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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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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0.16 12:41

조커, 

웃기지도 않은 

농담꾼


송준호┃기관지위원회


두 시간 내내 지속되는 인셀 백인 남성의 징징거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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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베니스 영화제에 공개된 이후 숱한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조커>가 한국에도 선을 보였다. 코믹스 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로 일컫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 영화는 그간 만드는 영화마다 대중과 평단에게 혹평을 받아온 DC코믹스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미국 기준 10월 4일 개봉한 이래 세계적으로 3억 6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632억 원을 벌어들였다. 한국에서도 개봉 열흘만인 10월 13일 기준 3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중이다. 그러나 영화 <조커>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외면하는 문제는 이 영화를 “유해한 쓰레기에 불과.”*하게 만든다.



혼돈에 뿌리를 부여한 오만


조커와 다른 코믹스의 악당을 구별하는 차이점은 그가 질서를 거부하는 혼돈악이라는 점이다. 그에게 살인을 비롯한 반사회적 범죄는 그저 게임일 뿐이며, 이런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에는 대부분 이유가 없다. 누구든 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공포심은 그를 예측 불가능한 악당으로 만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2008) 속 조커(히스 레져 扮)는 혼돈악의 전형이다. 이 영화에서 조커는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운”이라고 주장하며 정의의 기사인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 扮)를 타락시키고, 그 유명한 페리 인질극에서 이를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상대 선박에서 버튼을 누르면 내가 탄 배의 폭탄이 터진다는 위협에도 한 죄수의 선한 마음이 인간의 존엄을 지킬 때, 조커는 혼돈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폭탄을 터뜨리려 한다. 이 순간 관객은 조커가 가리고 있던 허약한 거짓말을 직관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조커>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기나긴 변명뿐이다.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扮)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실체 없는 경험적 세계에 대한 자기연민으로 조커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 비대한 자의식의 결정체인 조커를 비웃음으로써 채플린의 금언(金言)을 윤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자본주의를 풍자한 <모던 타임즈>를 즐기는 자본가들을 비웃고, 청소노동자 파업과 실업 등의 사회문제를 조커 탄생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위치시키며, 조커의 살인과 폭력에 계급적 투쟁의 허울을 광대 가면처럼 덧씌운다. 혼돈악의 상징이었던 조커는 영화가 부여한 ‘혼돈의 이유’라는 뿌리 위에서 투사적 지위를 획득하며, 불타는 고담 시가지 한복판에서 질서악으로 변모한다. 동경하던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 扮)의 토크쇼에서 스스로 정치적 움직임과의 관계를 부정하던 조커는 그를 저항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민중을 통해 무정부적 정치행위의 한복판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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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히어로라는 변명


한편, 영화가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사회적 약자를 묘사하는 방식도 문제를 안고 있다. 아서 플렉이 정부 지원으로 만나는 상담사,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며 핀잔을 주는 버스의 보호자, 주인공 환상 속의 연인이자 후에 (아마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웃 소피, 도시의 폭동 이후 붙잡힌 정신병원에서 그에게 (역시 아마도) 살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의사는 공교롭게도 모두 흑인 여성이다. 뉴욕타임즈는 이를 “근본적으로 백인 우월주의를 방치했을 때 일어나는 일을 묘사한 것”이라며 “(감독이) 일관되게 플렉을 이 여성들의 적대적 위치에 놓는다”고 분석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에 제기되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조커는) 80년간 우리가 보아온 캐릭터”라면서 “영화 <존윅3>에서는 백인 남성이 300명 넘게 죽이지만 관객은 응원을 하지 않는가”라며 영화의 폭력적인 묘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자초했다.


그러나 2012년 <다크나이트 라이즈> 상영 당시 콜로라도 주 오로라의 극장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2016년 올랜도 게이클럽 총기난사 사건 등을 겪은 미국 사회에서 가해자의 입장에 감정이입하도록 구성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윤리의식에 기반한 것일까. 조커 가 지닌 역사성을 빌미로, 이를 대중에 전달할 때 가져야 하는 윤리적 태도와 작품에 대한 비판 시도를 무력화하는 것은 영화 속 조커의 궤변만큼이나 비겁하다.


안티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영화의 윤리학이란 그 인물의 탄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조커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멀리서 바라보며 희극으로 인식하지만, 관객은 오히려 조커의 삶을 더욱 가까이서 바라보도록 강요받는다. 웃기지도 않는 두 시간짜리 농담이 유해한 이유다.



* Glenn Kenny, https://www.rogerebert.com/reviews/joker-movie-review-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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