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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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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5.01 22:44

<파업전야>와 

<태일이>의 연대


송준호┃기관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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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파업전야>(1990)가 30년 만에 정식으로 극장 개봉에 나선다. 2006년과 2014년, 한국영화 100선에 선정된 바 있는 이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복원했다. 당시 영화의 파급력을 우려한 공안 당국이 필름과 영사기를 압수하고, 헬기와 최루탄, 경찰 12개 중대까지 동원해 상영을 저지하려 한 일은 오히려 영화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한몫했다.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한 ‘상영 투쟁’으로 30만 명 이상(추정치)이 관람하며 장안의 화제가 된 전설적인 노동영화다. 노동절을 맞이한 개봉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영화의 정식 극장 개봉을 기념하는 시사회가 지난 4월 15일 용산 CGV에서 열렸다. 영화제작소 장산곶매 멤버이자 <파업전야>를 연출한 장동홍 감독은 “80년대 후반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고 각성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면서 “그때 공장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핍박받았는데, 지금 과연 본질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측면에서 외형만 바뀌고 조건들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똑같다”고 지적하며 3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꼬집었다. 주인공 “한수”를 연기한 배우 김동범은 “현재 일부 젊은이들의 비정규직이라는 위치, 열악한 작업환경, 한수와 같은 가정을 가진 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장 감독의 말을 이었다.



상영전야, 그리고 투쟁


<파업전야>는 <오! 꿈의 나라>(1988)로 명성을 얻은 영화제작단체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영화제작의 전문화, 과학화, 민주화”라는 의지로 장장 9개월에 걸쳐 경인 지역 노동자 면담 취재, 구성원간의 토론, 시나리오 탈고 작업을 진행했다. 구로공단부터 부평‧인천 공단 투쟁현장을 답사하고, 방위산업체 공장에서 촬영을 감행하는 등 지금은 무모해 보이는 일을 해냈다.


상영 이후의 투쟁도 장산곶매와 <파업전야>가 함께 이룬 성과다. <오! 꿈의 나라>가 광주항쟁을 다뤘다는 이유로 노태우 정권의 영장청구와 기각, 장산곶매 대표의 기소 등을 겪었던 터라, <파업전야> 때의 대응은 비교적 물샐틈없이 진행됐다.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필름과 영사기를 준비하는 한편, <파업전야 탄압 분쇄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를 꾸리고 한국독립영화협의회‧민예총‧전국노동조합협의회‧KBS노조 등이 연대했다.


상영투쟁 이후 <파업전야>는 ‘영화제작 신고 조항과 심의 조항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장산곶매가 신청한 헌법소원이 6년 뒤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사전심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끌어냄으로써, 진정한 승리로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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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전야> 시사회[사진: 송준호]



명필름의 도전과 <태일이>


이번 <파업전야> 극장개봉을 주도한 곳은 “리틀빅픽처스”라는 연합배급사와 영화제작사 “명필름”이다. 리틀빅픽처스는 한국영화산업 독과점에 대항하고자 명필름‧청어람 등 중소영화제작사가 모여 2013년 문을 열었다.


<파업전야> 극장 개봉의 주축인 영화제작사 명필름은 한국 상업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은 아동용밖에 못 만든다’는 편견을 깨부수고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을 제작해 흥행시키는가 하면, 노근리 학살사건을 다룬 <작은연못>(2010), 까르푸와 홈에버 파업을 모티브로 한 <카트>(2014),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아이 캔 스피크>(2017) 등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를 제작해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냈다.


지난 15일 시사회 때 판매한 영화 팜플렛 “파업전야 다시보기”를 제작한 곳도 명필름이다. 명필름이 <파업전야> 극장 개봉을 주도한 이유는 뭘까. 최근 명필름이 기획과 시나리오 등 제작 전반을 맡고 전태일재단에서 자료와 저작권을 제공하는 등 협력 방식으로 진행 중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테일이>가 그 원동력으로 꼽힌다. 흡사 노동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가 세월을 넘어 연대하는 듯하다.


<태일이>는 1970년 11월 서울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를 다룬 작품으로,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2020년 개봉이 목표다. 4월 말 현재 1만 7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기부에 나섰고, 목표액인 1억 원을 상회하며 펀딩에 성공했다.



<파업전야>가 남긴 것


<파업전야>는 노동자계급의 주체적인 투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한국영화사에 빼앗길 수 없는 지위를 획득했다. 이후 상영 투쟁과 헌법소원 등을 통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의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모색했고,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면서 영화가 다룰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 이 영화를 보며 현재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그 본질적인 착취와 억압의 구조가 바뀌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내년 개봉예정인 <태일이>가 더욱 많은 대중과 만나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