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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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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5.01 20:50

꽃등에



아파트 앞뜰에 살구꽃, 벚꽃, 수수꽃다리 꽃이 이어 달리듯 숨 가쁘게 계속 피고 지고, 나무 아래 풀꽃들 냉이, 종지나물, 서양민들레도 질세라 쉼 없이 꽃 피건만 그 꽃 한번 가만가만 찬찬히 살피지 못하고 4월을 다 보냈다. 5월은 더 여유 없이 훌쩍 보낼 것 같아 괜히 조바심이 나는 때다. 겨울 추위가 다 가시는 이맘때는 곤충들이 제대로 활동을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 곤충을 보려면 꽃 앞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꽃무지, 꽃하늘소, 벌과 나비 그리고 꽃등에… 꽃을 찾아오는 곤충 가운데 꿀벌과 꽃등에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꿀벌처럼 꽃꿀과 꽃가루를 찾아 날아온 꽃등에는 꿀벌에 버금가는,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돕는 일꾼이다. 혼자 살아가는 꽃등에는 무리 생활을 하는 꿀벌처럼 부지런한 일꾼은 아니다. 꿀벌은 애벌레와 여왕벌을 먹여야 하기에 바쁘다. 꽃을 찾아 빠르게 옮겨 다니고 꽃 속 깊이 파고들어 꿀을 빠는 꿀벌은 그만큼 꽃가루받이 효과가 크다. 자기 먹을 것만 구하면 되는 꽃등에는 여유롭게 꽃 위에 앉아 꿀과 꽃가루를 할짝거린다. 아래를 향해 핀 꽃에는 애써 매달리지 않고 힘들게 꽃 속으로 깊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그래도 ‘꽃등에는 꿀벌보다 추위에 강해서 낮은 온도에서도 날 수 있다.’(「꽃과 곤충」 / 다나카 하지메 / 지오북) 늦가을 들국화 핀 곳에 가면 느긋하게 꽃 사이를 나는 많은 꽃등에를 볼 수 있다.


꽃가루받이를 돕는 일꾼인 꿀벌과 꽃등에는 생김새도 똑 닮았다. 꽃등에가 천적의 공격을 피하려고 독침이 있는 벌을 흉내 낸 것이다. 벌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벌을 닮은 꽃등에도 똑같이 무서워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체험 활동을 할 때면 병에 꽃등에를 몰아 잡아서 보여 주며 말한다. “파리 무리에 속하는 꽃등에는 날개가 두 장이야. 뒷날개 두 장은 평균곤으로 변했어. 날개 속에 작고 동그란 평균곤이 보이지? 꽃등에는 겹눈이 벌의 겹눈보다 커서 머리 대부분을 차지해. 눈이 큰 대신 더듬이는 아주 짧아. 침이 없어서 쏘지 않아.” 얘기를 마치고 꽃등에를 살며시 손으로 잡아서 놓아준다. 꽃등에를 벌처럼 무서워하던 아이들은 다음에 잡은 꽃등에를 서로 자기가 잡아서 놓아주겠다며 손을 내민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산 꽃등에 종류는 170여종이다. 꽃등에는 대개 벌을 흉내 내는데 종류마다 흉내 내는 벌이 조금씩 다르다. 꽃등에, 배짧은꽃등에, 덩굴꽃등에는 꿀벌을 닮았고, 호리꽃등에는 꽃벌을 닮았다. 꿀벌을 흉내 낸 꽃등에, 배짧은꽃등에, 덩굴꽃등에는 꿀벌과 닮아서 자주 뒤바뀌고는 한다. 여러 책에 꿀벌 대신 꽃등에가 실리기도 했고, 꿀벌과 크기까지 비슷한 배짧은꽃등에는 TV 광고에 꿀벌 대신 잘못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꿀벌을 닮은 이 세 종류의 꽃등에는 서로 닮은 데다 모두 변이가 심해서 종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꽃등에(몸길이 14mm)는 배짧은꽃등에(몸길이 12mm), 덩굴꽃등에(몸길이 11mm)보다 몸집이 조금 커서 구별해 볼 수 있다.


꽃등에는 꿀벌을 닮고 꽃에서 꿀을 먹지만 애벌레 때는 그 생김새와 사는 곳이 사뭇 다르다. 꽃등에 애벌레는 더러운 물속에서 썩은 유기물을 먹고 산다. 배 끝에 긴 꼬리처럼 달린 숨관을 물 밖에 내밀고 숨을 쉬는데 쥐꼬리처럼 달린 숨관 때문에 꽃등에 애벌레를 쥐꼬리구더기라고 부른다. 꽃등에 애벌레인 쥐꼬리구더기는 흉측한 모습을 하고 아무것도 살 것 같지 않은 더러운 곳에 사는 탓에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끔찍한 괴물로 여긴다. 그렇지만 쥐꼬리구더기가 살아가는 더러운 물, 즉 악취 나는 하수구, 가축 배설물이 섞인 농장 웅덩이 따위는 다 사람이 오염시킨 것이다. 쥐꼬리구더기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가장 더러운 물에 살면서 유기물을 걸러 먹으며 오염을 정화한다. 쥐꼬리구더기는 지구 최고의 청소부다.


썩은 물속에 살던 쥐꼬리구더기는 번데기가 되었다가 날개돋이를 하고는 꽃등에가 되어 꽃으로 날아와 꽃꿀과 꽃가루를 먹는다. 이보다 더 극적인 변신이 있을까. 5월에 핀 꽃에 앉아 있는 작은 꽃등에를 보거든 최고의 청소부이자 꿀벌에 버금가는 꽃가루받이 일꾼에게 예의를 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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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