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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자본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한상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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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오는 7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부터 주 52시간 노동상한제가 실시될 예정이었다. 개정 전 근기법은 불법 행정해석을 근거로 1주일을 토요일·일요일을 제외한 5일로 규정해 최대 68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 노동이 가능했고, 노사 합의 하에 노동시간을 무제한 늘일 수 있도록 허용해주던 특례업종은 26개였다. 개정된 근기법은 1주일을 7일로 보고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한 주 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하고, 특례업종은 주요 운송업들과 보건업을 포함한 5개로 줄어들었다. 특례에서 제외된 21개 업종 중 300인 이상 사업장은 71일부터 주당 68시간으로 제한되고 내년 71일부터는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문재인은 이를 두고 인간다운 삶을 향한 대전환의 첫걸음이라 자평했다. 언론도 떠들썩했다. OECD 최악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과로사회에 이른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시대가 도래할 것처럼 말이다. 한 언론은 한국이 이제야 주당 52시간 일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면 세계 주요국은 이미 워라밸 천국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며 좀 더 분발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인간다운 삶을 향한 대전환의 첫걸음이 고작 1주일을 5일로 보는 불법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점을 어떻게 봐야할까. 남겨진 5개의 특례업종은 과연 불가피한 것일까. 제외된 21개의 업종, 그것도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68시간 제한으로 시작하는 건 어떠한가. 단계적으로, 그것도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작하는 것은 올바른 걸까. 아예 제한조차 없는 특수고용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어찌해야 할까.

그런데 이러한 고민들마저도 배부른 소리가 된 것 같다. 현 정부는 스스로를 촛불정부라 지칭하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통해 최초의 임금삭감 정부로 자리매김했고, 성남시 환경미화원의 휴일근로는 중복할증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폐기하겠다던 불법 행정해석을 스스로 정당화했으며, 71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될 52시간 노동상한제를 자본의 시행 유예 요청을 받은 바로 다음 날에 6개월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이 정부의 인간다운 삶을 향한 전환이라는 표현 속 그 인간에 노동자들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권리가 시혜가 되었을 때: ‘불안정노동의 확산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권리를 가진 시민 역시 될 수 없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표현한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사실상 임금제 노예이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부와 자본은 그저 정책과 경영 차원의 시혜적 접근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던져준 셈이다. 물론 그마저도 공짜는 아니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에게 불안정화를 대가로 요구했다.

신세계는 작년 말, “휴식 있는 삶을 통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면 향후 생산성도 높아지는 선순환 고리가 정착될 것이라며 주35시간제 도입을 천명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서 이마트의 영업시간도 1시간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작년부터 노동계는 신세계가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의 차원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꼼수를 부린다고 지적했다. 마트노조에 따르면 실제로 이마트 노동자들의 올해 실질임금은 줄어들었다. 나아가 신규채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휴게시간과 정산시간 등도 줄어들어 노동강도는 더 강화됐다.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뿐만 아니라 노동조건과 고용형태의 불안정성도 확대된다. 자본은 이미 노동시간 단축에 대응한 전략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자회사 및 외주화를 추진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 상으로는 2, 노사 합의 하에서는 3개월 이내 단위기간 동안 특정 주의 노동시간을 52시간까지 허용하고, 연장근로 12시간을 추가할  있기 때문에 최대 64시간까지도 가능하다. 적용 기간 중 평균 노동시간 주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문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여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취지를 저해하고 연장근로수당마저 삭감한다는 점에 있다. 한 사업장에서 3개월 동안 6주는 64시간 일을 시키고 나머지 6주는 16시간 일을 시키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용했을 경우 평균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 된다. 그러면 첫 6주 동안 주당 24시간 연장근무가 발생해도 초과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다. 나아가 뒤의 6주 동안에는 노동시간이 적기 때문에 그에 따른 임금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과 자유한국당은 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가능하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6개월까지는 연장해야 한다면서, 626일에는 고용노동부가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며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한편 300인 이상 사업장은 자회사를 만들어 300인 이하 사업장으로 변신할 경우 50299인 사업장에게 적용되는 20201월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이미 여러 자동차 부품사들의 법인 쪼개기꼼수가 일어나고 있다. 외주화를 추진하여 추가 직접고용을 피하려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향후 자본이 외주화와 특수고용으로의 전환을 확대할 시 나타날 수 있는 일을 짐작하게 해주는 곳이 바로 특례업종으로 남은 택배업이다. 대표적으로 CJ대한통운이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면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의 직접교섭을 회피하고, 외주업체에 고용된 특수고용 택배노동자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며 ‘7시간 공짜노동과 과로 문제 등에 대해 무시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분열을 가져올 배제

주로 5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과 여러 개의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초단시간노동자들은 개정된 노동시간 상한제 적용대상조차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자본으로부터 더 많은 노동과 희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보건업이 특례업종에 남음으로써, 최근 과로 문제로 주목을 받아온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보건의료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견디면서 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초장시간노동을 대표하는 방송업은 특례업종에서 제외됨에 따라 6개월 유예기간을 적용하면 내년 1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68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CJ E&M은 이미 20165월 드라마 기획 및 제작 부문을 분리하여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2017년 말 종업원수 72)하였기 때문에 초장시간노동의 직접적 당사자인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은 당장 노동시간 단축 적용을 받기 어렵다. CJ E&M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한 건 아니었지만, 300인 미만 자회사 설립을 통해 노동시간 상한제를 피해간 것이다. 하지만 300인 이상이었더라도 애당초 수많은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이 프리랜서(개인사업자)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더 크다.

결국 한계가 많은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에서조차 배제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배제되는 노동자들의 발생은 노동자 분열을 가져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분열과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이미 지난 2003년 이른바 5일제(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고 난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상황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한국은 2003년 당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연간 노동시간인 2,378시간을 기록했는데, 2016년 기준으로는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연간 노동시간인 2,241시간을 기록했다. 왜 제대로 줄어들지 않았을까? 정부와 자본이 비정규직과 유연근로제를 확대하고 불법 행정해석을 통해 장시간노동을 지속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즉 제도적으로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못하는 배제된 노동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시간의 계층화라는 표현이 지칭하는 바와 같이 단시간-저임금, 장시간-중위임금, 표준시간-고임금으로 묶여질 정도로** 법정 노동시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고임금 노동자에게 한정되어 있고, 중위임금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형태의 차이, 임금과 노동시간의 격차, 더 나아가 사업장 규모와 노동조합의 유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분열된 상황에서 동일한 계급적 목표 아래 단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 예컨대, 특례업종에서 벗어난 방송사 본사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제라도 본사 소속도 아닌 현장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임금 및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의 향상을 위해 함께 싸우려고 할까?

 

노동시간 단축이 정말 자본에게는 위기일까?

자본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생산·공급 차질, 중소업체 줄도산 위험, 인건비 부담 등의 우려를 제기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노동시간 단축까지 최근 정부의 행보로 인해 경영상 위기를 초래하고 이는 경제에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자본과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신세계 이마트를 살펴보자. 신세계 이마트의 경우, 지난 수년간 벌어진 대형마트 출점 경쟁으로 인해 관련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더 이상 확장적 경영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경영방식을 전환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이는 자본에게 결코 손해가 아님을 보여준다.

아울러, 과로와 사고로 언론에 주목을 받아왔던 노선버스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자 자본은 인력충원 곤란과 비용증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경영상 곤란의 발생에 있는 게 아니다. 애시당초 승객의 생명·안전과 운수노동자의 생명·안전이 결합돼 있는 공공(대중)교통업이 비용과 이윤의 논리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민간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는 비정상의 상황을 정상화하자는데, 비용의 논리를 내세우며 반대하는 쪽은 언제나 민간자본이었다. 물론 정부와 공공부문도 마찬가지의 논리를 내세운다.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이 정말로 노동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 선거공보물 발송과 라돈침대 수거 등 과중한 업무로 인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집배원 사망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인력충원 문제 역시 높은 실업률을 감안하면, 정부와 자본의 근거 없는 푸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자본이 추진하는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로제 확대, 자회사 설립과 외주화 등은 현재와 같은 과잉착취를 유지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지 경영과 경제 전체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와 노동자들의 삶을 위기로 모는 원인이 아니다. 노동을 절약(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기술발전, 자본 간 경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구조, 다단계 하청과 프랜차이즈를 통한 후려치기 경영의 일반화, 비정규직 및 특수고용 그리고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등 불안정노동을 통한 과잉착취, 재벌의 막대한 사내유보금과 노동자 대출을 통한 금융업 호황 등이 위기의 원인이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시간 단축의 사회적 의미를 결과적으로 훼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꼼수를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진정한 위기의 원인을 해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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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주노총]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하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정부와 자본이 추진하는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자본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이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은 1997년 이래 정부와 자본이 경제위기를 들먹이면서, 또 노동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이어져온 노동법 개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97년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선제적으로 제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를 철회하고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수용했다. 이후 노동시간 단축 의제 자체를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기 시작한 2000~03년에는 주40시간제와 더불어 각종 노동유연화 정책들이 실시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이후 2017~18, 지금은 어떠한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 민주노총이 나서서 사회적 투쟁을 이끌어가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실패들로부터 몇 가지 원칙들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경우 “3명이 해야 할 일을 1명이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말해주듯 전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요구여야 한다. 이 요구가 임금 등 노동조건의 후퇴를 동반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희생 분담을 동반하는 요구여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에게는 경제위기의 책임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경제적 고통을 야기한 정부와 자본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두 번째로 임금·노동시간·고용형태·성별 등의 차이에 기인한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노동자도 인간이기에 모든 노동자는 시민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평등하게 갖는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것에 있다. 이 원칙으로부터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뿐만 아니라, 절대적 빈곤에서부터 상대적 박탈감까지 해소하면서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적정 임금과 노동시간의 평등한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자본의 시간이 아닌 노동자의 시간을 되찾고 확장해 나가는 계급적 투쟁 과제로서 시간주권을 획득해나가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시간주권은 노동시간의 길이, 강도나 방식 등에 대한 결정권 및 조결권이 없이, 주어진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기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이 삶의 시간을 설계하고 사용함에 있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시간주권은 정부와 자본의 필요에 의해 노동 희생을 전제로 벌어지는 노동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노동 배제적인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에 의한 비자발적인 노동시간 단축도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노동운동이 노동시간의 양적 단축을 넘어 질적 통제에 있어서 노동자의 자율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 “OECD 주요국 연간 노동시간 현황연합뉴스, 2018430일자.

** 신영민, 황규성(2016). “한국의 노동시간 계층화에 대한 연구”, <한국사회정책> 233.

*** 이현(2003),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운동의 대응: 노동시간단축투쟁을 중심으로”, 서강대 정치학 석사학위논문.

**** 최형익(2005), 칼 마르크스의 노동과 권리의 정치이론한국학술정보; 강수돌(2014), 자본주의와 노사관계, 한울; 김영선(2014), “노동시간의 정치, 과로사회”, <대한환경의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류동민(2018),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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