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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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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 V-log

“해 드는 곳에 빨래를 말리고 싶다”


<입만 열면 청년> 기획팀



11월 9일은 종로 고시원 화재 참사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이후 1년간 주거 빈곤층의 삶은 좀 더 나아졌을까. <변혁정치>는 주거 빈곤을 경험한 청년들을 만나 각자가 겪었던 주거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



준호: 먼저 오늘 오신 분들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근형: 고시원에 사는 고근형입니다. 제 방은 2.2평. 가로 220cm에 세로가 3m 정도입니다.

혜린: 이대 앞에서 3년째 살고 있는 김혜린입니다.

정욱: 전 요새 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은평구에 사는 신정욱이라고 합니다.



준호: 현재는 어떤 곳에서 살고 계신가요?

근형: 저희 고시원 한 층에 방이 16개인데요, 층마다 복도 끝에 세탁기가 하나 있고 계단 쪽에 좌변기 두 개 소변기 하나 샤워실 한 칸씩 있어요. 계단에 가면 냉장고가 두 개 층에 하나씩 있고요. 세탁기나 화장실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으면 아래층 가서 쓰던가 하죠.

정욱: 창문 있어요?

근형: 있어요. 가격도 똑같이 한 달에 26만 원. 보증금 없이.

정욱: 예전에 살았던 고시원은 환기가 안 됐어요. 창문이 있다고 해서 더 비싸게 산 건데.

준호: 지금은 어느 형태로 사세요?

정욱: 지금은 빌라에서 살아요. 월세는 60. 방은 1.5룸이라고 하나요? 거실 겸 주방이랑 방이 있고, 룸메이트랑 같이 살아요. 보증금은 500만 원인데, 완전 잘못 구했어요. 채광이 잘 되는 것 말고는 좋은 게 없어요. 방음도 딱히 잘 안 되고요. 원래 방이 3~4개 되는 큰집을 주인이 쪼개서 내놓은 거예요. 제가 쓰는 방은 원래 큰집의 베란다였던 것 같고요. 벽이 가벽인지 옆방 TV 소리도 다 들려요. 월세는 비싼데.

준호: 근형 동지는 계속 고시원만 사셨어요?

근형: 원룸에 2년 살고 고시원은 1년 10개월째? 원룸이 좋죠. 고시원에 살면 방에서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와이파이도 안 돼서.

정욱: 저도 와이파이를 누려본 적은 없네요. 고시원은 방에 있으면 잠만 와요. 거기서는 공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관악구에는 대학동 고시촌 같은 싼 동네가 있잖아요. 원룸은 비교적 싸게 구할 수 있을 텐데.

준호: 저도 거기 살았었는데 평당 가격을 따지면 대학동이 제일 비싼 것 같아요. 혜린 동지는 어때요?

혜린: 저는 2016년 여름에 첫 자취를 했는데 지금의 절반 정도 크기의 반지하 방이었어요. 그때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정도로 예산을 잡아서 구하러 다녔는데, ‘여기에 사람이 살라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집들이 많았어요. 여름에 집 안이 엄청나게 습하고, 화장실은 바깥에 따로 있고. 들어가자마자 나왔어요. 최근에 구하던 가격대도 보증금 500만 원 선인데 화장실이 따로 있는 곳도 있었어요.

정욱: 저는 처음 대학 갈 때 부모님이 한 푼도 지원을 안 해준다고 하셨어요. (웃음) 방학 동안 알바로 모은 게 100만 원인데 서울에 보증금 100만 원짜리 방이 없잖아요. 그래서 벼룩시장을 봤는데, ‘잠만 자는 방’이라고 나온 데 등기부 등본 보면 다 이상한 집이에요. 그중에서 그나마 조건이 괜찮아 보이는 곳이 1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인데, 건물이 1940년도에 지어져서 집에서 쥐 나오고 그랬어요. 그러다 운이 좋아서 LH 대학생 임대주택이 돼서 3년 정도는 잘살았어요. 근데 자격요건이 너무 제한적이더라고요. 들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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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 지금 방에 사는 거 후회하신 적 있으신가요?

정욱: 월세를 30만 원씩 내야 하니까 수입에서 월세가 상당 부분 나가는 게 힘들더라고요.

혜린: 저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지금 방이 제가 구할 수 있는 가장 넓은 방이었어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인데, 바퀴벌레가 너무 많이 나와요. 집이 어떻게 생겼냐면 앞에 들어가면 거실이고 들어가면 침실이고 들어가면 화장실 부엌이에요. 거기에 문이 하나 더 있어요. 대문이. 근데 거기 쪽은 말 그대로 늘린 것 같아요.

정욱: 가건물이구나.

혜린: 네, 그쪽으로 벌레가 들어오는 것 같고. 왜 방충망을 제대로 안 달았는지 모르겠어요. 부엌엔 창문이 넓게 있는데 거기 방충망이 없어요. 창문이 있어도 쓰지를 못해요. 보일러도 안 돼서 씻으러 갈 때 너무 추워서 히터를 샀어요. 거기만이라도 돌리려고요.

근형: 제 방은 여름철 방 에어컨을 사장님이 틀어주는 거라서 사장님이 밤에 퇴근하면 에어컨도 꺼버려서 그 전에 자야 해요. 아니면 더워서 못 잡니다.

정욱: 고시원에 딸린 화장실이 대체로 좁잖아요. 고시원 살 때 변기랑 샤워기의 거리가 20cm 정도. 폭이 좁고 머리를 감거나 할 때도 변기를 코앞에 두고 하는 게 별로였어요.



준호: 만약 내가 방을 다시 구할 수 있다면, 집에 ‘이건 꼭 있어야 한다’ 하는 게 있을까요?

혜린: 세면대요. 방 구할 때마다 화장실에 세면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또 세면대 없는 곳에 살아요.

정욱: 세면대 싼 거 사면 안 비싼데, 내 집이 아니니까 (설치하기) 아깝잖아요.

혜린: 돈이 정말 많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집에 단열이 잘 안 돼서 추워요. 옛날 살던 사람도 뽁뽁이로 다 막았더라고요.

정욱: 제가 아는 선배 한 분은 전세 살았는데 단열공사까지 다 하셨대요.

준호: 그건 집주인이 임차인한테 오히려 돈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안방이 너무 어두워서 전등을 그냥 갈았어요. 그거 하는 데 5만 5천 원. 내 집도 아닌데.

혜린: 그런 걸 하게 된다니까요. 이번 집은 콘센트도 거의 없어서 멀티탭 사는데 그것도 엄청 비싸서 돈 많이 썼어요.

근형: 저는 방에 에어컨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와이파이 정도만 있어도 좋겠네요.

정욱: 저는 반지하는 절대 안 살아요. 차라리 더 멀고 더 낡은 집으로 갑니다. 최근에는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 안에 빨래 건조대를 펴는 게 너무 싫어서요. 방도 좁아지고.



준호: 혼자서 주거를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책, 어떤 게 있을까요?

정욱: 집 바로 앞에 남도학사가 있는데. 대학 기숙사가 아니더라도 지자체 차원 기숙사가 많이 생기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학생들이 되게 많이 살더라고요.

혜린: 저는 주거기준이 걸리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집 같지도 않은 집들이 많고. 이번 집에 이사 오고 나서도 따뜻한 물이 안 나왔었어요. 고쳐달라고 난리를 피우니까 고쳐줄 것처럼 하더니 결국 안 하더라고요. 한번은 문이 내려앉았어요. 그래서 이걸 말하느니 내가 해야지 이래서 고치는데,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형: 저는 월세 깎아주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어요.

준호: 보증금도 다른 사람 들어올 때까지 안 주려고 하고. 그때까지 네가 살라고. 근형 동지 한 층에 방 몇 개라고 했죠?

근형: 한 층에 16개씩 4층. 한 방에 월 26만 원이니까 이게 얼마야.

혜린: 그렇게 세면 현타* 온다니까요. 월세 좀 깎고 싶다고 하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병원비라서 못 깎는다고. 등쳐먹으려는 사람 엄청 많아요.



준호: 오늘 얘기 나누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근형: 이런 얘기는 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비참해지는 것 같고.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잖아요. 살만한 게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그래서 누군가 옆에서 얘기해주고 더 나은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얘기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정욱: 잊고 있었던 암흑의 시간들이 떠오르는 거죠. 얘기해보니 ‘다른 동지들도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는 걸 느껴요. 서울에서 사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 씁쓸하네요.

혜린: 괜찮은 집으로 이사 왔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나열하면 그렇지 않더라고요. 저는 최근에 다양한 주거정책을 알아보게 됐는데 만만치 않아요. 공급이 너무 적고요. 땅도 좁다고 하지만 사람 살 만큼은 있고 건물도 많은데 ‘왜 저 중에 하나에 내가 살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긴 지 오래다. 누군가는 1,000채가 넘는 집을 갖고 있지만, 돈이 없으면 ‘지옥고’를 전전할 뿐이다. 돈이 많든 적든 최소한의 주거를 보장하는 사회를 바라는 건 정말 무리일까.



* ‘현실 자각 타임’의 준말로, 무엇인가에 열정적으로 몰두한 뒤 밀려오는 공허함과 후회, 상실, 죄책감 등을 느끼는 현상을 가리킨다. 



* 입만 열면 청년정치인이든 언론이든 ‘청년’에 대한 얘기를 쏟아내는 세상이다. 호명된 객체가 아닌, 발화의 주체로서 청년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들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이 사회를 바라보는 청년의 시각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