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함께 길을 걷다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2010년, 고단함이 사무실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낙성대역 인근 5층짜리 건물 4층에 자리 잡은 지 8년. 이 시기 누군가 우리를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 ‘섬’. 거친 바다의 풍랑에서 다들 힘든데, 우리는 거기서 비켜나 있는 고요한 ‘섬’이고 우리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실상 우리는 그리 ‘품위 있지’ 못했고, 노뉴단이라는 이름으로 걷던 길을 멈춰 서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극영화 제작의 후유증과 작업자들의 이런저런 개인 문제로 불안정한 시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8년 동안 1억 원 가까운 월세를 냈는데도 날카로운 눈매의 주인 할아버지는 종종 사무실 앞에 와서 밀린 월세를 달라고 신경질을 냈다. 활동비는 빚을 내서 메우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이 갈수록 힘들어지면서 제작비는 점점 더 깎이고, 제작 의뢰는 줄어들었다. <동희오토 이야기>, <버스 노동자, 노동자의 길로 달리자>는 이 와중에 작업한 결과물이다.


<동희오토 이야기>는 100% 비정규직 자동차 공장 “동희오토”를 다뤘다. 노조를 만들었다고 노동자들을 계약 해지해 공장에서 쫓아낸 자본과, 그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동희오토는 당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때마다 등장했던 사업장이었고, 공장에서 쫓겨나 투쟁하던 노동자 한 명은 예전에 우리와 함께 일했던 친구이기도 했다. 동희오토 투쟁이 길어지면서 이 싸움을 전국의 노동자에게 알리고, 내부적으로는 투쟁 대오를 다시 한번 다지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다. 작업은 전형적이었다. 투쟁 당사자 인터뷰에다 ‘왜 싸우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들어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의 작업은 ‘적은 돈으로 빠른 시간에 완성해야 한다’는 공식이 있다. 당시 우리는 제작비 부족 문제야 작품의 의미로 덮을 수 있었지만, 빠르게 편집을 완성할 내부 인력이 없었다. 결국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우리는 급할 때 부분적으로 편집을 함께 했던 외부의 친구에게 통째로 한 작업의 편집을 맡겼다. 새로운 제작방식이었다. 내부에서 촬영과 대본을 완성하면, 편집은 외부의 친구가 도맡았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은 상당히 좋았다. 무엇보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빨리 그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을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시기 노뉴단에는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업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노동운동을 해오며 알고 지내던 선배가 공공운수노조에서 버스 노동자를 조직하는 일을 맡고서 우리를 찾아왔다. 20여년 간의 버스 노동자 투쟁을 다룬 영상을 만들어 조직화에 활용하고 싶어 했다. <버스 노동자, 노동자의 길로 달리자>는 그 작업의 결과물이다. 애초에는 적은 제작비와 짧은 기일 때문에 20분 정도 길이로 기획했다. 하지만 버스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서는 역사만 보여주는 것으론 부족했다. 버스 노동자를 둘러싼 현재의 정세와 함께, 이를 돌파하기 위한 투쟁과 조직적 과제도 담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작업은 제작기일도 늘어났고 작품도 장편 규모가 됐다. 또다시, 일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였다. 하지만 작업 과정에서 우리는 그 모든 문제를 덮고도 남을 소중한 결과를 얻었다. 이 작업의 연출, 대본, 촬영, 편집을 모두 해낸 친구는 당시 2년간 임신과 육아에 매여 있었다. 일을 놓지는 않았지만, 전면적으로 활동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자기 역량의 반의반도 쓰지 못하던 친구가 온전히 집중력을 쏟은 작업이 바로 <버스 노동자…>였다. 덕분에 이 작품에는 ‘논리적인 대본 쓰기’와 ‘넘치지 않는 촬영’, ‘탄탄한 편집’이라는 이 친구의 장점이 잘 살아났다. 그 비용으로, 그 기간에, 그 정도의 완성도를 성취하기는 지금도 힘들 것이다.


외부의 친구와 함께한 새로운 제작방식의 실험, 그리고 내부 작업자의 온전한 복귀.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속도를 유지하면서, 너무 많이 쉬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품위’를 유지하면서, 아직도 걸어갈 수 있는 많은 이유가 여기서 나왔다. 이들과 함께 걷지 않았다면, 분명 우리는 노뉴단이라는 길에서 멈춰서고 말았을 것이다.


여하간 그때 우리는 노뉴단 역사상 가장 좋은 조건의 사무실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결국 교통이 더 불편하고, 공간은 더 좁고, 월세가 더 싼 사무실로 이사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였다. <동희오토…> <버스노동자…>는 이사를 가기 전에 했던 마지막 작업들이다.



* <동희오토 이야기> 20분/2010년 5월/제작 동희오토노동조합, 노동자뉴스제작단

* <버스노동자, 노동자의 길로 달리자> 46분/2010년 6월/제작 공공운수노조, 노동자뉴스제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