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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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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체하는 서울대, 

착취의 요람이었다


김신우┃학생위원회(서울대분회)


* 인쇄본 <변혁정치> 93호가 발행된 이후 10월 1일에 교섭이 타결되면서, 본 온라인 기사는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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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지난 9월 23일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에서 운영하는 학내 식당·카페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1989년 이후 30년 만에 무기한 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최저 수준의 임금, 병원 치료를 병행해야만 견딜 수 있는 노동환경을 이제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은 이미 9월 19일 저임금 문제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선 바 있다. 파업 이전부터 교섭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던 생협 사측은 파업 이후에는 계약직 기간제 직원들을 동원해 무리하게 식당을 운영하는 등 파업 무력화에 온 힘을 쏟았다. 견딜 수 없는 처우와 사측의 파렴치한 태도에 대한 생협 노동자들의 답은 파업 투쟁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씻을 수도, 쉴 수도 없다


조리실이라는 공간은 업무 특성상 고온·다습한 환경이기 때문에 냉방기, 흡배기 등이 필수다. 하지만 서울대 생협이 운영하는 학내 식당 조리실에는 제대로 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조리 노동자들은 땀에 흠뻑 젖어 각종 피부질환으로 고통받는다. 심지어 샤워실도 비좁은 데다 성별 구분도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조리실에서 커튼을 치고 씻어야만 한다. 70~80년대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서울대학교 생협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한 노동자는 “서울대 생협의 노동환경은 소문이 날 정도로 열악해서, 채용 공고를 올려도 지원자가 별로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한 끼 당 수천 인분에 달하는 조리·배식 업무를 부족한 인원으로 감당해야 하니, 무거운 조리도구를 혼자 옮기는 것은 일상이고 조리 노동자들은 ‘뼈주사’를 달고 산다. 마찬가지로 생협이 운영하는 학내 카페 “느티나무”의 노동자들은 키오스크 도입 이후 시간당 업무 인원이 줄어들어 업무 강도는 더 높아졌지만, 여전히 마땅한 휴게 시간도, 공간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생협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가히 최저 수준이다. 현재 이 노동자들의 1호봉 기본급은 171만 5천 원이다. 이는 2019년 월 최저임금인 174만 5천 원에도 못 미쳐, 생협 사측은 임시로 추가수당을 지급해 겨우 위법을 피하는 실정이다. 10년을 넘게 일해도 기본급이 200만 원을 겨우 넘을까 말까 한다. 그마저도 음식 및 주점업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 1인당 평균임금(233만 원)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윤은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임금 올릴 돈은 없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견디다 못한 노동조합은 사측과의 교섭에서 △기본급 3% 인상 △명절휴가비 지급 △10년 근무해도 임금 인상이 거의 없는 기존 호봉체계 개선 △휴게시설 및 근무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인 요구이지만, 사측은 교섭에 불성실하게 응하며 ‘생협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라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러나 사측이 주장하는 ‘재정난’은 사실 기만일 뿐이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서울대학교와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은 별도의 법인이지만, 서울대 교육부총장이 생협 이사장을 맡을 뿐만 아니라 이사회 전반에 교직원이 자리 잡고 있어 대학본부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더군다나 생협은 매년 수억 원(2017년 6억 원, 2018년 4억 원)의 이윤을 기부금 명목으로 서울대에 납입하고 있다.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매년 이윤을 받아 가면서도 본부는 ‘별도 법인’이라며 생협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두지 않는 생협 식당의 운영은 실제로는 노동자의 저임금으로 유지된 것이다. 한편 서울대 본부는 ‘천 원의 식사’와 같은 보여주기식 복지를 위해서는 생협에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서울대 본부는 생협 노동자를 쥐어짜면서도 외부 시선을 의식할 때는 쉽게 재원을 사용한다. 생협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는 결국 서울대 본부의 기만적인 태도를 바꿔내는 데 달려있다.



착취로 굴러가는 대학, 연대로 바꿔내자


생협 노동자들의 힘찬 파업은 10월 1일 교섭의 타결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생협 노동자들의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합의안은 여전히 노동조합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법인 분리로 인한 폐해가 해결되지 않았다. 생협 노동자들은 10월 1일 노동자-학생 연대 집회에 '또 다른 시작'이라는 부제를 달며 더 나은 세상과 학교를 향해 계속해서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지난 8월, 열악한 휴게 환경으로 인해 조합원이 목숨을 잃은 서울일반노조 서울대 청소·경비 분회와 기계·전기 분회의 노동자들 역시 열악한 처우의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서울대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올 2월, 학내 기계·전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변혁정치> 81호 기사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 파업 돌아보기” 참고) 일부에서는 ‘학생을 볼모로 삼지 말라’며 오히려 노동자를 비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대 전반에 만연한 최저 수준의 임금과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노동환경이 폭로되면서 학내 노동자들의 전면 투쟁은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의 뜨거운 연대와 지지를 받고 있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과 관악구 시민단체들은 이 투쟁에 연대하면서 ‘착취의 대학을 멈춰야 한다’라고 외치고 있다. 생협 노동자의 파업은 끝이 났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고, 다른 노동자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생협을 비롯한 서울대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는 투쟁, 대학의 착취구조를 뒤바꾸기 위한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노동자-학생 연대 역시 두텁게 자리 잡았다. 착취의 서울대를 뒤엎는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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