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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무상교육, 안산시 반값 등록금…

이제 대학 등록금 없는 세상을 말하자


고근형┃학생위원장



지난 4월 9일, 정부가 고등학교 전면 무상교육 계획을 발표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무상교육을 도입한 결정을 환영한다. 이제 남은 것은 대학 등록금 문제다. 최근 안산시는 관내 모든 대학생에게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전국적인 반값 등록금 운동 이후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현재, 여전히 등록금은 대학생을 짓누르는 중대한 문제다. 교육이 권리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대학 등록금 없는 사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의대 안 가면 등록금 안 대준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집에서 이따금 듣게 되는 말이다. 의대처럼 집안에서 원하는 계열로 진학하지 않으면 등록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협박. 이 말은 한국에서 교육권의 현주소를 함축한다. 누군가는 ‘저소득가구 장학금으로 교육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저소득가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령, 중산층 부모가 자신의 소득을 자식의 대학 등록금이 아닌 스스로의 여가를 위해 쓴다고 해보자. 저소득가구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등록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 학생은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서 학생의 교육권을 박탈한 주체는 누구인가? 등록금을 대주지 않은 부모? 하지만 부모는 자기 소득을 자기 자신을 위해 쓸 권리가 있다. 즉, 문제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에게 교육을 불허하는 대학 시스템이다.


무척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 사례가 예외적으로 보이는 건, 자식 교육을 위한 가정의 부담과 희생을 이 사회가 그만큼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꼭 그래야 하는가? 대개의 경우, 부모가 버는 소득은 자신들의 삶을 재생산하는 데 쓰기도 벅차다. ‘자식 교육에 대한 투자’라는 이유로 엄청난 교육비를 지출하는 건 자식에게 부채감을 안겨주면서 자신들의 삶을 갉아먹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교육받을 권리는 기본권이다. 권리를 행사하는 데 막대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건 권리가 아니다. ‘자식 교육에 투자하지 않는’다며 부모를 죄인으로 만드는 데 대학이 앞장서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이 가정의 소득과 관계없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핵심은 국가책임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책임지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출자해 반도체 학과 신설을 추진하는 중이다. 두 기업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부담하고 졸업과 동시에 해당 기업 취직을 보장하는 모델이다. 학생 입장에서야 일종의 ‘무상교육’ 실현이다. 하지만 교육은 사회적 공공재이며, 따라서 대학교육의 성과 역시 특정 기업집단이 아닌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이 아닌 사회가 대학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더구나 기업이 책임지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기업이 언제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일이며, 예컨대 경제위기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 교육에 계속 투자할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등록금 없는 세상은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18년 사립대 학생들이 낸 등록금과 수업료 총액은 무려 10조 8천억 원이다. 그런데 사립대 재단들이 적립해놓은 금액은 도합 약 9조 1천억 원으로, 학생들의 등록금과 맞먹는다. 용처도 불분명한 사립대 적립금을 교비로 환원한다면, 1년간 약 1조 원만으로 등록금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 만약 사립대 재단이 적립금 환원을 거부한다면, 해당 사립대를 몰수하고 국가가 대학교육을 책임지면 된다. 적립금과 약간의 세금으로 1년간 대학을 운영한 뒤, 고등교육에 재정 투여를 늘려 등록금 없는 대학으로 전환할 수 있다. 물론 사립대 재단 소유자들에게 지급하던 모든 재정을 교육비로 전환하는 조치를 수반해야 한다. 즉, 대학 등록금 철폐는 대학교육의 전면적 국가책임 실현과 맞물려야 한다.


한국의 GDP 대비 고등교육 재정 규모는 0.84%에 불과하다. 반면 OECD 평균 GDP 대비 고등교육 재정은 1.4%다. 여전히 한국의 공공 교육투자는 미흡한 수준이다. 작년 10월 발표한 고등교육 예산이 약 10조 원이므로, 이를 OECD 평균 수준에 맞춰 증액하고 사립대 재단의 사익 추구를 제한한다면, 등록금 없는 대학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립대학이 이를 거부한다면, 사회적 공익을 위해 단호히 국유화할 수도 있다.


사립대 재단의 이윤 추구만 아니라면, 등록금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다. 모든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교육의 비용을 개인과 가정에 덮어씌우는 지금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대학 교육의 성과가 특정 기업이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해 환원되기를 바란다면, 천문학적인 대학 등록금 자체를 철폐하자. 반교육적인 사립대 재단의 탐욕을 뛰어넘어 적립금 환수와 국유화, 대학 등록금 철폐를 이뤄낼 때, 모두를 위한 대학교육의 전면적 국가책임은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