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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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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은

계속 된다

 

정용경서울


 

작년 12월 초순경, 트럼프 정부는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주 이스라엘 미 대사관을 이전하겠다고 결정함으로써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공식 석상에서 선언했다. 이스라엘 당국과 시온주의 정파 일부의 입장만을 반영한 극소수의 언론을 제외하고, 세계 각국의 여론은 이 소식에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1222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을 비롯한 128개 국가들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미국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제법상 분쟁지역인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한 문제제기와, 중동의 평화협상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사의 속보 제목과 달리, 트럼프 정부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은 지난 수십 년간의 대 이스라엘 미국 정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결정’”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1995년의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텔아비브에 주재했던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할 여지는 클린턴, 부시, 오바마 정권 내내 있었다. 이미 예루살렘 대사관법에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정부의 병합된 수도라는 것을(대 이스라엘 미 정책상의)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이번에 트럼프 정부는 지난 정권 내내 유보해 왔던 결정을 공식화했을 뿐이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브츠셀렘B'tselem은 이번 결정이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인 억압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은 불법적으로, 일방적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예루살렘 내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알-하끄Al-Haq 역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미국의 결정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대 시위가 지속되자, 이스라엘 군은 가자 지구에 대한 폭격을 진행했다.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민중이 127, ‘분노의 날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3차 인티파다가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예측이 무성했다.

201814, 라말라 지역의 팔레스타인인 시위 도중, 이스라엘 점령군의 총탄에 맞은 17세 팔레스타인 소년 무삽 피라스 알-타미미가 사망했다. 올해 첫 희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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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팔레스타인 분할 통치, 그리고 예루살렘

트럼프 정부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은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바탕한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예루살렘 분할 통치 이래, 고향 땅에서의 자결권을 박탈당한 채 지난 백 년가량을 견뎌 온 것이다.

주지하듯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성스러운 땅이라고 불렸고, 점령과 수복을 44차례나 거치면서 유입된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도시였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거치며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임의적인 영토분할로 인해 분쟁이 끊이지 않는 비극의 땅이 되었다. 원래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던 팔레스타인 민중은 영국을 비롯한 열강의 개입으로 척박한 인근 지역으로 쫓겨나야 했다. 불법 유태인 정착촌의 개설 이후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은 난민으로 전락하여 수용소를 전전하는 등의 비인격적인 처우를 겪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전에도 문제의 발단은 외부 열강으로부터 왔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7, 영국 정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을 민족적 고향 건설의 터전으로 내어준다라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시온주의자 연합이 영국 정부에 압박을 넣은 국내 정황 뿐 아니라, 정치적 계산도 있었다. 1840년대부터 오토만 제국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프랑스와 러시아가 각기 중동 지역의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라는 급변하는 상황을 이용한 셈이었다.

벨푸어 선언의 결과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대거 이주했고, 쫓겨난 토착민들과 새로 유입된 유태인들 사이의 갈등이 이어졌다. 영국 정부는 골치 아파진 문제를 유엔으로 넘겼고, 유엔은 1947년 결의안 181호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3개의 유대지구’, 4개의 아랍지구’, 유엔의 직할구역 예루살렘으로 분할할 것을 결정했다.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56%를 유대지구로 넘긴 분할 결정에, 지역 거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던 팔레스타인 민중은 분노했다.

1948년 영국군이 철수했고, 인종 청소에 준하는 폭력사태를 거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세 차례의 중동 전쟁이 지났고, 1967년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전역을 수중에 넣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난민이 대거 속출했고, 1973년에는 유태인 대 팔레스타인 거주민의 비율을 73:26으로 법제화하는 등, 현재까지 14,500명의 팔레스타인 거주민을 내쫓고 280,000명의 정착민을 불법으로 유입시켰다.

1987년부터는 반-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세력 인티파다가 등장하여 팔레스타인 민중의 무장 투쟁이 시작되었다, 반쪽짜리 주권밖에 인정받지 못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어느덧 식민제국의 반열에 오른 이스라엘은 1993년 오슬로 협정을 맺었고, 1년 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지만, 2006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폭격을 재개한 것이다.

이렇듯 서방 제국주의의 패권 전략의 일부로 팔레스타인 분할을 이용하고 분쟁의 씨앗을 심었던, 영국을 위시한 유엔 안보리 국가들이 이제 와서 미국 정부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을 비난하며 중동의 평화를 앵무새처럼 연단에서 읊고 있는 것이다. 대체 지난 백 년간 변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팔레스타인 민중, 중동 민중의 해방을 가로막으며 식민 세력을 행사하는 이스라엘 국가의 초석을 자신들이 제공해 놓고 말이다.

 

중동 민중을 억누르기 위한 미 제국주의의 위성국, 이스라엘

결국, 최근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은 미국 지배계급이 중동 지역에서 미 제국주의의 충실한 위성국으로 이스라엘을 육성한 전략의 논리적 귀결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미 정부의 지정학적, 경제적 정책이 정확히 맞물려 떨어진 결과이다. 3차 중동 전쟁과 오슬로 협정 이래 미국 정부는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 유통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이권이 완벽히 결탁된 이스라엘을 교두보 삼아 중동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하고자 했다. 미국 정부가 걸프 협력 기구GCC 및 그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오만, 쿠웨이트와 카타르 간의 지역적 블록을 형성하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와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민중적 저항 움직임인 인티파다를 억누를 수 있으리라는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시도는 무리수였던 것일까. 3차 인티파다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팔레스타인을 위한 지지의 목소리가 세계 각지에서 일고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서구 열강의 각축으로부터 스스로 해방을 찾아갈 수 있을까. 세계가 예루살렘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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