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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1.18 15:42

영세 자영업자가 노조를 만든 이유


김은희┃울산지역연대노조 자영노동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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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가 노조를 만들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갸우뚱하며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일해서 먹고살았던 영세 자영업자로서, 탐욕스러운 건물주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세입자로서, 노조는 생존과 투쟁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



목숨줄을 빼앗은 건물주


저와 언니가 2013년부터 울산대 인근 바보사거리 앞에서 함께 운영하던 휴대폰 가게는 연세 많은 부모님과 치매를 앓고 있는 남동생, 초등학생 조카까지 7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목숨줄이었습니다. 주말도 휴일도 명절 연휴도 없이 열심히 일했고, 가게가 손님으로 붐비며 건물의 가치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영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건물주가 바뀌었습니다. 바뀐 건물주는 울산 곳곳에서 휴대폰 매장을 20 군데나 운영하는 사업자이기도 했는데, 장사가 잘된다는 것을 알고 2016년에 건물을 통째로 인수한 것입니다.


동일 업종의 거대 사업자가 건물주가 되자 불안했고, 어쩔 수 없이 저희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자리를 넘기고 권리금이라도 돌려받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새 건물주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여태껏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350만 원이던 이 가게에 대해 ‘새로운 세입자에게는 보증금 3억 원에 월세 1천만 원을 받아야겠다’며 터무니없이 높은 월세 인상을 요구해 신규 세입자와의 계약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저희는 그나마 남은 삶의 밑천인 권리금마저 회수할 수 없기에, 새 건물주에게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으니 제발 가게 계약이 될 정도만큼만 월세를 받아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위치 좋은 삼산동도 다 그냥 나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권리금마저 약탈당하고 빈손으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법률사무소였습니다. 하지만 법은 돈 많은 사람의 편이지, 겨우 수임료만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법적으로 더 억울한 일들을 겪으면서, 저희는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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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깡패와 강제집행


새 건물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입자가 버티고 안 나가서 건물주의 재산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명도소송을 낸 것입니다. 새 건물주의 모든 법률대리를 맡았다는 판사 출신 변호사는 통상 1심까지 1년도 넘게 걸린다는 명도소송에서 6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에 2심까지 승소 판결을 받아내 세입자를 쫓아낼 수 있게 해줬습니다.


2019년 5월 21일 첫 강제집행이 있었고, 빈손으로 그냥 쫓겨날 수 없었던 저희는 부모님과 인근 상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강제집행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강제집행에 대한 두려움에 한 달 동안 가게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몸이 안 좋아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6월 21일 새벽 6시경 40명의 용역을 동원해 망치로 가게 문과 유리를 깨부수는 무자비한 강제집행을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밖에 없는 가게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나 지금까지 가게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개인의 억울함과 분노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난생처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서 ‘내가 지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투쟁하면서 일면식도 없던 분들에게 많은 도움도 받았습니다. 새 건물주 때문에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


수많은 세입자가 건물주의 갑질과 탐욕에 거리로 내몰립니다. ‘재수 없게’ 건물주 잘못 만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한 구조적 문제입니다. 저는 영세 자영업자는 먹고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고용된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편히 하루를 쉬지도 못하고 주말도 명절 연휴도 없이 우리 일터인 가게에서 우리의 노동으로 먹고살아갑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장사가 안되면 망하고, 장사가 잘되더라도 계약 기간 내내 ‘쫓겨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시달리며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건물주의 노예처럼 눈치를 보다가 급기야 우리의 노동과 피땀으로 일궈낸 일터와 가게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동안 영세한 자영업자가 억울해도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당해야만 했던 건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을 해본 경험도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함께 뭉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영업자가 무슨 노동자야’라는 시선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일해서 먹고사는 노동자로서 갑질 없는 세상,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향한 길을 함께 가는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은 조합원이 저를 포함해 4명뿐이지만, 앞으로 우리 울산지역연대노조 자영노동지부의 의지가 꺾이지 않고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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