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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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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협약, 

'선 입법'이 아니라 

'선 비준'하라!


김석┃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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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었다. 수차례에 걸쳐 정부 정책 방향으로 확인했던 바였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 공약 어디에도 비준을 위해 이른바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공약 어디에도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도, ILO 핵심협약의 취지도, 노동기본권 강화였다. 노동기본권 강화야말로, 국제기준에 맞는 노동기본권 보장이야말로 공약의 취지였고, 대통령과 정부의 약속이었고, 지난 수십 년간 묵혀온 한국 정부의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이었다.


1991년 ILO에 가입하면서, 또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했던 약속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노동 관계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수십 차례에 걸친 ILO의 권고도, OECD 특별감시 절차를 통한 압박도 무위였다. 촛불 항쟁이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약속했다.



무책임한 ‘선 입법-후 비준’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도한 현실은 어떤가? 대통령과 정부는 공약 실현, 정책 방향 구현을 소위 ‘사회적 합의’에 맡기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ILO 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다던 경사노위는 잔뜩 후퇴한 노동법 개정 공익위원 안을 내놓았고, 나아가 노동기본권 강화방안이 아니라 사용자의 요구를 대폭 반영한 안을 내놓았다. 공익위원 안을 반영했다는 집권여당의 국회 환노위 간사 한정애 의원의 노동법 개정안에는 특수고용 노동자 노조할 권리는 쏙 빼놓은 채, 도리어 노조 활동 제약 조항이 포함됐다.


한정애 안은 “ILO 협약 비준을 통해 결사의 자유에 관한 보편적인 국제노동기준이 노사관계 법‧제도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발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노조 활동을 후퇴시키는 내용이 담겼다.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철회는 쏙 들어갔고, 해고자의 조합원‧임원 자격제한도 유지한다. 또 기업별 종사자가 아닌 초기업단위 노조 간부의 노동조합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법안에 들어있다. 이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기업의 종사자’가 아니라서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다. 초기업단위 산별노조 활동도 사실상 봉쇄된다.


한정애가 발의한 교원‧공무원 노조법 개정안도 문제다. 교원의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법안을 통해 자주적 단체교섭권을 박탈하고 있다. 무원노조법 개정안은 어떤가. 직급에 관계없이 노조 가입을 허용하면서도, 지휘 감독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공무원의 업무를 총괄하는 공무원은 가입을 극히 제한한다. 이는 가입 제한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ILO 협약을 위배하는 것이다.


정부는 ‘선 입법-후 비준’을 주장한다. ILO 핵심협약이 현행 노동법과 충돌하기 때문에 노동법 개정이 이뤄져야 ILO 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는 것이고, 국회의 동의는 비준 전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으로 사실상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 동의와 역할이 필수적인 것은 맞지만, 선비준이 불가능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국회에 비준을 요청하고, 국회 통과 후 비준서를 ILO에 등록하고, 이후 관련법을 그에 맞게 개정하면 된다. 이미 1949년 영국, 1957년 서독처럼 ‘선 비준-후 입법’의 선례도 있고, ILO 협약 자체가 이를 열어놓고 있다. 실제 ILO 협약은 비준 후 1년이 지나 효력이 발생하게 되어 있고, 정부와 국회는 그때까지 관련법을 개정하면 된다. 정부의 ‘선 입법-후 비준’ 주장은 국회 핑계 대느라, 사용자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노동기본권을 파괴하는 경사노위 공익위원 안


정부의 무책임과 해태 속에, ILO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을 논의한다는 경사노위는 노조파괴 법안을 논의했고, 공익위원들은 그 내용을 상당수 반영한 공익위원 합의안을 제출했다.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4월 15일 발표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방향”을 보자.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조정 △해고자-실업자-공무원-교원의 노조 가입 및 활동 인정 △노조 아님 통보 삭제 △업무방해죄 정비 등을 담았다. 그러나 동시에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정비(처벌조항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 연장 △단체행동 시 직장점거 규제 △쟁의 기간에 파견 노동을 제외한 대체 고용 허용 등의 노조파괴 안을 같이 제출했다. 당연히 보장해야 할 노동기본권을, 자본의 이익을 위한 개악과 교환하는 방식을 내놓은 것이다. ILO 협약 비준을 빌미로 그저 사용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일 뿐이다.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은 ‘균형과 합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과 합리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노동기본권 강화를 이야기하고, 이를 위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제기한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대통령 공약도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기본권 보장’이었다. 아니, 당초에 노동법 자체가 헌법으로 보장한 노동3권의 구체적 실현 방안을 규정한 것일진대, 왜 사용자의 권한을 지켜주는 방안이 파고든단 말인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다는 그 단순한 구절 하나로 자본가들은 수조 원의 비용 절감(!)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단체행동권에 있어서 “직장점거 규제”라는 표현으로 파업 없는 일터, 파업 노동자가 사라진 일터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보장방안일 뿐인 교원과 공무원 노동자의 결사권을 약간 더 강화한 공익위원 안에 대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자유한국당 김학용)이라는 자는 이조차 맹비난하면서 “ILO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아예 ‘뒤집힌 운동장’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고 짖어댄다. 그리고 집권여당의 환노위 간사는 국제사회가 수차례에 걸쳐 개정을 권고한 공무원‧교원노조 특별법 등을 들어, ‘노동기본권이 충분히 제한되고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는 투로 다독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 ILO 협약 비준은 이제 노동법 개악으로,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대항권’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공익위원 안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이것이 정부의 ‘선 입법-후 비준’ 주장이 본질적으로 함의하는 바다. 이는 정부가 비준을 위해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소위 사회적 합의 뒤에 숨어버린 결과다. 노동기본권 보장 범위는 제한하고, 사용자의 이익은 확대하려는 정부의 친자본 노동정책의 귀결이다.



노동 악법 철폐, ILO 협약 비준, 노동3권 완전 쟁취


처음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수십 년 묵은 한국 정부의 해묵은 숙제를 경사노위의 합의로 실현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 끼운 단추였다. 아니,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본질과 어울리는 방향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했던바, 경사노위는 ‘유연 안정성’을 위해 ‘대화와 타협, 양보와 고통 분담’을 논의하는 자리 아니었던가? 결국 경사노위의 이러한 논의는 정부의 친자본 드라이브를 ‘사회적 합의’로, 공익위원 안으로 포장하는 자리였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식으로 호랑이가 협박하는 자리였을 뿐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결사의 자유 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한 노동기본권 강화라는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비준을 위한 조치에 즉각 나서야 한다. 사용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노동법 개악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기준에 맞는 노동권 보장을 위한 협약 비준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면서, 이를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 사용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선 노동법 개정, 후 ILO 협약 비준’은 그야말로 사슴을 일컬어 말이라 하는 억지일 뿐이다.


그러나 친자본 반노동 드라이브를 노골화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스스로 나설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든 결사의 자유 ILO 핵심협약 비준이 정치적‧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협약 비준과 이를 매개로 한 노동법 개정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어떤 협약 비준, 어떤 노동법 개정이 되게 할 것인가? 지난 수십년간 묵은 투쟁, ILO 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 투쟁, 민주노조 운동의 역량 결집과 투쟁 집중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 노동 악법 철폐, ILO 협약 비준, 노동3권 완전 쟁취의 투쟁 전선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