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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건설과 전노협 해산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 전노협 해산대회(아래)와 민주노총 창립대회(위).

(전노협 해산 대의원대회 사진은 변변하게 남은 게 없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영상이 남았을 뿐.) 


전노협 정기대의원대회는 대학에서 주로 열렸다. 사수대가 정문을 지키고 수배상태인 지도부가 몰래 숨어들고 대의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와야 대회가 시작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노협 위원장은 추대 방식으로 선출되었다. 선출이라기보다는 결의를 모으는 과정이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하지만 전노협 제5대 위원장 선거는 1994123일 경선으로 치러졌다. (선거관리규정도 이때 만들어졌다.) 김영대, 이흥석, 양규헌이 후보로 나섰다. 1차 투표에서 대의원 325명 중 양규헌 후보가 151, 이흥석 후보가 100, 김영대 후보가 73표를 받았다. 결선투표에서 172표 대 148표로 양규헌 후보가 당선되었다.

선거 유인물에는 조직발전 전망과 관련한 쟁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지역 유세와 토론 과정에서는 전노협 조직발전 전망과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이견이 드러났다. 전노대 강화를 통한 민주노총 건설이냐, 전노협의 산별노조 건설 추진을 통한 민주노총 건설이냐. 전노협 위원장 선거에서는 후자가 선택되었다. 하지만 선거 이후 대중의 검증을 통해서만 민주적이고 책임 있게 전노협을 운영해 갈 수 있으므로 이러한 과정(선거)을 거쳐 지도력을 구축하자는 취지로 불출마를 선언한 단병호 위원장의 바람과 달리 전노협은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전노협 내부 노선 분화는 가속화되고 김영대 안’, ‘문성현 안으로 불리는 조직발전전망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논쟁의 핵심은 전노협을 해소하고 민주노총 조기 건설산별 토대를 마련하여 민주노총 건설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노협 내의 민주노총 조기 건설 주장은 업종회의의 의견과 만나 민주노조진영의 대세를 형성했다. 전노협은 위원장 선거 결과와 다른 상황을 마주했다. 그리고 1994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준비위원회 결성이 선포된다.

 

노동자의 희망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관심은 민주노총 건설로 집중되고 있었다.

1993년 한국노총과 경총이 대타협으로 임금인상률을 합의한 데 대해 한국노총 산하 조직들은 의무금 납부를 거부했다. 그런데 1994년에도 노경총 합의가 계속되자 전노협과 전노대는 한국노총 탈퇴투쟁을 주도했다. 대규모 노동조합들이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이른바 중간노조군을 형성했다. 한국노총의 기반은 약해졌고 민주노조 기반은 점점 견고해졌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다. 철도 기관사들이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벌이고, 서울과 부산 지하철 노동자들이 임금가이드라인 철폐를 위한 투쟁을 했다. 한국통신에, 철도에 노조 민주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파업만 하면 전투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연행과 구속을 각오해야 했던 전노협 소속 노조 조합원들에게 40만 명 규모의 민주노총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민주노총은 어떤 조직이었을까. 아마 전노협이 담지 못했던 민주노조진영의 과제를 민주노총이 해소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전문적인 정책 생산도 하고, 제조업과 사무직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조합 운동 간의 통일을 강화하고, 신규 노조 가입도 늘리는 조직을 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당당히 맞서 40만 조합원의 연대투쟁을 조직하고 변화되는 시대를 주도하는 운동노선과 활동목표를 세우는 조직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런 바람을 담고 19951111일 민주노총은 출범했다. 민주노총 창립 전국노동자대회에는 7만 명의 노동자가 모였다.

 

전노협 해산

전노협은 123일 해산했다. 244명의 대의원 중 205명이 전노협 해산을 찬성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은 전노협 해산 대의원대회를 <그리운 이름 전노협>이라는 영상으로 담았다. 전노협 창립일인 122일 한내 페이스북에 그 영상의 일부가 올라왔다. 눈물을 참으며 해산대회 사회를 본 박양희 부노협 의장, 해산을 찬성하고도 눈물을 흘리는 대의원들, 전노협 깃발을 접어 가슴에 안은 양규헌 위원장, 연단에 올라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전노협 사무총국 식구들. ‘전노협 세대가 아니면 그날의 정경을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가능하다. ‘희망의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해산하는 조직인데 저들은 왜 그랬을까?’

아마 87년 노동자대투쟁부터 전노협 6년 활동의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희망과 함께 우려되어 그랬을 것이다. ‘전노협을 중심으로 민주노조를 재편할 수는 없었던가. 민주노총 건설을 주도하면서 전노협의 성과를 민주노총에 계승해냈는가. 무엇을 계승했는가. 제조업을 하나로 통일해가며 산별노조를 건설할 수는 없었을까. 전노협을 만들 때는 노동운동단체의 선진 노동자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민주노총이 출범하는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민중연대를 이끌고 지도 구심으로 인정받던 전노협이었는데 그 위상이 왜 변한 것일까. 평등사회, 노동해방을 외치면서도 그 내용을 미처 정립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그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 전노협 해산, 민주노총 건설 24년이 지났다. 지금도 그 아쉬움과 우려는 여전하다.

 

* <이 땅 노동운동사>는 이번 호로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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