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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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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한주(워커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故 김용균 어머니)

“어두운 삶의 현장들을 바꾸기 위해,

김용균재단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 1년 전만 해도 ‘동지’라는 호칭은 북한에서나 어울릴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톨게이트 비정규직, 그리고 싸우는 노동자들을 가리켜 스스럼없이 ‘동지’라고 부른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그녀는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일터,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며 ‘함께 손을 잡자’고 투쟁의 현장을 찾는 활동가가 됐다. 10월 26일 출범한 “김용균재단” 초대 이사장이 된 김미숙 동지를 출범대회 사흘 전 <변혁정치>가 만났다.



Q: 故 김용균 노동자가 떠난 지 10달이 지났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삶의 변화를 겪으셨을 텐데. 지난 10달간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게 있다면 무엇일까.


그 무엇보다 내 생각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그저 가정만 잘 꾸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아이가 사고로 떠난 후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듣고 직접 현실을 보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들에 눈을 뜨게 됐다.


가령, 회사 안에서 산재를 당했는데 경찰이나 노동부가 노동자들 편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기업 편에 서서 우리를 보더라.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을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서 일하게 만들어놓고, 사고가 나면 도리어 피해를 입은 노동자 책임으로 몰아버린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다치고 죽어간다는 걸 알게 됐다. 충격이었다. 기업과 정부는 이 수많은 죽음을 모르쇠로 방치하고 있었다.


이제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 용균이 투쟁이 크게 일어난 것처럼, 안전하지 않은 일터만큼은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려고 한다.



비정규직이 노비도 아닌데

목숨값이 달랐다


Q: 지난 10달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해 곳곳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계속 만나러 다니셨다. 김용균 노동자의 장례를 치른 이후에도 다른 투쟁의 현장을 찾게 된 계기나 소회를 말씀해주신다면?


삼성 해고자 김용희 동지와 톨게이트 비정규직 동지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동지들처럼 부당한 현실에 맞서 자기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동지들을 봤다. 저 사람들도 그만큼 절실하다는 걸 느꼈다. 답답한 현실이지만, 본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걸 보며,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동지들의 힘겹고 피 끓는 투쟁에 마음으로 연대하고 싶었다.


투쟁 현장에 가서 그 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봤다. 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라’고, ‘불법파견을 처벌하라’고 요구하는데, 기업들은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더라. 반면 평범한 노동자들은 힘이 없으니 사소한 거라도 처벌을 다 받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그저 옛말인 줄 알았는데, 지금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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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故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원청인 서부발전이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는 한편 정부‧여당도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부발전은 스스로 작성한 “안전기본계획”이라는 문서에서 ‘2014년부터 작년까지 하청업체 산업재해 사망자가 없다’며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쏙 빼놓았다. 게다가 실제로는 월급 220만 원가량을 받았던 김용균 노동자의 몫으로 서부발전이 하청업체에 지급했던 돈은 두 배가 넘는 520만 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사측이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산재 사망률 수치를 낮추려고 일부러 빼놓은 것 아닌가 생각도 들고 많이 분노스럽다.


아직도 현장은 바뀐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리는 직접고용을 요구했는데, 여전히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이뤄지지 않은 채 자회사 같은 얘기만 나오고 있다. 2인 1조 작업 요구에 대해서도, 인원을 충원하지 않다 보니 엉터리로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은 계속 위험한 상태로 일하고 있다.


임금 착취도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가 원청으로부터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이러니 입사한 지 3개월도 채 안 됐던 용균이가 자기 원래 임금이 얼마인지 어떻게 알았겠나. 원청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하청을 두고, 하청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이익률을 0%로 써낼 정도로 가격을 후려쳐 수주를 받는다. 그러고서는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돈을 절반 이상 착취한 거다. 원청과 노동자 중간에 대체 왜 하청이 있어야 하나. 완전히 잘못된 구조다.


게다가 사측이 내부 자료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신분 차이에 따라 산재 사고 시 목숨값에 차이를 뒀다는 것도 드러났다. 옛날에나 신분 차별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신분에 따라 목숨에 서로 다른 점수가 매겨져 있다는 건 여기서 처음 알았다. 노동자가 하인도 아니고 노비도 아닌데. 표현을 하기도 어렵지만, 정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누더기가 된 ‘김용균 법’,

거짓말이 된 대통령의 약속


Q: 지난 12월, ‘김용균 법’으로도 불린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싸우셨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정부와 재계는 일본과의 무역 갈등을 빌미로 산안법은 물론이고 일터 화학물질 관련 법령(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 규제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 실정인데.


재계는 작년 산안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도 그랬지만, 일터 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데 계속 반대했다. 일본과의 무역 갈등은 그들에게 좋은 핑곗거리일 것이다. 기업들이 어떻게든 규제를 완화시켜 자신들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이유를 갖다 붙인다고밖엔 생각이 안 든다.


사실 작년에 통과시킨 산안법 개정안도 이후 시행령을 손보면서 누더기가 됐다. 원래 취지가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것이었는데, 용균이 동료들도, 구의역 김 군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만연하고, 우리가 정말 원했던 산재 기업 처벌 강화도 유야무야됐다.


예를 들어 지금 산재 사고가 나면 기업에 책임을 물어 처벌하더라도 벌금액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 별 제재 없이 벌금만 내면 되는 거다.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다. 사람이 죽으면 정말 기업이 흔들릴 만큼 강하게 처벌해야 일터 안전을 비로소 현실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김용균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중 하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용균의 동료인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최근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드러나듯 정부는 한사코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 방안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끝내 비정규직을 포기하지 않고 고집하는 문재인 정부에 한 말씀 해주신다면?


민영화, 외주화가 이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그러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그만큼 많은 것들을 건드려야 하고, 이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바꾸지 않는다면 더 혹독한 미래가 다가올 거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약속을 떠올려보자.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고, 일터의 위험을 없애겠다며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말들이 거의 다 거짓말처럼 돼 버리고 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그걸 지켜주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말만 하지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용균이 죽었을 때 내놓은 합의안도 지금 거의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을 주고 있는데,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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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재단은 싸우는 조직이다


Q: 10월 26일 김용균재단이 창립총회를 개최한다. 재단을 설립하는 취지와 목표,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용균이 사고 났을 때 경찰이나 노동부나 우리 편에 서서 싸워주지 않았다. 사측이나 기득권 세력은 용균이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고 누명을 씌웠다. 실수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장을 만들어놓고 거기 들어가서 일하라고 하면, 백번 양보한다 해도 사람이 어떻게 실수를 안 할 수가 있나. 하다못해 삽으로 푸다 보면 옷이 걸려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거의 매일 노동자가 떨어져 죽고, 조선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발전소든 어디든, 대부분 안전하지 않아서 죽어가고 있다. 기업들에 엄격한 안전대책을 강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김용균재단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뭉치고 연대해서, 싸우는 조직으로 만들려고 한다. 사고가 나면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조직 말이다. 예를 들어 한화 대전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났을 때 우리가 찾아가서 노동자들과 함께 기자회견도 열고 했는데, 결국 합의안을 이끌어내는 걸 보면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 한편, 비정규직 철폐 운동도 중요한 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용균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나자고 요구하는 피켓도 들지 않았나.


그리고 산재 피해 유가족들이 “다시는”이라는 모임을 결성해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다시는” 가족들과 함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업들을 펼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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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한주(워커스)]



Q: 끝으로, <변혁정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은 제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 나라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싸우며 이 어두운 삶의 현장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이 조직이 작아져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김용균재단에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연대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우리가 함께 큰 힘이 돼서 부당한 현실을 물리칠 수 있도록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 인터뷰이주용 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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