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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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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영상물의 새로운 시작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안 만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은 너무나 절박한 제작 당위성을 기획 과정에서 정리한다. 그러고 나면 만들 내용을 잘 아는 학술적 전문가와 운동적 전문가, 그리고 현장의 대중 혹은 선진활동가 또는 조합 간부를 만나 이야기들을 듣고, 관련 자료를 읽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나름 논리적으로 정리된 교육영상 대본이 나온다. 대본은 같은 텍스트이지만 논문과는 달리 제법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있고 재치 있는 표현들도 있고 내용도 잘 흘러가고 있어, ‘이 정도면하는 수준의 대본이 나올 때쯤이면 작업자는 이미 탈진 상태이다. 그래도 다음 일은 시작된다. 대본을 등대 삼아 촬영을 하고, 촬영으로 해결이 안 된 것은 온갖 방송뉴스를 뒤져서 필요한 영상들을 찾는다. 이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대본과 영상을 연결하고 음악을 넣는 편집을 한다. 마지막으로 녹음된 성우 목소리를 편집된 화면에 입힌다. 이제 작업은 끝난다. 그러나 그 끝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5편의 단편으로 엮은 비정규직 이야기

온갖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들이 시작된다. “지루하네...”, “조합원들이 보기에 어렵지 않나?”, “고생은 했네...”, 하지만 가르치려 드는 건 여전하네”... 그리 심한 말도 아닌데, 우리는 가슴 한가득 상처가 쌓인다. 대부분의 교육영상에서 우리는 이렇게 실패를 거듭해왔다.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지 몰랐기 때문에 남아있는 자존감을 계속 떨어뜨리고만 있다. 이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나? 오랫동안 우리의 과제가 됐다. 그러나 시간은 온다. 교육물에서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그 단서를 우리는 <노동자의 단결로 미래를 노래하자>에서 조금은 발견했다.

이 작품은 당시 금속연맹에서 정규직에게 이야기하는 비정규직 문제였다. 당시 우리 노동운동 현실에서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없어져 가는 때였다. 금속연맹은 이런 때일수록 교육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바로 전 해에 비정규직 교육물로 두 번 다시 노뉴단과 작업하지 않을 듯이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마땅히 다른 곳을 찾지 못해 또 다시 노뉴단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우리는 이번 작업을 기필코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의 교육 영상과는 다른 어떤 것을 해야 했다.

우선 작품의 전체 구성을 우리가 그동안 해온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 그간 우리는 복잡하고 많은 내용들을 장편소설처럼 하나의 테마, 하나의 내용, 하나의 논리적 전개 방식으로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그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비정규직이라는 고리 외에는 연관이 없는 5편의 단편소설을 만들기로 했다. 5편은 그것을 운반하는 방식도 다르게 했다. 첫 번째 단편, ‘공포영화라는 제목으로 현대자동차를 배경으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자신의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으면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를 말했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지금 봐도 상당히 새롭고 완성도가 있었다. 두 번째 단편은 자본가 클럽으로 자본가라는 속성과 탄생의 역사를 실사이미지와 삽화로 만들었다. ‘자본가의 비정규직 게임이라는 제목의 세 번째 단편은 컴퓨터 게임 이미지로 자본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어떻게 분할 지배하면서 비정규직을 착취하는지를 다뤘다. 이런 식으로 5편의 단편소설로 이 작품은 2003년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난생 처음 경험한 호의적 반응

첫 시사회에서의 반응은 무척 호의적이었다. 당시 금속연맹 회의실에서 미조직비정규직 4~5명의 담당자들과 함께 첫 내부 시사회를 했는데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그날 이 영상을 보기 위해서 왔던 민주노총 비정규직 담당자가 생각지도 못한 영상물에 마음을 뺏겨, 상기된 얼굴로 작업하자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동자의 단결...>은 확실히 교육영상물의 새로운 방법론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교육 내용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좁혀서 호흡을 짧게 한 것이나, 자본가에 대해 그동안 숱하게 말한 방식을 지양하고 자본가가 한 일보다는 자본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내용을 조금씩 비튼 새로운 시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많은 새로운 시도들 중에서 단연코 으뜸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이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가능했던 것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작업을 했고 앞으로도 몇 년간 많은 작업을 함께 했던 뛰어난 만화가**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하자.

 

* <노동자의 단결로 미래를 노래하자> : 20033/42/금속연맹-노동자뉴스제작단

** 신성식 (<노동자의 힘>에 연재한 공공씨의 하루를 그린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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