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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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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유연화,

‘유연하게’ 당신의 삶을 빼앗는다


이태진┃충북



2018년 2월, 국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더불어 근로기준법에서 1주의 개념을 주 7일로 명기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정부와 언론은 ‘일‧가정의 양립,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주52시간제 도입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했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요소요소에 독소가 있었다. 가령 근로기준법의 대원칙 중 하나가 바로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쉽게 확대해 임금을 깎을 수 있도록,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특례를 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 대신 ‘의견 청취’만으로 가능하게 했다. 게다가, 개정 근로기준법 부칙에서는 노동부 장관이 2020년 12월 31일까지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 확대 방안을 준비하라고 명시했다.


근로기준법의 근간을 흔든 이 개악에 대해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했다. 오히려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개악을 막지 못했다’는 논리가 횡행했으니,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정부‧여당이 노동법 개악을 ‘노동시간 단축’으로 둔갑시킨 것처럼, 조직된 노동운동은 자본가 정권에서 민주노총의 지분을 향유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2013년, OECD 34개국 중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 2,16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장시간 노동 2위를 차지했다. 이마저 2014년에는 2,258시간으로 늘면서 OECD 최장 시간 노동 국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한국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오랜 시간 일하고 있을까? 아니, 왜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그나마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따로 없다. 자본은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 때문에라도 ‘자발적으로’ 오랜 시간 일하도록 강제해왔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는 저성장 극복 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창출’이라는 기조 하에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펼쳤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배치를 자본이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도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최근 경사노위에서 한국노총이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하면서, 3월 임시국회에 민주당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로 이 합의안이 올라갔다. 다만 자유한국당이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하면서 4월 5일 국회 본회의 처리는 일단 무산됐다. 그러나 4월 임시국회에서는 어떻게든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과 탄력근로제 확대를 처리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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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과로 자살 조장


인간의 몸과 생체리듬은 고무줄이나 엿가락처럼 늘리거나 쪼갤 수 없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절대적 시간 하에서 노동과 삶과 수면을 배분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의 병폐는 이미 여러 연구 결과와 현실에서 위와 같이 숱하게 드러났다.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면 단위 기간 중 평균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을 넘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에, 특정 주나 특정일의 노동시간을 늘려도 자본은 추가비용 없이 노동자를 부려먹을 수 있다. 기존 제도인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가 크게 확산되지 않았던 이유는 단위기간이 짧은 것도 있지만, 사전에 1일 단위로 노동시간을 노동자대표와 합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본에게 별 메리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는 탄력근로제는 단위기간을 늘릴뿐 아니라, 노동시간 결정 단위를 ‘일별’이 아닌 ‘주별’로 설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만큼 노동시간 유연성을 높이고 자본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업무량 급증’을 ‘불가피한 사유’라고 인정해주면서, 자본이 ‘원하는 날에 원하는 만큼’ 노동시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게 해준다.


탄력근로제 확대가 현실화하면 12주간 최대 주당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이는 현행 산재법상 뇌‧심혈관질환 인정 기준을 초과하는 수치다. ‘과로사 조장 법’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은 ‘노동일간 11시간 연속휴식시간을 의무화했으니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자. 하루 24시간 중 13시간은 노동하고, 나머지 11시간은 출퇴근에 식사와 수면 등 기본적인 생활에 소진하기도 벅찰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 운운하지만, 결국 노동자는 ‘일하고 먹고 자고 싸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주장에 불과하다.



현장을 잠식하는 자본의 논리, 이제 고립을 돌파해야 한다


탄력근로제 도입은 노동자대표와 서면 합의로 가능하다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이 나라 어떤 법에서도 ‘노동자대표’의 선출방식, 임기, 역할 등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전체 노동자의 90%가 노동조합이 없는 현실에서, 기업은 얼마든지 자기 입맛에 맞게 ‘노동자대표’를 세울 수 있다. 수없이 자행된 민주노조 파괴 공작을 보라. 복수 노조법을 활용해 어용 기업노조를 세우고, 과반수 노조를 쟁탈하기 위해 ‘창조컨설팅’ 같은 노조파괴 브로커 업체와 조폭까지 동원한다. 결국 탄력근로제는 자본의 탐욕에 근거해 설계될 수밖에 없다. 임금이 줄고 노동시간은 늘더라도, 노조 없는 개별 노동자들은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충청북도 소재 S 사업장은 주 52시간제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시행되는 점을 교묘히 활용해, 공장 하나를 외주화하면서 법 적용을 피했다. 또한 이 사업장의 교섭 대표노조는 교대제 개편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하락에 합의해줬다. Y 사업장의 경우에는 시간당 생산량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올렸고,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했다. L 사업장은 ‘기초질서 지키기’(출퇴근 시간, 휴게시간, 식사 시간 등)를 강화한다며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도 교대제 개편 등을 사측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생산성 증대와 노동강도 강화를 전제로 한 교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탄력근로제는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먼저 들이닥칠 것이고, ‘유연 근무’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탄력근로제가 확대될수록 개별 노동조합은 각자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수세적 싸움에 내몰릴 공산이 크다. 조직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조직되지 못한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내걸고 싸우지 않는다면, 지금의 노동조합은 정부와 자본의 짜놓은 ‘귀족노동자’, ‘기득권 세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비정상의 정상화’


근로기준법은 국가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것이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 법정노동시간이며, 이것이 공문구가 아니라 당연한 현실이 돼야 한다. 어떤 노동자도 사업장 규모나 고용형태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요구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과로사회, 피로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연간 노동시간이 1,800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하며, 일별‧주별 노동시간을 강도 높게 제한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와 함께, 노동자의 일상과 삶에 직결하는 근무형태(교대제, 심야노동)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가령 노동자의 건강은 물론이고 일과 삶의 균형마저 심각하게 파괴하는 야간노동은 엄격히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은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건강을 유지하고 자신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으로 설계해야 한다. 물론 자본은 노동시간 단축도, 임금 보전도 용납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탄력근로제 문제는 자본의 이윤과 노동자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투쟁의 최전선이다. 민주노조 운동이 미조직 노동자를 포함해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지키고자 한다면, 탄력근로제 저지 투쟁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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