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문재인 정부와 산업은행,

 

기간산업 팔아먹는 데

맛 들였나…

 

국유화 대안 논의 본격화할 때

 

 

기관지위원회

 

 

 

막대한 공적 자금이 들어간 기간산업을 매각하거나 민영화하는 사태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주역은 문재인 정부와 산업은행이다. 각각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이 인수 절차를 밟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은 물론이고, 지난 연말 매각협상대상자가 선정된 한진중공업에 이어 최근에는 HMM(구 현대상선)까지 민영화설이 보도되고 있다. 이 기업들은 모두 파산 위기에 직면해 산업은행이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사실상 국유기업 형태로 전환되거나(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HMM) 대규모 금융 지원을 받는(아시아나항공) 등 공적 자금 투입으로 생존한 곳들이다. 그러나 정부와 산업은행은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한편, 다른 민간자본(주로 재벌대기업)에 팔아넘기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전형적인 ‘손실의 사회화-이윤의 사유화’다.

 

이 가운데 지난 1월 27일 민주노총에서 <조선‧항공 등 기간산업의 재벌 특혜성 매각 대응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일단 인수 협약이 체결돼 당장 본격적인 합병 절차를 밟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문제를 중심으로 매각과 구조조정에 맞선 공동투쟁을 타진하는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자리였다.

 

 

 

정씨 일가에게

조선산업 바치나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은 공적 자금 투입 기간산업의 재벌 특혜 매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띤다. 또한 정부와 산업은행이 이런 방식의 매각‧민영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저지하고 국유화 대안을 제기하는 싸움을 하나의 전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앞으로 다른 구조조정 사업장 투쟁에도 (전망을 찾지 못하고 정부와 사측의 협박에 굴복하느냐, 노동자의 대안을 쥐고 싸워보느냐의 갈림길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먼저 현재 본궤도에 올라 있는 두 기업의 매각이 어떤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예고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제시됐다. 대우조선해양에 관해 발제한 이승철 변혁당 집행위원장은 “현대중공업이 단 6,500억 원을 들여 2018년 기준 영업이익 1조 원을 기록한 대우조선을 집어삼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심지어 이 과정에서 기존 대우조선 최대주주(지분율 55.7%) 산업은행이 회사를 넘기는 대가로 받는 것은 현대중공업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하기 위해 새로 분할‧신설하는 법인)의 ‘주식’일 뿐, 현금으로 받는 대금은 없다.

 

이와 달리 현대중공업그룹, 그리고 그 총수일가인 정몽준-정기선 부자는 톡톡히 이익을 누린다. 대우조선은 지난 2015년경부터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5,000%가 넘던 부채 비율을 200% 수준으로 낮춰 재무상으로 정상 기업에 거의 근접했고, 2017년부터 3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으며, LNG 운반선처럼 수익성이 높은 고성능 선박 수주를 따내는 등 인수자 입장에서는 알짜 기업이 됐다. 그렇게 하청노동자들의 숱한 해고를 비롯해 노동자들에게 강요한 희생과 막대한 공적 자금을 바탕으로 재무 상태를 바꿔놓은 뒤 현대중공업그룹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 총수 정씨 일가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된다. 지난 2017년부터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의 마법’이라는 꼼수로 지분율을 3배까지 부풀린 총수일가는 대우조선 인수를 통해 “정씨 일가 → 현대중공업지주 → 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 → 사업회사(대우조선‧현대중공업‧미포조선‧삼호중공업)”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하게 된다. 이승철 동지는 “이렇게 되면 △세계 1-2위 조선소를 자신의 지배구조 최하단에 편제할 수 있으며 △당장 7조 원이 넘는 사업부채를 지배구조의 아래층으로 넘기고 △현금성 자산은 ‘지주회사 고배당 정책’을 통해 정씨 일가가 쉽게 가져가게 된다”는 점을 꼬집었다. 현대중공업 총수일가로서는 자신들의 돈은 거의 들이지 않으면서 간편하게 이 나라 조선산업을 사실상 장악하는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은 또다시 구조조정 위기 앞에 서게 된다. 발제문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생산성이 유지되는 한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했는데, ‘생산성 유지’라는 조건이 노동자들의 목줄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회사의 이윤을 현대중공업 지주회사가 빨아들이면서 ‘수익 악화’를 핑계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 게다가 중복되는 사업 부문의 통폐합 등도 예견된다. 대우조선에 납품하는 기자재산업 부문 노동자들 역시 생존 위협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 매각이 누구의 희생으로 누구의 배를 불리는지는 명약관화하다.

 

121_33_1.jpg

[사진: 노동과세계]

 

 

 

인수 자금 대주고,

총수 경영권까지 엄호해줘

 

가뜩이나 자본가의 경영실패로 위기의 한복판에 있던 와중에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이미 국가로부터 수조 원 규모의 지원을 받게 된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대한항공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추가적인 공적 자금이 들어간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문제점을 발표한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은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에 산업은행이 8천억 원을 지원하는 동시에 대한항공이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함으로써 현재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자금을 더 투입해야 하므로, “국민의 혈세는 산업은행과 국민연금 2군데를 통해 대한항공에 들어”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방식은 상당히 희한하다. 산업은행의 지원 자금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대한항공이 아니라,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에 투입된다. 어쨌든 아시아나항공을 사들이는 주체는 대한항공이므로, 아시아나항공과 마찬가지로 경영난에 빠진 대한항공은 자체 유동성으로 매입 대금을 마련할 수 없기에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들로부터 추가 자금을 모으는데, 바로 여기에서 한진칼이 등장해 산업은행에서 받은 자금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그렇다면 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에 직접 인수 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한진칼을 거치는 이상한 우회로를 택한 것인가?

 

김남근 위원은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이 아니라 한진칼에 8천억 원 유상증자로 투자하는 것은 경영권 분쟁 중인 한진칼에서 조원태 회장 개인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한진그룹 총수 조씨 일가는 이전부터 사모펀드 KCGI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는데, 조양호 회장 사망 이후 총수일가 안에서도 분란이 벌어져 현임 조원태 회장을 한 축으로 하는 기존 경영진과 그에 대항하는 KCGI-조현아 연합이 막상막하의 치열한 지분 확보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산업은행이 끼어들어 한진칼에 8천억 원을 지원하는 대신 지분을 얻음으로써 이 경영권 분쟁 판도에 결정적 변화가 생기고, 조원태 회장 등 현 경영진이 아시아나항공을 떠맡는 대가로 산업은행이 그들의 우호 지분 역할을 해준다면 판세는 완연히 조원태 회장에게 유리하게 굳어진다. 즉, 현 한진그룹 총수 조원태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대금도 나라에서 지원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배권까지 공적 자금을 통해 확고하게 다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더 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원섭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국장이 제기했듯 아시아나항공을 결정적 부실상태까지 몰고 간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특히 그 총수인 박삼구 회장의 경영실패 때문이었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호그룹은 막대한 빚을 끌어다 썼는데, 여기에 그룹 자금줄 역할을 했던 아시아나항공 역시 큰 손실을 기록하며 2008년 경제위기 발발과 함께 구조조정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통은 모두 노동자들이 떠안았지만 박삼구는 유유히 경영 일선에 복귀했고, 다시금 오늘날의 경영위기를 초래했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금호그룹 박삼구의 경영실패에 대해 지분 소각 등 엄중한 책임을 전혀 묻지 않고 있다.

 

발제문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유지 확약을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하지 않았는데,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양사 통합 시 중복운항노선이 많고 겹치는 업무도 상당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마찬가지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역시 노동자들의 희생과 공적 자금으로 항공산업을 조씨 일가에게 넘겨주는 꼴이다.

 

121_33_2.jpg

[사진: 공공운수노조]

 

 

 

유일한 대안은 온전한 국유화

 

한편, 신태호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지난 20여 년간의 산업은행 관리체제를 가리켜 “무늬만 공기업이지, 20년간 구조조정 대기 상태나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했다(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0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년 가까이 산업은행 치하에 있었다). 산업은행이 내려보낸 대우조선 경영진은 재무적 구조조정에 혈안이었을 뿐이었다. 즉, 현대중공업에 매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대안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대한항공으로 합병되지 않는다 해도 산업은행이 언제 또 누구에게 팔아넘길지 모를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노동자들에게 이로울 리 없다.

 

현상유지도 매각도 아니라면, 유일한 대안은 온전한 공기업화(국유화)다. 하지만 여태껏 산업은행이 공적 자금 투입으로 지분을 취득하거나 채권단 관리하에 두는 등 형식적 국유화만 해놓고 구조조정을 자행한 뒤 민간자본에 재매각하는 행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산업은행을 성토하는 주장이 많이 제기됐는데,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은행이 공공적 운영을 방기한 채 손실의 사회화만 초래하고 있다며 산업은행에 대한 민주적‧공공적 통제를 요구했다. “손실의 사회화에 기반한 일시적 국유화가 아니라, 기존 대주주의 책임을 묻고 기간산업에 대한 공적 소유와 통제를 도입하는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최근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파업권 정지하지 않으면 자금 지원 없다’고 밝힌 산업은행 회장 이동걸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며 헌법적 권리까지 공개적으로 대놓고 침해하겠다는 산업은행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산업은행이 진행한 재무적 구조조정이 오직 채무 상환에 열을 올리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했음을 지적했다. 물론 현재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여러 기간산업 사업장의 경우 국유화가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지만, 그렇다고 산업은행에 맡겨놓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홍석만 위원은 “‘노동(고용)과 환경 주도 국영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기하며 “주주와 채권자의 책임을 물어 부채를 일소하고 소수의 재벌이나 대주주의 지배가 아닌 국가와 사회가 기간산업을 지배하는 구조로 질서가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 매각이 곧 추가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동자들은 직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매각 저지-고용 안정’ 요구로 각자의 싸움이 개별적으로 진행되면서, 강력한 힘을 구축하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해왔다. 또한 매각이 아니더라도 현상 유지로는 고용 안정을 달성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바, 온전한 국유화와 공공적 운영 등 공적 자금 투입에 따른 공적 소유와 통제를 대안적 요구로 내거는 공동투쟁의 건설이 절실하다.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은 물론이고, 앞서 거론했듯 여러 기간산업 사업장이 줄줄이 매각‧구조조정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당장 올 상반기에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의 최종적인 인수합병 절차를 앞둔 만큼, 국유화 대안과 공동의 투쟁전선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지금부터 본격화해야 한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