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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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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7.03 09:34

붉은불개미(붉은열마디개미)

 

버스를 기다리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노변 화단에서 절로 자란 가죽나무 가지에 벌레 몇 마리가 눈에 띈다. 까만 바탕에 흰 점이 콕콕 박힌 꽃매미 애벌레다. 꽃매미들은 해마다 세대를 바꾸어가면서 여러 해째 이 가죽나무에 붙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줄기에 바글바글 붙어 있던 꽃매미의 수가 확 줄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은 올겨울 추위 때문에 꽃매미 월동 알 부화율이 35.6%로 지난해보다 60%나 줄었다고 하니 겨울 추위 탓인 것 같다.

꽃매미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무섭게 늘어나는 바람에 생태계 교란 생물으로도 지정되었다. 전국 곳곳에 소나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솔잎혹파리, 솔수염하늘소나 북한산 참나무 절반을 병들게 한 광릉긴나무좀도 지정되지 않았는데, 곤충으로서는 가장 먼저 꽃매미가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된 것은 그 기세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 꽃매미가 몇 번의 겨울추위에 기세가 꺾이는가 했더니, 올해 초 새롭게 생태계 교란 생물 목록에 이름을 올린 곤충이 등장했다.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부산항에 출몰해서 큰 소동을 일으켰던 붉은불개미다. 이 붉은불개미가 다시 지난 530, 618일 평택항과 부산항에서 연이어 발견되면서 붉은불개미의 침입을 막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처음 붉은불개미가 나타났을 때,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이 개미를 독개미라 부르며 북미대륙에서는 한 해 평균 8만 명이 붉은불개미한테 쏘여서 100여 명이 죽는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살인개미가 부산항에 출몰했다며 앞다퉈 떠들어댔다. 당장 살인개미가 부산 전역으로 퍼져나가 사람을 마구 쏘아 죽일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정보는 인터넷에 떠도는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이 개미의 독성이 꿀벌보다 약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독개미라는 이름은 슬그머니 붉은불개미로 바뀌었다(미국 곤충학자 저스틴 슈미트가 개발한 독성 지수는 붉은불개미가 1.2이고, 꿀벌은 2.0이다.).

붉은불개미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개미는 아니지만 농작물이나 가축에는 큰 피해를 입힌다. 번식력이 강하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일단 정착하면 퇴치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붉은불개미는 원산지인 남미 열대우림 지역에서는 비가 많이 내려서 땅속 집에 물이 차면 수십만 마리가 서로 다리를 엮어서 뗏목을 이루고 안쪽에 여왕개미와 애벌레를 싣고서 물 위를 떠다니며 먼 거리까지 떠다니는 개미로 유명하다. 가물 때는 땅속 깊숙이 파고들어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붉은불개미는 열대밀림에서 사막까지, 농촌에서 도시까지, 집 안 가전제품 속에까지 들어가 적응해서 살아간다. 붉은불개미는 한 무리에 여왕개미가 한 마리만 있는 보통 개미와는 달리 무리에 여러 마리의 여왕개미가 함께 도우며 거대한 초군체를 만든다. 그러니 한 번 들어와서 자리를 잡으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착하지 못하도록 처음에 대응을 잘 해야 한다. 검역 당국은 처음부터 가짜 뉴스에 속아 공포 분위기만 조성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곤충학자 최재천은 붉은불개미라는 이름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붉은불개미는 불개미속이 아니라, 열마디개미속에 든다. 열마디개미속에 드는 개미는 가슴과 배를 잇는 배자루마디가 두 마디여서 두마디개미아과에 속한다. 불개미속 개미는 배자루마디가 한 마디이고 불개미아과에 속해서 분류체계 상 많이 다르다. 이미 정해 놓은 분류체계와 달리 이름을 지으면 자칫 혼란을 일으킬 수 있고, 방제활동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최재천은 우리나라에서 사는 열마디개미속에 열마디개미와 일본열마디개미 두 종이 알려져 있고, 열마디개미라는 우리말 명칭이 있으니 붉은열마디개미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지구온난화로 한반도는 점점 꽃매미나 붉은불개미 같은 열대, 아열대에서 사는 곤충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 간다. 게다가 나라끼리 교류는 더 잦아져서 유입경로는 갈수록 많아진다. 침입외래종은 붉은불개미에 그치지 않고,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주먹구구식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고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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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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