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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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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함이 묻어나는 ‘안녕?’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2009년 당시, 우리는 민주노총과 10여년간 작업하지 못한 상태였다. 민주노총 건설 후 조직이 안정되면서 민주노총을 홍보하고, 활동을 기록하고, 조합원 교육 영상을 제작하는 업무를 일상적으로 하기 위해 민주노총 내에 방송국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많은 젊은 활동가들이 열심히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민주노총과 단절됐다. 이 활동가들의 헌신에 점점 고단함이 깃들 때쯤, 작업 생산이 원활치 못할 때쯤, 민주노총 비정규직 담당자가 우리에게 작업을 제안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기금을 제법 모았고, 이 기금으로 비정규직 1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교육 영상을 만들려고 했다. 10년의 비정규직 역사를 투쟁 편과 조직 편으로 나눈 <노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는 이렇게 시작했다.


애초에 민주노총이 이 작업을 우리에게 제안했을 때는 ‘꼭 극영화는 아니지만 드라마가 있고, 기존 교육 영상과는 다른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바로 전에 우리가 극영화로 비정규직을 다룬 <안녕? 허대짜수짜씨!>보다는 밝고, 주인공도 젊은 비정규직이었으면 했다. 실제로 극영화 대본까지 나왔다. 하지만 ‘대본이 밝지 않다’는 평가에다가, 제작비를 아무리 줄여도 민주노총이 감당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우리는 극영화를 볼만하게 완성할 자신감이 없었던 탓에, 극영화를 중단하고 재빨리 다큐로 전환했다. 그러나 당시 다큐 제작 여건도 좋지 않았다. 주요 작업자들이 육아에 매여 있었고, 몸이 아픈 사람도 있었다. 결국 투쟁 편은 편집을 외부 연출자에게, 조직 편은 내부에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맡겼다. 그러다 보니 애초 약속한 기일의 3배가 넘어가도록 끝이 안 났다. 민주노총 담당자에게 매번 ‘죄송하다’는 말을 하다가 결국 작업자를 바꾸고 보강해 제작을 완료했다. 2년 여만에 완성하면서 투쟁 편, 조직 편에다 2009년 정세영상을 붙여 총 3부작 영상이 됐다. 제작은 늦었지만 결과물과 이후 과정은 괜찮았다. 민주노총은 이 작품의 DVD와 함께 내용에 대한 소개와 활용지침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성의 있게 배포했다. DVD 2천 개를 배급했는데 당시 가장 많이 배급해본 것이다.


“노동자라면 반드시 필요한데, 노동자 10명 중 단 한명만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 뭘까? 집? 차? 주식? 스포츠센터 회원권? 생명보험? 모두 아니다. 이것들은 열 명 중 한 명만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 뭘까? 바로 노동조합이다. 어떻게 하면 이 노동조합을 노동자 열이면 열 모두가 가질 수 있을까?” <노동자 여러분… 제3부: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조직>의 이 프롤로그는 아주 짧게 소재에 대한 묘사와 소재를 바라보는 각도를 정확히 세웠다. 이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준다는 점에서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교육용에 좋은 프롤로그다. 40분에 달하는 본문은 역사물이 아니었다. ‘조직의 역사는 투쟁의 결과물이거나 투쟁을 위한 어떤 것이니, 투쟁의 역사와 같다’고 생각한 우리는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을 건설해나가는 모습에 집중했다. 이 모습을 하나의 논리적 서술보다는 현실의 사례들을 그대로 드러내 거기서 뭔가를 찾으려고 했다. 단순한 현황보고서가 되지 않도록, 각각의 사례가 품고 있는 의미를 5가지 이야기로 분류했다. 한 회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금속노조 대한이연지회,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 지역과 함께 하는 이야기 1(성서공단 노동조합), 지역과 함께 하는 이야기 2(지역일반노조), 산별로 함께 하는 이야기(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보건의료노조), 모든 것을 넘어서 이웃과 함께하는 이야기(서부비정규센터 준비모임 사례)로 나눠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을 만났다.


마지막 에필로그인 민들레꽃이 상징하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까지, 프롤로그를 포함해 총 7개의 이야기로 구성한 이 <노동자 여러분… 제3부>는 특별히 편집을 잘했거나, 대단한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번뜩이는 작품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의 활동량이 제한적이어서 사례들을 충분히 촬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이 작품 속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단한 일상과 함께, 이들을 돕는 활동가들의 헌신과 열정이 군데군데 묻어나는 따스함이 있었다. 아니, 냉철하게 봤을 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당시 노뉴단의 고단한 사정 때문에, ‘우리도 누군가에게, 무엇으로부터, 위로받고자 하는’ 바람을 작품 속에 투영했거나 아니면 그런 우리의 바람이 가져온 착각일 수도 있다. 여하간 나는 이 작품을 몇 번씩 보고 또 보고, 그것도 모자라 출퇴근 버스 안에서 몇 번씩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덕분에 위로가 됐습니다. 열심히 해 볼게요.’ 제목 <노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의 뒤에 이어질 우리의 말이 되었다. ‘안녕?’ 따스함이 묻어있는 그 인사는 우리에게 두고두고 위로였다.



* <노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3부: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조직> 

38분/2009년/제작 민주노총, 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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