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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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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Ⅰ 교육의 계급을 넘어, 자본주의 너머로


계급 재생산을 정당화하는 교육

이제 

사회주의적 상상이 필요하다!


김진┃경기(전교조 조합원)



특권학교 폐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아직 겨울이 아닌데도, 매년 이맘때면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작은 소리 하나, 작은 움직임 하나도 조심해야 했던 날이다. 전 국민이 학생들에게 교통수단을 양보하고, 듣기평가 시간에는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는 날. 바로 수능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올해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이 가장 마음이 착잡하겠지만, 이후 시험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 교사뿐 아니라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은 좀 다른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교육계로 튄 불똥은 연일 ‘공정성’ 문제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그러더니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정시 확대’ 방침이 나왔다. 그리고 교육부는 ‘공정성’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 고교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2025년에 일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특권학교의 폐지와 일반고 전환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최근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드러났다는 고교 서열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그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 놀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따지고 들어가 보면, 고교 서열화는 대학 입시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특권학교 폐지로 고교 서열화 자체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가령 과학고나 영재고처럼 대표적인 특목고는 그대로 남아있고, 일반고 자체도 이미 서열화돼 있다.


고교 정책이나 입시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외피를 쓰고 나타났다. 하지만 숱한 정책과 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는 떨어질 줄 몰랐고, 사교육 업체들의 영역은 점점 늘어났다. 학교 교육은 여전히 입시 위주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현실은,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데 그 자살 원인 1위는 언제나 성적 비관과 학업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특권학교 폐지나 정시 확대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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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정해진 게임, 계급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교육


고교 서열의 핵심 기준은 결국 ‘상위권 대학’ 진학이다. 대입 경쟁 자체가 이미 서열화된 대학 체제의 산물이고, 그 과정을 거쳐 나온 사회 역시 학벌 사회이자 경제적으로 양극화된 불평등 사회다. 입시와 고교 정책이 어떤 식으로 바뀌든, 지금의 체제에서는 시간과 자본력을 주도할 수 있는 계급에게 유리할 뿐이다. 교육은 불평등 사회를 재생산하고 계급을 재생산한다. 이미 승자는 결정되어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시냐 수시냐’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2000년 96.4%에 이르던 정시 비율을 2020년 기준 22.7%까지 축소시킨 정책 변화도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별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겠다’는 명분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정성 논란으로 공공의 적이 되었을 뿐이다.


결국 정시와 수시의 비율이 문제가 아니다. 특권학교 폐지 역시 대학 서열 체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또 다른 ‘일반고 서열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불평등과 차별을 낳는 근본적인 체제에 맞선 대안은 사라진 채, 입시 경쟁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정시 확대 찬성이냐 반대냐’, ‘수능이냐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이냐’, ‘어떤 입시제도가 더 공정한가?’ 등등의 논란만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 문제에서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정책 대안이었다고 할 수 있는 ‘입시 폐지’나 ‘대학 평준화’ 같은 주장은 최근 찾아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사회주의적 상상이 현실적 대안이다


더 이상 정부와 보수 정치가 주도하는 논리에 휘둘릴 수는 없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특권학교 폐지 역시 ‘시험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게 아니라 평등 교육의 시작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모든 경쟁적 입시의 폐지’를 요구하고 ‘선별이나 선발이 아닌 선택이 보장된 상급 학교 진학’을 이야기해야 한다.


차별 교육을 양산하는 대학 서열 체제를 타파하려면, 소수에게 자원을 몰아주는 게 아니라 공적인 교육 재정으로 모두가 양질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립대학이 지배하는 대학의 소유‧운영 체제를 뒤바꿔야 한다. 지금도 사립대 운영비용의 상당 부분은 공적 지원과 등록금으로 조달되고 있다. 이럴 바에야 사립대학 재단을 사회에 환원시키고, 공적 관리를 통해 모든 사립대학을 국공립화하는 게 더 낫다. 원하는 사람이면 원하는 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고, 소유와 운영을 공공적으로 통제하며, 교육 노동자 모두가 평등하고, 교육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민주적으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과 학교 자치. 우리에겐 이런 사회주의적 상상과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이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인 얘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평등한 교육과 사회, 이를 재생산하는 입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부와 보수 정치가 허용하는 범위를 곧 ‘현실 가능한 범위’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꿔야 할 ‘현실적’ 과제는 ‘불공정한 시험’을 넘어 학교와 사회의 불평등을 뒤집는 것이고, 그 속에서 희생되는 우리 자신과 노동자,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작 현실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나와, 우리를 예속한 굴레를 부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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