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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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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 이후 3년, 

전경련 부활이 말하는 것


백종성┃조직‧투쟁연대위원장



전경련 부활 조짐


8월 20일, 민주당은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정책간담회를 진행했다. 9월 25일, 민주당은 다시 전경련을 찾아 ‘주요 기업 현안간담회’를 진행했다. 불과 3년 전, 해체대상으로 전 국민적 지탄을 받던 전경련이 민주당 정책협의 파트너로 격상하고 있는 것이다.


미르-K스포츠 재단 800여억 원 모금,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어버이 연합’ 등 극우단체 활동자금 68억 원 지원, ‘차떼기’로 유명한 2002년 불법 대선자금 823억 원 한나라당 지원 사건, 1997년 15대 대선 불법 정치자금 166억 원 모금 사건 등 수많은 재벌 범죄를 저지른 전경련이 촛불항쟁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문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해체대상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꼴로 간담회를 열었다. 정권이 약속한 ‘재벌개혁’은 완전히 실종된 반면, 이재용과 정의선 등 재벌총수는 대통령의 감사까지 받았다. 적폐청산을 약속한 정부와 여당이 적폐 중 적폐 재벌체제를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이 획책한 노동탄압과 싸워온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은 물론, ‘공정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유주의 진영도 우려가 많다.



전경련이 드러내는 한국 자본주의의 단면


애초, 전경련은 그 등장 자체가 문제다.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은 1년 전 4·19 혁명 당시 민중의 요구인 '부정축재자 처벌'로 권력의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경제적 불평등은 4·19 혁명 당시 민중을 거리로 이끈 중요 원인이었고, 민중은 자본가들의 부정축재에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1년 5월 28일, 박정희 정권은 “부정축재처리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자본가 12명을 탈세와 부정축재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이 재벌 총수들은 잠시 후 모두 풀려난다. 자본가들은 박정희 정권 주도 경제개발에 협조하고, 정권은 탈세와 부정축재를 처벌하지 않는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석방된 부정축재자 12명은 8월 16일 “한국경제인협회”를 구성해 정부와 창구를 만들고, 그 초대 회장은 삼성 이병철이 맡았다. 이 한국경제인협회가 1968년 개명해 오늘에 이르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즉 전경련의 전신이다. ‘부정축재자 처벌’이라는 4·19 혁명 민중의 요구가 5·16 쿠데타로 유산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전경련인 셈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1년 10월 부정축재처리법을 개정해 부정축재 추징금 인하와 대규모 공장 건설을 위한 정부 금융지원을 결정한다. 부정축재자들이 처벌받기는커녕 국가적 지원이라는 특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해방 이후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자본가 집단이 ‘적산불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특혜로 형성되고, 이승만 정권 몰락 후에도 처벌되기는커녕 국가 주도 산업화의 수혜자이자 주역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 과정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사다. 한국 자본주의는 그 형성과 발전의 전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노골적 특혜와 비호를 동반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경련은 한국 자본주의의 상징적 존재다.



전경련, 재벌 민원을 법안과 정책으로


전경련이 저지르고 대행해온 범죄는 그 자체로 문제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온갖 재벌 범죄가 일종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벌 범죄는 재벌체제와 재벌체제를 대리하는 전경련 기본 활동의 부산물일 뿐이다.


현행법상 범죄로 드러나거나 처벌받지 않더라도, 뇌물을 공여하거나 비리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전경련을 포함한 자본가 이익단체는 항상 국가 정책을 만들고 고쳐왔다. “국가란 단지 정부의 장치일 뿐만 아니라 사적인 헤게모니 장치이기도 하다”라는 이탈리아의 혁명가 그람시의 말마따나, 자본가 계급의 조직된 힘과 그 일부로서의 자본가 이익단체는 사적 부분임에도 공적 권력을 행사한다. 명목상 입법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전경련을 포함한 자본가 단체들은 국가 정책을 좌우해 왔다. 그들의 존재 목적은 물론 더 많은 이윤 축적을 위한 제도와 법령의 구축이다. 자본의 ‘민원’을 ‘법안’으로 만드는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다.


일례로 박근혜 정권이 노사정 합의라는 허울을 씌워 추진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등 노동개악 입법은 전경련의 <2014 규제개혁 종합건의>에 고스란히 담긴 재벌 민원사항이었다. ‘정당한 해고 사유 명확화’(일반해고제, 저성과자 해고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근로자 동의 의무 완화’ 등을 담은 전경련의 ‘종합건의’는 박근혜 정권 당시 노동개악의 핵심 내용으로 부상한다. 2014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114개 ‘규제 기요틴 과제’ 역시 ‘종합건의’와 대동소이했다.


친자본·친시장 이데올로기 유포 역시 이들의 기능이다. 이들은 현 교과서가 정부 개입을 당연시하는 등 반기업적이고, ‘정주영과 이병철을 전태일만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대안교과서’를 펴내 학교와 군대 등에 보급하기도 했다. 무늬만 독립재단인 자유경제원(현 자유기업원)을 사실상 계열사로 운영하며 친기업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것 역시 이들의 역할이다. 이런 활동이 ‘어버이 연합’ 자금 지원처럼 불법인 것은 아니나, 노동기본권 억압과 한국 사회 우경화를 의도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모든 활동비용은 전경련 회비, 즉 전경련 소속 기업의 이윤에서 나온다. 노동자가 만들어낸 이윤이 ‘전경련 회비’ 명목으로 납부되고, 그 돈이 노동기본권 억압에 사용되는 것이다. 재벌총수가 한데 모여 국가적 특혜를 획득할 방안을 모의하는 데에, ‘어버이연합’ 등 노동자 투쟁을 진압하는 ‘용병’을 동원하는 데,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짤 법안을 성안하고 추진하는 비용으로 기업 공금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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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변백선)]



제2, 제3의 국정농단은 지금도 진행 중


이들은 국가권력에게 항상 모종의 ‘건의’를 내놓으며, 그 과정은 때로 크고 작은 범죄를 동반한다. 국정농단 사태는 정부가 자본가들의 민원 해결기구에 불과했다는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였다. 그러나 자본가 권력이 존재하는 한 제2, 제3의 국정농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진다. 전경련은 그 ‘농단’의 한 도구다. 물론, 자본가들에게 굳이 그 도구가 전경련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대한상공회의소이건, 한국경영자총협회건, 중소기업중앙회건 말이다. 또한, 통상 ‘정경유착’이라 불리는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촛불항쟁 과정은 형식적 민주주의 회복을 넘어서지 못했고, 촛불 이후에도 노동자 민중은 정세 중심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바뀐 것이라곤 정치권력의 주인일 뿐인 현 상황이다. 10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4단체장과 청와대에서 비공개 오찬을 열어 탄력근로제 확대를 약속했고, 4일 뒤 국무회의에서 ‘탄력근로제 등 주 52시간노동제 보완입법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며 “당정협의와 대국회 설득 등을 통해 조속히 입법할 것”을 주문했다. 10월 10일에는 삼성전자 아산공장에서 이재용을 만나 “감사한다”고 말했고, 10월 15일에는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정의선을 만나 “현대차에 박수를 보낸다”고 치하했다. 국정농단 범죄자 이재용과 무려 9차례 만나 환담하고, 일개 자동차회사의 산업전략인 ‘수소경제’를 국가시책으로 삼는 것이 촛불 이후 3년, 대한민국의 현재다.


지난 10월 25일, 이재용 파기환송심 1차 공판에서 판사는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1993년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낯 뜨거운 덕담까지 덧붙였다. 촛불 이후 3년, 한국 사회는 대체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항쟁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자본 통제를 위한 당면 과제로서 주장하고 실천해온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범죄재벌 구속처벌과 경영권 박탈, 범죄수익 환수투쟁의 앞길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즉 촛불항쟁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동자 민중진영에게 재벌체제 청산투쟁은 자기 과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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