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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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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투쟁 이후,

혁명 후의 혁명을 내다보며

 

이종회공동대표

 


2007년 말 이후 전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에 이은 세계공황은 백년만의 공황이라는 비유가 무색하지 않게 침체가 깊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10년의 경기침체를 거치면서 양적완화로 수요를 떠받치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근간으로 유지되는 이른바 뉴노멀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대안적 자본운동의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러한 경기침체는 자본의 위기이자 동시에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로 다가왔다. 미국, EU 등 중심부의 위기는 양적완화 등으로 주변부로,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로 전가되었다. 지구적 수준의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는 대륙별 특성을 보이면서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점거투쟁(OCCUPY), 남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노동자민중투쟁과 같이 혁명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투쟁들은 각 대륙뿐만 아니라 국가별 자본의 성격과 노동자민중의 정치사회적 조건이 반영되면서 표출되고 정치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귀결되었다. 경기침체와 이민문제로 EU가 흔들리고 냉전을 기반으로 형성된 전후체제가 부정당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등 유럽 각 나라에서 전개되었던 투쟁의 정치적 전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근대자본주의와 함께했던 대의민주주의체제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광장투쟁과 문재인정권의 탄생

입시부정에서부터 비리로 점철된 이화여대 학생들의 농성에서도 알 수 있듯 광장의 촛불은 전면화된 차별과 배제에 대한, 이미 예고된 투쟁이었다. 이러한 차별과 배제는 정리해고와 파견제로 시작한 97년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전략이 전면화된 불안정노동체제에 기인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과여, 정상과 비정상 등으로 나뉜 차별과 배제가 그것이다. 아울러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민영화, 외주화 등으로 공적 체제로서의 국가체제를 해체해 온 결과, 근간으로서의 공화국체제와 87체제에 의해 구축된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이 그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세월호사건, 삼성전자 노동자 백혈병 산재사건과 같이 사회 안전 문제가 도드라지게 제기된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분단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경직된 대북정책이 가져오는 정치경제적인 효과에 따른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의 부조응 또한 그 배경이기도 하다. 아울러 대중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국정교과서 채택과 같은 이념대립체계를 구도하고 일본과 위안부문제 합의나 사드배치 등으로 한국을 한미일군사체제에 하위 배치함으로써 대중적 분노를 촉발하게 된다.

특히 2015년 민중총궐기부터 시작된 일련의 노동자민중투쟁이 불쏘시개로서 역할을 하면서 광장투쟁이 불붙었다. 그러나 퇴진투쟁이 불붙어 나가던 113026만여 명이 참여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있었지만 대공장 노동자들의 외면으로 파괴력 없는 형식적 총파업으로 끝났다. 총자본에 맞서는 계급으로서의 노동자 대오는 철도와 같은 일부 파업사업장의 투쟁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바 서비스부문을 포함하여 주로 생산수단과의 결합도가 낮은 불안정노동자의 참여는 있었지만 그나마 생산수단에 긴박도가 높고 장시간 노동에 묶인 공단의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노동자의 참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낮았다. 초기 광장투쟁 당시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의 동력과 체계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퇴진행동이 구성되면서 노동자민중의 헤게모니는 상실되어갔다. 그리하여 퇴진투쟁의 주요 요구에서 노동자들의 당면한 요구인 성과퇴출제를 제외한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혁명성의 거세 - 광장투쟁의 제도정치로의 인입

광장에 모인 대중의 열기는 높았고 청와대를 거세게 압박했다. 청와대 안에 눌러앉은 박근혜는 응답이 없었고 투쟁 전술을 바꾸지 않는 한 권좌에서 끌어내릴 다른 방도가 없었다. 현실적 방도로서의 탄핵카드가 채택되면서 광장의 투쟁은 법과 제도의 힘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은 광장의 열기에 놀라 광장주변을 맴돌던 자유주의자들이 정세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탄핵이 결정된 데 이어 헌법재판소에서도 탄핵이 인용되자 법에 따른 절차에 따라 대선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이처럼 광장투쟁이 제도정치 영역으로 인입되면서 운동은 급격히 쇠락했다. 이 과정에서 제도정치와 정치적 연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시민운동진영의 적극적 역할도 부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선거라는 제도적 질서에 의해 투쟁은 억압되고 혁명성은 거세되었다. 87년 민중항쟁에 이은 노동자대투쟁과 같은, 민주주의 쟁취에 이은 계급투쟁으로의 연속적 투쟁은 없었다. 인간의 권리를 생존권으로 확장시켜 보편적 인권을 사회권으로 확장하고, 계급적 요구를 내건 사회경제적 체제전환투쟁으로 국면을 전화하기 위하여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민중운동진영은 민중총궐기를 기획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광장투쟁의 혁명성은 이미 거세되었고, 계급운동진영의 미약한 역량으로 제도적 질서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혁명 속의 혁명은 없었다.

 

새로운 계급형성과 조직화의 전망

국가재정을 투여하여 노동소득을 늘리는 정책 시행이 예견되고 있으나, 기간제파견제도급제 그리고 특수고용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 불안정노동체제를 건드리지는 않고 있고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계획도 없다. 특히 공장자동화, 스마트공장, 생산유통 및 소비까지를 포괄하는 디지털화 등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어 (정치적 수사로서 제기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다양한 노동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이렇듯 노동시장 유연화와 산업의 변화에 따른 노동형태의 변화로, 생산수단과의 긴박도가 지극히 낮은 불안정노동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양산될 것이다. 이러한 계급구성의 변화는 이번 광장투쟁에서 보았듯이 노동자의 조직과 동원 그리고 정치적 조직화에 다른 양상과 경로를 보여주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투쟁과 선거에서 조직된 노동의 계급대표성이 약화되고 이에 기반한 기존의 정당체제가 무너지거나 흔들린 경우들을 보아왔다. 동시에 투쟁을 통한 계급형성과 정치적 조직화의 사례는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투쟁의 조직화를 통한 스페인 포데모스의 사례, 일상적 가두의 조직화를 정치적으로 세워낸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사례, 기존의 정당질서를 부정하고 독자적 세력화를 추진한 프랑스의 사례, 금융위기 이후 가두로 쫓겨난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로 기존 질서에 편입을 시도한 미국 샌더스의 사례, 러스트벨트를 기반으로 기존 질서를 올라타면서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그리고 독자적인 조직화를 시도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우익정치세력 등 많은 사례들이 있다. 심지어 이번 한국 대선에서도 마지막에는 안철수, 홍준표까지도 버스투어라는 기존의 정당질서에 의존한 선거방식과는 다른 가두의 조직화를 시도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계급적 조건과 정치적 환경의 변화가 모든 것을 규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규정적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이를 극복할 대안사회로서의 사회주의, 그 담지자로서의 노동자계급 재조직화에 대한 기획이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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