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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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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의 유물은 

‘단결 투쟁’이 아니라 ‘경사노위’다


신정욱┃서울



‘경사노위’는 언급조차 할 수 없었던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지난 3개월간 민주노총을 좌초상태에 빠트렸던 경사노위 참가 논쟁이 혹여나 재발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4월 4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시작 전, 대회장에는 묘한 적막이 감돌았다. 이변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경사노위’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68차 대의원대회는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을 결의하며 2시간 만에 끝났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경사노위 참가론’은 꺼지지 않는 불씨 같았다. 지난 1월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실상 경사노위 참가 안이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노총 내부에선 “위원장이 산회를 선언했기 때문에 (조건을 달지 않고 경사노위 참가를 주장했던) 원안은 살아있다”라거나, “차기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에 대해) 현장 발의를 할 것”이라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김명환 위원장의 모호한 태도 역시 이 문제를 쟁점화하는 데 한몫했다. 정기대의원대회 이후 ‘이제는 투쟁해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일경제> 같은 친자본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사노위 참여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일사천리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계속 경사노위에 매달리는 지도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은 깊어졌다. 이는 개악이 코앞에 다가오기 전까지 민주노총 전체에 긴장이 걸리지 않는 중대한 요인이었고, 투쟁 전선이 이완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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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4일 68차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출처: 노동과세계]



역설적으로 우리를 단결시킨 건 노동개악이었다


애초 우려했던 대로 경사노위는 충실하게 자본의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안을 우선적으로 강행 처리하고자 했다.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경총과 한국노총이 야합하면서 이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개악은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미조직‧비정규‧취약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기에, 최소한의 선출 절차도 없었던 경사노위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들마저 반발하며 본회의 참가를 보이콧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정부와 경사노위는 본회의가 무산된 상황에서조차 ‘산하 위원회 합의 사항도 어쨌든 사회적 합의’라고 우기며 탄력근로제 야합안을 국회로 송부했다. 여기에 지난 2월 말 정부가 발표했던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 역시 여당 의원 신창현이 대표발의하면서, 4월 초 국회에서 보수 여야는 이 두 개악안을 강행 처리하고자 시도했다.


국회가 노동개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자, 민주노총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3월 27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기점으로 매일 국회 앞 농성을 이어가며 개악입법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다. 특히 이 개악안을 일차로 처리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가 열린 지난 4월 2~3일, 국회 담장 앞에서 벌인 격렬한 투쟁 와중에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지도집행부 상당수가 경찰에 연행됐다. 300명이라는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연행을 불사하고 한 목소리로 “노동개악 저지”를 외치며 치열하게 싸웠다. 결국 국회는 여야 간 의견 차이(개악이냐, 더 나쁜 개약이냐)를 좁히지 못한 채 안건 처리를 4월 임시국회로 미뤄야만 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승리 공식, ‘단결 투쟁’


지난 수십 년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가 드러낸바, 노동자가 단결해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 비로소 철옹성 같은 정권과 자본을 뛰어넘어 우리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 그러나 경사노위와 ‘사회적 대화’라는 환상이 민주노총을 잠식하는 동안 우리는 단결하지 못했고, 투쟁하지 못했고, 승리하지도 못했다.


비록 늦었지만, 연행을 불사하고 싸운 지도집행부의 투쟁을 보면서 민주노총에 구심점이 생기고 있다. 그건 바로 총파업이다. 4월 4일 임시대의원대회에 모였던 대의원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 민주노총의 발목을 잡아 온 경사노위에 종언을 고하고, 참가 논란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 와중에 적폐 정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국회 앞 투쟁을 빌미로 민주노총을 ‘폭력집단’이라고 매도하는 데 혈안이다. 왜 노동자들이 국회 담장을 무너뜨릴 정도로 분노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경찰은 이에 호응해 50여 명에 대한 줄소환을 예고했다. 전운이 몰려오고 있다. 정부는 노동자에 대한 탄압 수위를 높이면서, 4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노동법 개악을 관철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저들의 개악 너머에는 노동자가 발 디딜 곳도, 숨을 곳도 없다. 남은 것은 하나, ‘단결투쟁’이라는 유구한 승리의 공식을 다시 세우면서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가자! 총파업으로!



* 당시 경사노위 관련 안건을 둘러싸고 ‘불참 / 조건부 불참 / 조건부 참가’ 등 3개의 수정동의안이 나온 바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표결에 임하면서 ‘애초 집행부가 제출한 원안이었던 경사노위 참가를 고집하지 않겠다’며 조건부 참가론에 힘을 실었지만, 결과적으로 세 수정동의안 모두 과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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