꼼수 합법화

3월에는 정부 주도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과 국회의 최저임금법 추가개악이 예고돼 있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전문가 9인으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인상폭을 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결정위원회가 인상률을 결정한다. 사실상 노사합의 무력화다. 자본가단체의 대표 격인 경영자총협회(경총) 손경식 회장이 “일부 진전된 안”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정부 안이 국회로 넘어가면 최저임금법 추가개악 가능성도 높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추가개악 법안만 15개가 발의돼 있다. 핵심은 최저임금 차별적용으로 인상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업종별·지역별 △이주노동자 차별적용 등이 주요 내용이며, △최저임금 격년 결정제 △최저임금 위반 벌칙 삭제 △주휴수당 산입범위 포함 등의 법안도 있다. 반면, 2018년 최저임금법 개악을 원상회복 시키는 법안은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노동권 보장: 약속도 의지도 없어

올해는 ILO(국제노동기구) 창립 100주년이고 대통령이 직접 올 6월 ILO 총회에 참석한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노동권 보장에는 진척이 없다. 되려 노조활동 제약이 다가온다.


2018년 11월, 경사노위 산하 노동관계제도개선위원회(제도개선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골자로 하는 ‘공익위원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공익위원 합의를 토대로 발의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오히려 노조 할 권리를 후퇴시켰다. ‘사업장 종사자’로 범위를 국한시키면서 산별노조, 민주노총과 같은 상급단체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해당 현장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제약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자본가단체들의 요구는 아예 노동3권 자체를 틀어막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경사노위 제도개선위는 3월까지 논의를 연장해 경영계 요구를 포함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공익위원들은 자본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조항 신설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 △사용자 일방통보로 단협 해지 허용 △쟁의행위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등을 제안했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해서는 면피성 언급만 반복하고 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 2천 일을 앞두고 있으며, 250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약속도 사라졌다.


81_노동개악으로 가득한 시간표.jpg




경사노위: 간판은 대화, 내용은 개악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기간확대에 합의함으로써 노동개악 합의기구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지난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가 좌초된 민주노총 집행부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4월 4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재논의할 가능성도 높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합의에 대해서도 절차적인 문제를 주로 제기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주도로 개정한 경사노위법”, “이것은 사회적 대화가 아니다” 등의 표현으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못한 합의’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경사노위 합의 직후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경사노위 참여해서 교섭하고 투쟁하면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1월 대의원대회 전에는 모두가 민주노총 위원장 말에 귀 기울였으나 이제는 정보 얻기도 힘들다”, “(경사노위 불참함으로써) 명분과 실리 모두 빼앗겼다” 등의 볼멘소리도 공공연히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노총 2019년 사업계획에는 네 차례 총파업 투쟁계획이 명시돼 있으나 사회적 대화도, 사회적 투쟁도 벌이지 못한 채 현안에서 ‘패씽’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조: 더 넓게, 더 아래로

이처럼 올해는 길목마다 노동개악이 줄지어 노동자의 발목을 거는 형국이다. 정부가 주도하고 집권여당이 집행하며, 경영계는 뒤에서 박수치고 야당은 간간이 숟가락 얹는다.


“책임 있는 곳에 전선을 치라”는 말처럼 이 모든 개악의 책임자 문재인정부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민주노총 집행부는 개악의 도구일 뿐인 각종 기구들에 대해서만 탓하고 있다. 최저임금 개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논의’를 요구하고, 탄력근로제 개악은 ‘민주노총 없는 틈을 탄’ 밀실야합 규탄에 그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경사노위, 국회 일정만 쫓는 수준의 투쟁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오히려 돌파구가 보이는 곳은 현장이다. 민간위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3단계 정규직화 계획은 ‘처우개선’ 수준으로 대폭 후퇴할 전망이다. 이 처우개선마저도 정부 일각에서 ‘자칫 노조설립을 부추긴다’는 논리로 대상과 범위를 최소화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정규직화 제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고문만 안겼던 정부가, 공공부문 민간위탁은 아예 고착화할 기세다. 이에 분노한 공공부문 민간위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역 곳곳에서 싸움을 준비하고 있으며, 7월 공동투쟁 논의도 활발하다.


대우조선 매각 발표를 기점으로 ‘구조조정 저지-기간산업 공영화’ 투쟁도 활발해지고 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의 상경투쟁과 농성에 이어 현대중공업지부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로 마쳤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완전한 노동3권 쟁취와 ILO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1만 명 규모 투쟁을 4월로 겨누고 있다. 지난해 민간-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며 연대의 기운을 높였던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도 5월과 7월 각각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재벌로 기운 문재인정부가 아니라, 일터에 밝혀지고 있는 촛불, 더 많은 노동조합과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개악은 노조 없는 저임금·비정규직·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를 겨누고 있다. 민주노조가 힘을 기울여야 할 곳도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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