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강성 귀족노조’? 

‘악성 경영진’이 문제다


이주용┃기관지위원장



르노삼성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노조가 회사를 망치고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퍼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는 “강성 귀족노조 때문에 르노삼성도 곧 GM 군산공장 신세가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단, 르노삼성 사측과 본사인 프랑스 르노그룹은 확실히 GM 자본이 저지른 수탈과 횡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물량을 줄이겠다’며 노동자들을 협박하는 한편, 막대한 이윤을 본사로 빼돌리는 것까지 똑같다. 반면 ‘강성 귀족노조 때문’이라는 진단은,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쓰러지고 죽어 나갈 때는 ‘모범 노조’라고 치켜세우더니,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일할 수는 없다’고 저항하자 ‘회사 망치는 강성 귀족노조’란다. 1분에 자동차 1대씩 뽑아내도록 팽팽 돌아가는 현장에서,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일하다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 가는 ‘귀족’도 있던가?


사측과 언론은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회사가 어려운데 월급 올려달라고 떼쓰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실상은 정확히 반대다. 사측은 인력감축·외주화·노동강도 상승으로 악착같이 노동자들을 쥐어짜면서,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각종 ‘비용’과 배당금 명목으로 르노 본사에 보낸다. 한국지엠과 GM 본사의 관계에 대해 푸념 섞인 우스갯소리로 ‘한국지엠은 GM 본사의 현금인출기 신세’라고 했었는데, 르노삼성이 딱 그 꼴이다.



현금인출기 신세


지난 2016년, 르노삼성은 3,10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그런데 그해 배당액 역시 3,100억 원이었다. 무려 100% 배당률을 기록한 것인데, 순이익 전부를 고스란히 배당으로 빼갔다는 뜻이다. 2017년에도 르노삼성은 순이익 3,050억 원 가운데 배당으로 2,135억 원(순이익의 70%)을 썼다. 참고로, 르노삼성 주식의 80%는 르노그룹이 쥐고 있다(나머지 약 20%는 삼성카드 지분이다). 돈이 어디로 빠져나가고 있는지는 아주 명확하다.


사실 르노삼성 배당률이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땐 르노그룹이 착해서 그랬을까? 물론, 결코 아니다. 굳이 배당금을 가져가지 않더라도 돈을 빼먹을 수 있는 통로가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 노동자들은 ‘차를 팔면 팔수록 적자인 구조’라고 증언한다. 실제로 르노삼성 회계내역을 보면, 2000년 르노그룹 인수 이래 매출액은 2004년 1조 3천억 원에서 2010년 5조 1,678억 원으로 4배가량이나 늘었지만, 정작 순이익은 2007년(약 2천억 원)까지만 오르더니 2008년부터 폭삭 주저앉았다. 매출액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순이익은 2008년 760억 원, 2009년 800억 원 등 2007년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심지어 2011년에는 5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는데도 무려 3천억 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이 오르는데 적자가 늘어난다는 건 어디론가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자들 월급을 많이 줘서 그랬을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르노삼성 감사보고서를 보면, 매출액 대비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복리후생비까지 합해도 2004년 13.57%에서 2008년 8.7%, 2010년에는 7.0%로 점점 떨어졌다.


돈을 빼간 건 르노 자본이었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2012년 세무조사 결과 국세청은 ‘르노가 부당한 내부거래로 조세를 회피하려 했다’며 1천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부과했다. 부품 구매 등의 과정에서 수입 가격을 부풀리고, 기술사용료나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르노 본사에 갖다 바친 돈만 매년 수천억 원, 2010~2011년 연간에는 무려 1조 원을 넘기기까지 했다. 조세 당국의 세금추징 직후, 르노 본사는 2013년부터 급격히 배당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돈을 뽑아갔다. 그 결과가 바로 배당률 100%라는 진기록이었다.



누가 회사를 망치는가


지난 2012년, 르노삼성은 전체 임직원 5,700명 가운데 1,200명을 구조조정으로 내쫓았다. 무려 20% 이상의 인력감축을 단행했지만, 생산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 2013년 연간 13만 대 수준이던 생산 대수는 2017년에는 27만 대로 2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줄어든 인력은 전혀 늘지 않았고, 사측은 오히려 지속적인 상시 구조조정과 외주화로 노동자들을 옥죄었다. 당연히 노동강도는 수직 상승할 수밖에 없었고,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현재 한 개의 라인에서 7종의 차량을 혼류 생산하는 등 노동자들의 넋을 빼갈 정도로 혹사시키고 있다.


사측과 언론은 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마치 파렴치한 것처럼 악선전을 벌이고 있지만, 르노삼성 노동자들의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매여 있다. 어차피 법정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본급을 올려야할뿐더러, 이런 실정이다 보니 노동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 한편 저들은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침해하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핏대를 세우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측의 일방적 전환배치․외주화․노동강도 상승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지쳐 쓰러지는 상태로 내몰리고 있으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합의를 거치라는 요구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우하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요구에 대한 사측의 응답은 ‘물량을 끊겠다’는 협박이다.


대체 누가 파렴치한이고, 누가 회사를 망치는가? 르노삼성을 좀먹는 것은 ‘강성 귀족노조’가 아니다. 왜 이런 표현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악성 경영진’이야말로 파국의 책임자들인 것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