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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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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가 착한 기업이라고요?”

 

김화중충북

 


청주에는 LG화학 청주공장과 오창공장을 잇는 ‘LG라는 도로가 있다. 야간하고 그 도로 오창공장 쪽 끝에서 <충북 노동자 시민회의()>이 진행하는 유해화학 물질 퇴출 선전전을 진행하다가 도로 푯말에 근조 화환이 있는 것을 보았다. “도로 공사 과정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있었나?” 하고 유심히 살펴 봤는데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화환이었다. 왠지 모를 허탈함이 가득했다. 성향을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쏟아 내고 있는 모범적인 기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라는 식의 기사 내용에 답답함이 있었는데, LG라는 기업명이 들어간 도로표지에 근조화환이 있는 것을 보니 선전전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지방선거에 청주시장으로 출마한 모 후보가 애도를 표한 것이었다고 한다.

 

대체 정도경영이 뭐길래

520일 구본무 회장이 사망하자 정치권과 재계는 앞다투어 칭찬 일색의 추모메시지를 냈다. 그걸 언론은 살을 붙여 연일 보도했다. 작년 노조(전국민주섬유화학노동조합연맹 엘지화학노동조합) 불법 도청사건은 기자회견을 해도 기사 찾기가 엄청 힘들었는데... 뭐 그래도 저들이 말하는 칭찬을 일단 한 번 열거해보면, 최근 불거지는 갑질과는 거리가 멀고, 재벌 중 일찌감치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으며, 정도경영을 실천했고, 또 생전에 많은 어록들을 남겼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타 재벌들과 다르단다. 그런데 그 기업에서 노동 중인 난 왜 하나도 동의가 되지 않을까?

일단, 재벌들의 지주회사 전환은 많은 논거를 제시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기본적으로 총수일가의 경영권 세습과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기업들이 전환하지 않은 일반 기업보다 더 적은 주식의 지분으로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여실히 확인된다.

, LG가 거의 상품처럼 자랑하고 있는 정도경영은 노동자들과는 관련이 없다. 최근 일들만 열거해도 1년 전인 20171, LG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2014년에도 같은 부서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고인들은 이른바 해지 방어부서에 배치되어 서비스를 해지하려는 고객들을 상대로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렸고, 가혹한 실적 압박을 받으면서 지정된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퇴근할 수도 없었다. 작년 9월에는 LG생활건강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에 나섰다. 면세점 판매직으로 일하던 LG생활건강 여성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성적 비하발언에 시달리며 육아휴직조차 사실상 금지당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청주에 있는 생산 현장에서는 관리자와 전직 노조 임원들이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를 방해하기 위해 갖은 수를 썼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작년 7월에는 내가 있는 LG화학에서 임단협 교섭 도중 사측이 노조에 불법도청장치를 설치했다가 노동조합 간부들이 이를 적발한 사건도 터졌다. 이 건이 터지기 전까지 회사는 현장의 자발적인 준법투쟁에 대해 조합 간부들과 단순 참여한 백여 명의 조합원을 해고 운운하며 무더기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노사상생과 협력이라는 미명 하에 10년 넘게 이어진 무쟁의 기간, 그 속에는 노조 와해를 위해서는 정도경영이 아니라 불법도 마다치 않는 자본의 본성이 숨어있었다.

 

노동자들 현실은 안중에도 없으면서 이런 평판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벌이 정치권과 재계, 기득권 언론에게 칭찬 받을 일은 이윤을 많이 내는 것 정도다. 그 속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개의치 않는다. 재벌총수들이 가끔 내뱉는 몇 마디 좋은 말, 몇 번의 쇼에 갈채가 쏟아지는 현실은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지금도 현장은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노동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불량 감소와 생산량 증대를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사측이 노동자 의식을 지워버리기 위해 화장실에 부착하는 게시물 만드는 노력의 반만이라도 노동자 건강과 노동조건에 신경 쓰라며 매일같이 관리자들과 부딪혀야 한다. 게다가, 71일부터 시행하는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은 시행 취지에 맞는 인원충원이 아니라 온갖 꼼수와 편법만을 위해 고민하는 게 재계의 모범기업 엘지의 현실이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인정하지 않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아무리 선한 재벌총수의 경영철학도 자본주의를 넘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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