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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이가영 님을 떠나보내며


이종란┃반올림 상임활동가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이름을 가진 이가영 님이 지난 4월 8일, 26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초코민트 아이스크림과 예쁜 꽃을 좋아하던 가영 님은 독한 항암치료를 받느라 먹고 싶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좋아하던 벚꽃도 보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병마와 사투를 벌이다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가득해서, 그녀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울반도체 여성 노동자 이가영 님(92년생)과 그 가족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한부모 가족으로 가영 어머님이 어린 두 딸을 키워내야 했습니다. 어머님이 청소나 식당일을 해도, 고등학교 참고서를 사줄 돈이 없어 학교 가는 길에 아이를 울려 보내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어려운 형편에도 가영 님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딱 1년만 돈을 벌어 보자고 해서 들어간 회사가 안산 원곡동에 있는 삼성의 하청회사 “에스피SP반도체”라고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3년간 일한 뒤, 두 달 쉬고 다시 2015년 2월에 안산 단원구에 있는 “서울반도체”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서울반도체에서 2년 반 동안 일했습니다. 서울반도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LED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대표이사 이정훈, 유현종은 모두 삼성 출신입니다.


서울반도체는 LED 생산 공정에서 여러 화학물질을 취급하지만, 안전교육은 없었습니다. 이가영 님보다 앞서 백혈병에 걸려 산재 신청을 했던 노동자도 있습니다. 그 역학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반도체가 취급하는 화학물질은 섭씨 150도의 고온에서 백혈병을 유발하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가영 님은 회사로부터 그런 정보를 전혀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방독마스크는 ‘귀빈용’이었고, 실제 노동자들에겐 일회용 일반마스크만 지급됐습니다.


이가영 님은 기숙사와 회사만을 오가며 12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2017년 8월에는 일하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인데도, 회사에서 협조하지 않아 홀로 응급실에 가야 했습니다. 그 뒤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님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들을 보호해달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집 자식들이고 먹고 살려고 일하는데, 정작 제대로 된 보호 장치는 없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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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가영 님 빈소[사진: 반올림]



정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난 10여년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반도체·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 사망에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요? 기업엔 도대체 어떤 책임을 묻고 있나요? 그나마 어렵게 산재를 인정받아도 기업들이 취소소송을 제기하는데, 어떤 대책이 있나요? 회사가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 ‘안전기준’이라고 주장하는 노출 기준(관리기준) 이하에서도 노동자들이 죽고 병들어가는데, 이제는 대답해야 하지 않나요?


‘노출 기준’은 안전의 절대기준이 아닙니다. 노출 기준 이하에서도 직업병이 발생하기에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발암물질은 안전의 역치(문지방 수치)가 없어서, 아주 미미한 노출로도 누군가가 희생될 수 있습니다. 유해물질은 결코 일회용 마스크로 막을 수 없습니다. 발암물질 없는 대체 물질을 사용하라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가영 님이 인정받은 산재처분에 대해, 서울반도체 사측은 소송을 제기해 취소하려 했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이후 극도로 조심해야 할 상황에서, 회사 인사부장이 찾아와 ‘산재 취소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가영 님의 병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면 분노스럽습니다. 가영 님이 끝내 눈을 감고,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이 울분을 토해가며 잘못된 소송을 취소하라고 절규하지 않았다면 서울반도체 이정훈 대표이사는 지금도 산재 취소 소송을 고수하며 “우리 회사는 유해물질을 노출 기준 이하로 관리하므로 안전하다”고 강변했을 겁니다.


몇 달 전 서울반도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노조는 이가영 님 추모 집회를 열고,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유해한 작업환경 운운하는 것은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이라며 적반하장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죽었는데도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회사가 어찌 정상일 수 있을까요. 이런 회사에서 어떻게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성 평가 제도’를 규정하고 있지만, 노동조합과 현장 노동자들의 참여 없이 안전은 결코 확보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무엇이 유해하고 위험한지 제대로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개선대책 마련에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제대로 ‘참여할 권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산재 사망에 대해 기업에 책임을 물어 엄중 처벌하는 법·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노동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이 참혹한 비극, 정부는 언제까지 팔짱끼고 지켜보고 있을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