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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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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2.18 18:59

“너 페미야?”


<입만 열면 청년> 기획팀



“너 페미야?” 일종의 낙인이 되어버린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리고,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혐오가 범람하는 이 시대, 페미니스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세 명의 청년을 만나보았다.



솔현: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민수: 저는 민수고요. 인천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에 가끔 나가고 있어요. 이제 마지막 학기가 끝나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지예: 올해 성공회대를 졸업한 윤지예라고 하고요. 지금은 시험 준비하는 취준생입니다.


소연: 저는 이소연이라고 하고요. 올해 명지대를 졸업해서 인턴 생활 중입니다. 학교에서는 페미니즘 북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솔현: 그러면 혹시 스스로 언제부터, 무엇을 계기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지예: 옛날부터 불편한 것은 있었는데 어떤 감정인지 몰랐거든요. 2학년 때인 2015년쯤에 여성학 강의를 우연히 들었어요. 그때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소연: 저는 원래 활동하던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 동기들이 알려준 것 같아요. 같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대해 제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도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마음을 먹고 활동했어요.


민수: 저는 처음에 이상한 말도 했었는데, 친구들을 잘 만나서 책도 읽고 하다 보니까 하나씩 받아들이고. 예전에는 불편한 줄 몰랐던 것들도 당연히 불편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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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현: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페미니즘 얘기를 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연: 저는 세 살 위 오빠가 있는데 성차별주의자예요. 가족끼리 일본 여행을 갔을 때 <82년생 김지영> 일본 버전을 샀는데 오빠가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싸웠는데, 얼마 뒤에 오빠가 책 추천을 요청하더라고요. 이때다 싶어 페미니즘 소설을 추천했어요.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건데, 오빠가 책을 읽고 너무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노하우를 얻었어요. “너 페미냐?”라고 했을 때 직접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말고 돌려서 얘기하면 알아듣지 않을까. (웃음)


지예: 저도 남자 형제 있거든요. 진짜 공감 가요. 저도 페미니즘 관련해서 싸우고 몇 개월간 걔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어요. 그래도 대화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일 선물을 줬는데, 장문의 편지가 온 거예요. ‘정말 미안하다, 혼자서 열심히 찾아봤다’며 자유롭게 얘기하자고 했어요.


민수: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인권 문제나 사회주의 얘기를 하면 이상한 취급당하는 분위기잖아요. 나를 이상하게 본다는 느낌이 들 때 답답하고, ‘저 사람이랑은 대화가 안 통하겠다’ 싶기도 하고. 얼마 전에 부분적인 채식을 하려고 고기를 안 먹기 시작했는데, 아빠가 하루는 집에서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면서 저한테 ‘왜 고기를 안 먹냐, 귀가 얇아서 그런 거냐’고 하더라고요.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요.



솔현: 페미니즘 얘기를 꺼낼 때 주변 반응이 어떤지, 특히 “너 페미야?”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처하나요?


민수: 제가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하니까 과 동기가 시비를 거는 거예요. ‘이퀄리즘이 맞지 않냐’고. 근데 이렇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권력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 페미냐?” 라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너 페미면 찍어 누르겠다’는 게 있잖아요.


솔현: 맞아요. 저는 위축이 되더라고요. 사실 그게 범죄로 이어질 수 있고요. 저도 카톡방에 초대된 적이 있어요. 일베 카톡방에 불쑥 초대돼서 “페미년 초대했다.”라면서 엄청난 욕이랑 징그러운 사진이 막 올라오고. 그런 질문을 들으면 이런 게 무서워요.


소연: 저는 인턴을 처음으로 하게 된 거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제가 일하는 데는 90%가 여성이에요. 식사 중에 관심사를 묻길래 페미니즘이라고 하니까 다행히 관심사가 같은 분이 많아서, 직장 동료에서 같이 활동하는 친구가 된 느낌을 받았어요.


지예: 저는 게임을 하거든요. 게임 내에서도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많아요. 그럴 때는 솔직히 말해서 미러링이 효과적인 것 같아요. 그러면 절대로 저한테 “너 페미냐?”라고는 안 하죠. 자기들도 싸우기 싫으니까.


솔현: 저도 게임을 많이 하는데 어떤 게임들은 보이스가 중요하거든요. 그러면 정말 무수히 많은 온도의 여성혐오를 당해요. 공주님처럼 대해주는 사람도 있고, 여자가 게임을 왜 하냐는 사람도 있고. 차라리 보이스 활동을 안 해도 되는 오버워치를 하는데, 저 때문에 게임을 다 이기면 딱 보이스를 켜요. 여자가 잘한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지예: 가끔 충고로 ‘그렇게 살면 불편하지 않으냐, 그쪽에 친구들 많으냐.’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특히 저도 생각이 있는데 마치 친구들에 의해 휘둘리는 것처럼 말하면 정말 화났어요. ‘이렇게 나를 무시해도 되냐’고 하니까 ‘그게 왜 무시냐’면서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민수: 한국 페미니즘이 틀렸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그런 심리 같아요. 페미니즘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쪽팔리고, 그렇다고 인정하기는 싫고. 그래서 한국 페미니즘이 틀렸다고 하는데 뭐가 다른지도 모르고. 과격하다고 하는데 사실 온건하죠.


소연: 저는 재단법인에서 일했는데, 이사들이 다 중년남성이었어요. 이사장 취임식 한다고 회식을 하길래 빻은* 얘기 하면 어쩌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런 얘기 안 했어요. 아... 그런데 여기서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전 어차피 비정규직이니까 얘기해도 되겠다. (웃음) 전 이사장이 “와인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아느냐”면서, “와인을 처음 마셨을 때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왕자님이 키스할 때 나오는 분비물처럼 머금고 있다가 마셔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모두: (경악)


소연: 잔을 던지고 싶었는데 꾹 참고. 옆에 본부장님이 당황하셨는지 ‘그런 얘기 하시면 어떡하냐’고 무마했는데, 50%의 용기가 더 있었다면 맥주를 그 사람한테 뿌려서 그 얘기 못 하게 했을 것 같아요.


솔현: 저는 샤워할 때마다 생각해요. ‘이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반응해야지?’하고 축적해놔요. 나중에 문서로 정리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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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현: 그럼 본인의 공간에서 소소하게 페미니즘 실천을 했던 게 있을까요?


지예: 일하는 곳에 생리휴가를 잘 활용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입사 1주일 만에 알게 될 정도로 그분이 따돌림받는 걸 느꼈어요. 어떤 분이 ‘저 사람은 매번 금, 토, 일 이렇게 쉰다’면서 흉을 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흘리듯이 “근데 생리가 하루만 하는 것도 아니고... 혹시 생리 하루만 하세요? 생리휴가 여러 번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니까 “생각해보니 그러네요.”라면서 넘어가고 이후에 그런 말은 안 하시더라고요.


솔현: 저는 일부러 무안 주기. “아직도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있네.”라던가 “너 진짜 19세기에서 온 줄 알았어~” 이렇게.


지예: 맞아요. 이거 진짜 효과 있어요!



솔현: 저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게 ‘살아남는 것’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한국 사회에서 잘 살아남는 소소한 팁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소연: 남의 시선에 신경 안 쓰기.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관심 두고 있다고 하면 다들 ‘왜 저렇게 살지?’ 하는데. 그런 것에 신경 안 쓰고 나만의 길을 내가 창조해서 가면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하루에 열 번씩 외쳐야 돼요. (웃음) 나는 할 수 있다!


민수: 막상 상황에 마주치면 머리가 하얘져서... 차분하게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도시가스 검침원 고공농성 할 때 아빠가 갑자기 “위험하다고 해서 2인 1조를 요구하다니.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혼자 생각하면서 ‘아빠가 자본가냐고 꼭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어요.


지예: 자신을 믿고 나타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솔현: 마지막으로 나를 화나게 했던 사람들한테 시원한 한 마디.


소연: 저는 그 말을 해주고 싶어요. 세상은 너 혼자 사는 데가 아니야. 네 잘난 맛에 사는 데가 아니야. 한마디로 말하면, “그렇게 살지 마.”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민수: 저는 이런 방향이 결국에는 바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너 도태되는 거다.”

지예: 저도 비슷하게 말해주고 싶네요.



민수 님의 말처럼, “너 페미냐?”고 당당히 물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젠더권력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 페미니스트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 원래는 외모를 비하하기 위한 표현이었으나, 트위터 등지에서 인권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을 두고 ‘(머리 또는 생각이) 빻았다’고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넓게 쓰인다. 



* 입만 열면 청년 |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청년’에 대한 얘기를 쏟아내는 세상이다. 호명된 객체가 아닌, 발화의 주체로서 청년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들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이 사회를 바라보는 청년의 시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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