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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이제 공기업임을 선언하자


박성호┃부산(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열사 정신 계승사업회 회장)



2019년 3월 29일, 한진중공업 주주총회에서 조남호 회장과 이윤희 사장이 해임됐다. 막대한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채권단에 의해 경영권을 잃은 것이다. 이제 한진중공업 최대 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다. 별다른 여론의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한진중공업은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국유기업이 됐다.


요즘 한진중공업 현장에서는 ‘또다시 생존권 사수 투쟁을 해야 하나’, ‘회장과 사장이 쫓겨나도 회사는 안 망하네’,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자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 법적 처벌까지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국가 공기업이 된 한진중공업을 다시 민간자본에 매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도 밝히고 있다.



왜 한진중공업은 이 지경까지 왔는가?


한진중공업이 자본잠식에 빠질 정도로 적자와 채무를 짊어진 것은 심각한 경영 실패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지난 2004년 필리핀 수빅에 선박 블록공장을 건설한다며 노동자들에게 설명회를 열고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은 바 있었다. 하지만 환상은 거짓이었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 건립에 조남호 회장은 2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그 돈은 모두 부산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었다. 2008년 수빅 조선소 첫 선박 명명식에서 조남호 회장은 “기존 통념을 깨고 새롭고 창조적인 큰 사고로 판단해야 한다, 수빅 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 추구하는 글로벌 경영의 첫 산물이자 결실”이라며 자축의 잔을 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재벌총수 2세는 빈 깡통이 돼 돌아왔다.


오늘의 현실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조남호 회장은 수빅 조선소를 건립하자마자 곧바로 조선소 인력을 빼고 건설인력을 투입했다. 집짓는 기술자가 어떻게 갑자기 배를 만들 수 있었겠는가? 조선업은 각종 산업기술을 결합한 종합기술의 산물이다. 결국 조남호 회장은 배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이, 그저 재벌총수 2세라는 이유 하나로 경영권을 휘둘렀던 것이다.


특히 조남호 회장은 경영보다는 노동조합 무력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3년,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에 항거하며 김주익, 곽재규 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열사들의 죽음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격렬하게 맞서 싸웠고, 사측은 결국 노동조합에 백기투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진중공업 자본은 8년 동안 칼을 갈았다. 그 결과가 바로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였고, 그에 맞서 309일간 이어진 김진숙 동지의 85호 크레인 고공농성 투쟁이었다. 조남호 회장은 민주노조의 뿌리를 뽑고 비정규직으로 가득한 현장을 만드는 데 골몰했다. 이런 범죄경영에 토를 달았다간 다음날 잘리는 파리 목숨 신세가 됐다. 노동자들은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진짜 원인이라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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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돌고 돌았다


한진중공업은 애초에 국가가 운영하던 기업이었다. 1937년 “조선중공업” 설립 후 1946년 미군정 운수부가 관리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교통부 산하 국가기관으로 편재하면서 “부산 조선창”이 됐고, 곧이어 “대한조선공사”라는 공기업으로 전환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조선 1번지”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권력자들은 정치자금 확보를 위해 알짜배기 국유기업들을 자본가들에게 헐값으로 넘겼다. 한진중공업도 이때 남궁연이라는 자본가가 넘겨받으면서, 공기업 대한조선공사를 민간기업으로 만들었다. 당시 조선공사 노동자들은 도크를 점거하고 민영화 반대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뒤 조선공사가 경영 부실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1989년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헐값에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한진중공업은 10년 연속 흑자를 냈고, 조중훈 회장은 아들 조남호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그리고 지금, 그 조남호가 경영권을 상실하고 물러났다. 첫 민영화 이후 5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한진중공업은 다시 국가 소유로 넘어왔다.



결코 민간자본에 다시 빼앗길 수 없다


지난 50년, 국가 기간산업을 재벌에 팔아넘긴 결과는 무엇이었나? 총수 일가는 배를 불렸고, 노동자들은 해고와 죽음으로 내몰렸다. 국유기업이 된 한진중공업을 결코 민간자본에 다시 빼앗겨선 안 된다.


우리는 대우조선해양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운영하던 국유기업이지만, 낙하산 경영진을 내려보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배당금만 뽑아 먹다가 실컷 구조조정을 한 뒤 현대중공업에 팔아넘기려 한다. 국가가 지분을 소유하는 것 자체로 뭔가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산업은행은 가장 가혹한 구조조정의 지휘자였고, 동시에 가장 썩어빠진 비리의 온상이었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조용하게’ 한진중공업을 국유기업으로 전환한 지금, 우리가 먼저 공개적으로 국유기업임을 선언하고 제대로 된 공적인 통제와 운영을 요구해야 한다. 그간 퍼져 있던 생산현장의 각종 문제점, 만연한 사내하청과 내부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면서 공적 통제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선소 내부의 수많은 비리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이를 조사해서 구체적 근거들을 내놓을 수 있다. 산업은행이 ‘경영 정상화’라는 미명 하에 다시 노동자들을 공격하려는 지금, 우리는 ‘국유기업답게 제대로 운영하라’고 맞받아치며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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