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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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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재보궐 선거, 여권연대 논란과

사회주의 정당에 보여주는 길


이승철┃집행위원장



사람은 누구나 교훈을 얻는다. 크든 작든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뒤에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늠한다. 문제는 종종 그 시각이 ‘보고 싶은 사물’에 머문다는 점이다. 수구세력은 ‘민주당과 문재인의 참패’로 보고 싶을 것이며, 반대로 자유주의-사민주의 세력은 ‘정치적 선방’으로 보려 한다. 보궐선거를 전후한 언론 보도 내용도 각 매체의 성향에 따라 이 두 축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이런 ‘교훈’은 정치 공학을 해설할 순 있어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때론 ‘보수 빅텐트론’, 때론 ‘더 많은 중도 포섭론’처럼 아전인수식 길을 제시한다.


창원성산 보궐선거는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민주당은 ‘정의당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선언하며 권민호 후보를 공천했고, 정의당(여영국)과 민중당(손석형)도 각각 후보를 내며 레이스에 돌입했다. “경남 진보 원탁회의”를 통한 단일화 추진은 민중당과 정의당의 충돌 속에 결국 무산됐다. 이어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민주당 권민호 후보와 단일화하자, 민중당은 ‘정의당이 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여당인 민주당과 단일화했다’며 선거운동 마이크 대부분을 정의당 비판에 쏟아부었다. 양당 대변인이 서로에게 “정도껏 하시라”는 논평을 주고받았다. 권영길 전 의원이 창원에서 “여영국 지지”를 선언하자, 민중당 이상규 대표가 “선배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갈등은 극에 달했다.


간략히만 늘어놔도 보기 피곤하다. 그런데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원성산에서는 201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통합진보당 손석형 후보는 민주당 변철호 후보와 먼저 단일화한 뒤, 진보신당 김창근 후보에게 단일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진보의 가치’를 논지로 세운 똑같은 비판이, 화자와 청자를 바꿔 오갔다. 말하는 이가 통합진보당에서 민중당으로, 진보신당에서 정의당으로 바뀐 것일 뿐, 모두 자유주의 보수정당인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수용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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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함’조차 사라졌다


2012년 총선에는 현 경사노위 위원장 문성현도 통합진보당 후보로 창원갑에 출마했다. 그 문성현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굳이 지면을 할애해 설명할 필요가 없을게다. 어디 문성현 뿐이겠는가. 민주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른미래당까지, ‘민주노총 출신’ 명함을 달고 양지를 찾아 떠난 수많은 이들이 있다. 민주노총 이석행 전 위원장은 민주당으로 옮긴 뒤 노동부 산하기관인 폴리텍대학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사회연대노동포럼”에는 정용건 전 부위원장, 백순환 금속연맹 전 위원장, 이재웅 전 서울본부장, 김광식-윤해모-이경훈 현대차 전 지부장단이 참여했다.


강승규 전 수석 부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선대위 노동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안철수 캠프에는 김태일 전 부위원장, 이용식 전 사무총장, 이수봉 전 사무부총장, 박승흡 매일노동뉴스 전 대표 등이 포진했다. 과거를 명함 삼아 양지로 돌아선 명망가들의 이름은 끝이 없다.


그나마 민주노총 초기에는, 떠난 자들에게서 조금이라도 ‘창피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정서가 뒤집히기 시작한 건 2012년 즈음이었다. 2011년 통합진보당이 출범하며 국민참여당 계열과 손잡고, 과거 열린우리당 세력에게 ‘진보’의 옷을 입혔다. 민주노총은 2012년 ‘야권연대’를 선거방침으로 정하고, 당시 김영훈 위원장이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함께 유세차에 올라 “기호 2번”을 외쳤다.


이후 수년이 흐르는 사이에, 민주당과의 협력이나 민주당으로의 이동은 더 이상 ‘변절과 배신’ 혹은 ‘전술적 활용’이 아닌, 그저 용인될 수 있는 ‘노선의 변경’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같은 기간 민주노총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계급적․변혁적 정치 운동의 확대가 아닌,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가’를 고르는 ‘정당 쇼핑’으로 추락했다. 조합원들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투표 동원 대상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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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의당]


적을 적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러다 보니 계급적 노선이나 정책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정치 사업을 펼치고, 이에 따라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은 ‘그저 조금 노선이 다른 이들과의 협력’으로 포장됐다. 문재인에게 줄 서는 지도급 인사가 하루에도 몇 명씩 쏟아져 나오던 2017년 4월,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는 “민주노조를 버리고 양지를 찾고 싶으면 부끄러운 마음 안고 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당시 집행부는 이 성명을 내자마자 산별과 지역에서 쏟아지는 항의를 견뎌야 했다. ‘새누리당 홍준표 당선을 바라는 거냐’는 논리였다.


문제는 ‘나와 단일화한 정당, 내가 지지한 정당’이 추진하는 노동개악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설사 비판하고 투쟁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단일화를 염두에 두게 된다. 자유주의 정당의 반계급성을 폭로하고 파괴하기보다, 선거 때만 되면 ‘왜 그래도 그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옹색한 처지에 몰린다. 그렇게 ‘反MB’는 새로운 MB를 낳았고, ‘反박근혜’는 점점 새로운 박근혜로 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당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가 300년 전에 답을 내놨다.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인의 나라가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라던 그의 정의는, 더불어민주당에 그대로 적용된다. 탄력근로제․최저임금 개악과 ‘사용자 대항권’ 도입을 추진하는 그들은 노동자민중과 “더불어” 있지도 않으며, 이 개악 추진을 위한 경사노위와 국회 활용은 “민주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세월을 거치면서, ‘어제 민주당과 손을 잡았던’ 세력과 ‘오늘 민주당과 손을 잡은’ 세력이 창원에서 만나 서로에게 손가락질한다. 기막힌 노릇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여영국 후보 당선 직후 감사 인사를 하면서 “정부․여당과 적극 협력하고 견인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 구체적인 과제로 “선거제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선거제 개혁안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당선인이 결정됐던 4월 3일은 “노동개악 저지”를 외치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연행되고 국회 앞에서 격렬한 투쟁이 벌어진 날이었다. 하지만 당일 심상정 의원의 이 발언에서는 ‘현 정부의 노동개악을 막겠다’는 한마디가 없었다. 어찌 보면 경사노위를 지지하고, 광주형 일자리를 찬성한 정의당에 너무 과한 기대를 하는 것일까 싶다.



다시 시작된 세력 재편, 우회로는 없다


이번 창원성산 보궐선거는 단순히 ‘의석 하나를 누가 가져가느냐’의 문제를 넘어, 앞으로 여야는 물론 진보정치 내부에도 적잖은 효과를 미칠 것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나경원이 직접 ‘보수 빅텐트론’을 제기하기 시작했으며, 바른미래당은 심각한 내홍에 빠져 분당 수순으로 가고 있다. 이 파급효과로 (정의당의 바람과 다르게) 민주평화당 내부가 바른미래당 호남계 의원들의 귀순을 기다리면서,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군다나 민주평화당과의 연합에 몸이 달아 있는 정의당과 달리, 오히려 민주평화당은 ‘자신들이 탄력근로제 개악에 찬성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입장이 다른 정의당과 함께할 수 없다’며 계급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선을 긋고 있다. 이렇게 보수정치는 다시 양당정치 회귀를 가속화하고 있다.


진보정치 내부에 미칠 영향도 클 것이다. 시각 차이는 있겠으나, 이른바 ‘진보’라고 칭하던 폭넓은 세력으로 구성한 대연합 정당 민주노동당 시기가 ‘1기’였다. 그 뒤를 이어 정의당-민중당으로 분리 정립하며 ‘진보 단일화’를 축으로 제한적 공조를 펼친 것을 ‘2기’라고 부른다면, 이번 창원에서의 격돌을 계기로 더 이상 ‘후보 단일화’를 통한 공조는 어려울 것이다. 사민주의 세력의 정의당과, 민족주의 세력의 민중당으로 분립하며, ‘진보정치의 두 번째 순환’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멀고 험해도, 우회로가 있겠는가. 창원성산 보궐선거를 계기로 닥쳐온 보수정치-진보정치 재편 움직임은, 사민주의와 민족주의에 만족하지 못한 노동자민중이 나서는 “사회주의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전면화하는 노동자계급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현장에서부터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서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다 적극적으로 들춰내며, 한국 사회 ‘레드 컴플렉스’에 갇혀있던 사회주의를 양지로 꺼내 힘차게 투쟁할 수 있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창원성산에서 벌어진 사달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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