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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이제 독 안에 든 쥐?

본 판단에 최저임금 맡기는 노동개악이 온다

 

고근형학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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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노동개악 시계가 빠르게 돌아간다. 지난 122일 열린 새해 첫 당정청 협의회에서 정부여당은 2월 임시국회 중점 법안으로 최저임금·탄력근로제 개편을 꼽았다. 정부여당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3“1월 내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않으면 국회가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든지 말든지 노동개악을 강행하겠다는 속내다.

탄력근로제 개악의 쟁점은 <변혁정치>에서 이미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최저임금 개악에는 새로운 쟁점이 생겼다. 지난해 1222, 최저임금 제도개선위원회는 최저임금위원회 내에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신설)를 두어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정하고, 결정위원회가 그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안을 결정하도록 이원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 구간설정위원회가 설정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최저임금 상·하한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라는 뜻이다.

 

옴짝달싹 못하는 최저임금

해를 넘긴 17, 고용노동부도 보도자료를 내고 “30년 만에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꾼다며 최저임금 개악의사를 밝혔다. 해당 보도자료에는 최저임금 개악의 취지가 자세히 적혀 있다. 노동부는 그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정할 때, 노사 대립이 극심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됨에 따라, “결정체계를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최저임금 구간을 설정할 전문가위원회(구간신설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다. 전문가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상하한을 미리 정할 것이니 소모적인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최저임금 인상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구간의 기준은 무엇일까? 노동부는 근로자의 생활보장과 고용·경제 상황을 보다 균형 있게 고려한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만들겠다고 한다.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노동자의 생활보장을 고려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갑자기 고용·경제 상황을 고려한다니 무슨 속내일까. 노동부는 고용·경제 상황과 관련하여 고용수준,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한다고 말한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기업의 지불능력을 포함시킨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자신감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앞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최저임금 인상은 상한선이 주어진다. 그 상한선은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하는 전문가들이 설정한다. 이제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위원회는 이 상한선 내에서 치고받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못해 그 구간 어느 점에서 결정을 내리면 된다. 노동자민중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하는 전문가들의 상한선을 넘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이번 2월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최저임금 개악의 골자다.

 

합리적인(?) 최저임금 결정기준

노동부는 이번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에 줄곧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수사를 붙이고 있다. 물론 그 실체는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하겠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최저임금이란 게 무엇인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받아야 하는 임금이 최저임금이다. , 노동자의 생계비에 근거해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그 최저임금을 바탕으로 기업이 사업계획을 세워야 정상이다. 그런데 노동부는 반대로 기업의 지불능력을 바탕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 말은 기업의 재무상태와 사업계획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 판단에 따라서 최저임금을 조정하라는 뜻이다. , 자본가의 마음대로 최저임금 결정근거를 변주할 수 있게 된다.

이 결정근거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본가들에게는 철저히 합리적인 결정구조일 것이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최저임금을 제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구조다. 자본가의 판단에 따라 인간다운 생활을 박탈당할 수 있는 최저임금 결정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개편안이라고 소개한 노동부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야말로 친재벌적인 노동부, 계급적인 최저임금 개악이 아닐 수 없다.

 

6월은 이제 너무 늦다

201820대 재벌의 영업이익은 128조로 집계된다. 1년 내내 경제가 어렵다고 했지만 재벌의 곳간은 차고 넘친다. 물론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할 때 재벌의 영업이익이라든가 사내유보금 같은 것은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시계를 1년만 뒤로 돌려보자. 촛불항쟁의 성과로 최저임금이 1년 만에 16.4% 올랐던 지난해,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하기 어렵다며 온갖 아우성을 쳤다. 그 결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연장노동수당 중복할증 폐기 같은 노동개악이 몰아닥쳤다. 2017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이 883, 20대 기업 영업이익은 124조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본가들의 재무상태는 모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도 남는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게 사실 자본가들의 의견 따위를 구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단지 최저임금을 올려주기 싫기 때문에 노사정이 모인 최저임금위원회를 만들었던 것이고,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구간설정위원회를 만들어 최저임금을 포박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정부여당이 2월 내 최저임금과 탄력근로제 개악을 관철시키겠다고 나섰다. 만약 이 개악이 통과된다면, 이제 6~7월 최저임금 투쟁은 너무 늦은 투쟁이다. 이미 그 전에 구간설정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의 상한선을 정해버리면 6~7월에는 아무리 열심히 투쟁해봐야 최저임금이 그 상한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노린 것도 바로 이것이다. 최저임금을 선제적으로 자본가들의 올가미에 가둬버리겠다는 것. 노동자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최저임금을 인상하지 못하게 봉쇄하겠다는 것.

정부여당이 본색을 드러냈으니 노동운동의 대응도 긴박해져야 한다. 2월 노동개악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한 투쟁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임금이 얼마인지 선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가 어떻게 생겼든,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얼마나 사회적 파장을 갖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2017최저임금 1만 원을 구호로 사회적 흐름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임금이 얼마여야 하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모든 노동자의 생활임금 쟁취가 충분히 가능함을, 재벌의 곳간에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이 쌓여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6~7월 반짝 최저임금위원회를 둘러싸고 치고받던 관성을 벗어나자는 것이다. 2월 최저임금 개악저지 투쟁을 2019년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출발로 삼고 상반기 내내 우리의 요구를 밀고 나가야 한다. 사회적 대화 따위에 얽매여있기에는, 노동자민중은 너무나 궁핍하고 시간은 너무나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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