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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소소하지만 확실한 철거

 

송준호기관지위원회

 


최근 서울시가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오래된 상가를 철거하고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하려고 해 논란이다. 이 일대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기술임·장인와 젊은 메이커·예술가·활동가가 연대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이 사건을 기만적 전시행정으로 규정하고 재개발 구역 해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세입자, 소상공인, 심지어 지주와 건물주까지 나서 재개발을 반대해도, 야밤까지 이어지는 철거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다.

 

숨어있던 오래된 미래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시기를 거치며 원도심의 변두리에 생성된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상권은 그간 서울의 산업근간을 떠받치는 기둥역할을 해왔다. “청계천에서는 탱크,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런 상인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회화, 조소, 설치미술, 키네틱아츠, 디자인, 전자공학, 음향 등 고전과 현대, 예술과 산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재료와 조형기술을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은 이 일대가 유일하다.

또한 장인의 경지에 이른 기술인의 노하우는 길 위의 스승1과 같은 모습으로 이제 막 창작활동을 시작한 예술가나 메이커, 젊은 기술인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설계도면만 봐도 척척 물건을 만들고, 다른 곳에서 거절당한 돈 안 되는예술작품도 묵묵히 받아주던 메이커들의 고향2이 바로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상가다. 공구·인쇄·조명·철공·음향 가게들이 끊임없이 호흡하고 결합하면서 만든 제조업·문화 생태계는 유기적인 창작 인프라를 통해 지금도 젊은 예술인들의 문화예술 창작환경을 지탱하고 있다


대권의 날갯짓에 휩쓸리는 생태계

서울시조차 생활유산이라 정의한 오래된 가게(老鋪)를 철거하려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대규모의 개발사업을 통해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서울시는 2014다시·세운프로젝트를 도시재생사업이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50년 이상 제자리를 지키던 상인·기술자가 발돋움하는 청년예술가, 창업자, 메이커들와 만나는 ‘‘메이커시티 세운: 도심 창의제조산업의 혁신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한다.

비슷한 시기, 박 시장은 낙후된 고가도로를 공원화한 서울로7017’ 프로젝트를 공식화하고 국제현상공모에 나선다. 두 프로젝트가 완성된 시점은 공교롭게도 2017년으로,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한창이었을 대선정국의 턱밑이었다. ‘뉴타운 재개발’, ‘청계천 복원사업을 치적 삼아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이명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겹쳐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도시재생이라는 달콤한 거짓말

그가 되뇌는 말과 달리 박 시장의 도시재생은 또 다른 도시재개발에 불과하다. 그의 재임 중 거주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된 재개발사업만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장위뉴타운, 옥바라지 골목(무악동), 백사마을(중계 본동), 아현동 포차거리, 문래창작촌, 문화비축기지, 돈의문 박물관마을 등 도시재생을 앞세운 재개발에 원주민이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그중 가장 최근의 사례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한 번에 쫓아내면 재개발’, 한명씩 쫓아내면 도시재생’”3이라는 비아냥의 목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한편, 서울시는 예상치 못한 반발에 한발 물러난 분위기다. 박 시장은 11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재개발 전면재검토와 새로운 대안모색을 공언했지만, 지난 연말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강제철거는 청계천-을지로 일대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가하고 있다. 철거가 거의 다 진행된 3-1, 4, 5 구역(입정동)은 기존 400여개의 업체가 이전 또는 폐업한 상태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독립운동가의 생가나 협동조합, 조선시대 유적 등도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역사의 결을 살리는 제조산업문화특구 지정이라는 보존연대의 주장은 서울시가 가장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대안이다.

 

파괴 없는 재생으로

용산참사 10주년을 맞은 올해, 신년벽두부터 들려오는 철거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창조적 파괴는 창작자의 몫이다. 서울시는 역사의 파괴를 멈추고 창조적 재생에 힘써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직권으로 중단했다던 옥바라지 골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전면재검토약속만을 믿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철거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개발세력에 맞선 투쟁이 필요할 때다


1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2차 성명서

2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2차 성명서

3 한번에 쫓아내면 재개발’, 한명씩 쫓아내면 도시재생’”"박원순 시장님, 도시재생이 뭔가요?", 경향신문, 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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