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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1.04 19:15

탄력근로제, 자회사, 민간위탁까지…

총체적 난국 서해선, 

노동자들이 일어섰다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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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9일 서해선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정문성 지부장은 삭발로 결의를 보였다. [사진: 궤도협의회]



정부‧여당과 보수야당은 탄력근로제를 ‘비쟁점 민생법안’이라고 부른다. 그들 사이에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이견이 없다(단지 그 기간을 얼마나 더 늘릴 것이냐를 두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민생’이라는 이름을 씌운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민’은 ‘민중’의 ‘민’이 아니라 ‘민영화’ 같은 말에 붙는 게 어울리는 ‘민’이다. 즉, 노동자나 평범한 시민의 이해가 아니라, 자본과 사용자의 이익을 가리킨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바로 수도권 전철 서해선이다(안산 원시동과 부천 소사동을 연결해 소사원시선이라고도 부른다). 서해선 노동자들은 본인들이 합의한 적도 없는 탄력근로제를 영문도 모른 채 적용받으며 임금을 체불당했고, 딱 최저임금에 맞춘 기본급(약 175만 원)을 받아 전국의 철도‧지하철 가운데 최하의 임금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적용 시 단위기간(현행 3개월) 내 평균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맞추면, 사측은 특정 주간에 일을 더 시키고도 연장노동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임금은 떼이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꼴이다.


근로기준법은 탄력근로제 도입 시“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해선을 운영하는 “소사원시운영()”은 지난 2월 결성된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서해선지부)과 탄력근로제에 관한 어떤 합의도 한 바 없다. 그런데도 멋대로 탄력근로제를 도입해 강행하면서 노동자들의 연장수당을 갈취해왔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체불된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고 행정당국 역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기어이 사측은 이조차 무시해버렸다. 이에 노동자들이 액수로 3억 원 가까운 임금 체불을 고발하면서, 최근 소사원시운영() 사장은 검찰로 송치됐다.


하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저임금 속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 많은 동료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났고, 2018년 6월 개통한 서해선은 불과 1년 만에 30%에 달하는 이직률을 기록했다. 이러다 보니 열차 운행에 필요한 숙련 노동자 양성은 고사하고 예비인원으로 빈자리를 그때그때 채워 넣는 실정이다.



철도에도 ‘다단계 민간위탁’


참다못한 서해선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 1년이 채 안 된 지금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10월 29일). 저임금에 임금체불, 게다가 인력은 서울지하철 대비 km당 1/8 정도밖에 되지 않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당연히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불만이었다. 서해선지부의 파업 투쟁 요구안도 안전인력 충원, 임금체계 개편, 숙련노동자 양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 그리고 근로기준법 준수다.


그런데 서해선이 이렇게 총체적 난국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은 이 나라 공공부문에 뿌리내린 고질적인 병폐, 즉 ‘자회사’와 ‘민간위탁’ 때문이다. 이는 외주화‧민영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일단, 서해선은 민간투자사업으로 건설됐다. 농협은행을 대주주로 대우건설‧현대건설‧한화건설 등 민간자본이 참여해 “이레일”이라는 특수목적법인을 만들어 사업권을 따낸 것이다. 그리고 이 민간자본이 계약에 따라 20년간 철도 운영까지 위탁받아 수행하면서 이익을 가져간다. 그런데 “이레일”은 철도 운영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기에, 철도 운영 자체를 다시 위탁했다. 이 다단계 위탁을 수주한 게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였다.


문제는 이조차 서울교통공사가 직접 수행하는 게 아니라 “소사원시운영”이라는 자회사(지분 100%를 서울교통공사가 보유)를 따로 만들어 맡았다는 점이다. 시행사인 민간자본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최저가 입찰을 써낸 서울교통공사에 서해선 운영을 맡기고, 그 서울교통공사는 입찰가 내에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 자회사를 설립했으니, 이 다단계 구조의 가장 밑에 있는 서해선 노동자들은 최대한으로 쥐어짜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일은 많이 시키면서도 임금은 적게 주려니, 탄력근로제를 강행한 것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이 ‘최저비용’ 체제에서는 앞서 언급했듯 인력도 터무니없이 적고, 12개 역사 가운데 절반가량은 역무원 1명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으며, 스크린도어 수리 등 안전‧설비 관련 업무도 2인 1조 근무가 어렵다. 일하는 노동자도, 이용하는 시민도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서해선지부 정문성 지부장이 <변혁정치>와의 인터뷰(88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민간시행사 “이레일”이 서해선 사업으로 가져가는 이익은 실시협약에 따라 향후 20년간 약 2조 5천억 원으로, 초기 투자금 1조 5천억 원을 빼면 연간 500억 원의 이윤을 남긴다. 여기에 공기업이라는 서울교통공사는 다단계 위탁의 중간에 끼어들어 최저가 입찰에다 자회사를 통한 운영으로 비용은 최소화한 채 위탁운영 실적만 쌓는다. 노동자의 생계와 시민의 안전을 갉아먹으며 민간자본 돈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다. 지금 서해선이라는 사업장 하나에 이 나라 공공부문 적폐와 노동 적폐가 응축돼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제 서해선 노동자들이 신생노조로 겪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당하지 않기 위해 파업으로 일어났다. 이들의 너무나도 절박하고 정당한 요구를 적극 지지하면서, 더 이상 다단계 민간위탁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철도‧지하철의 직영화‧공영화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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