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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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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과 혁신’, 

어떻게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가


강동진┃사회운동위원장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선택’과 효과


2013년 5월,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뉴욕타임스에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전하며, 자신에게도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위험을 높이는 “BRCA1”이라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방암 발병률이 87%, 난소암 발병률은 50%인 것으로 추정되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고 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경험이 다른 여성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전문가들은 ‘예방적 유방절제술’이 증가할 것이라 예견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 의학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BRCA1 유전자 검사는 65%(약 4,500건) 증가했고, 검사비는 1,350만 달러(16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다만, 미국에서 유방절제술 시행 비율은 안젤리나 졸리의 기고 이전에 10% 수준이었는데, 이후에도 7% 정도에 머무르며 거의 변화가 없었다(이 수술을 ‘예방적 차원’에서 진행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 한계는 있지만).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 유방암학회에 따르면, 연간 BRCA1 검사 건수는 2012년 946건에서 2015년 2,837건으로 늘었다. 졸리가 ‘예방적 수술’을 받은 2013년 이후 약 3배나 증가한 수치다. 유방절제술을 받은 건수는 5배 급증했고, 양측 난소 절제술 건수 역시 4.7배 증가했다. 이른바 ‘안젤리나 졸리 효과’가 한국에서는 뚜렷이 나타났다.


졸리의 ‘선택’을 두고 미국 유전학회는 “암 가족력을 보유한 환자 대상으로 암 진단을 일상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희귀한 암 유전자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알아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논란을 벌였다. ‘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측과,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 검사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 맞섰다.


BRCA1BRCA2 유전자에 나타나는 수천 가지 돌연변이가 여성의 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돌연변이 중 상당수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는 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해당 돌연변이에 대한 연구사례가 불충분해, 그 효과를 통계적으로 확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검사결과는 업체마다 다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서 더 많은 데이터를 누적한 결과 초기 데이터가 단순한 우연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 그 돌연변이는 발암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 것으로 결론날 수도 있다.


모호한 검사결과와 불확실성은 불필요한 수술을 증가시킨다. 그래서 미국의 유전자 전문가들은 “최근 아무 병원이나 유전자 상담 간판을 내걸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누가 진정한 전문가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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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가 초래한 ‘인보사’ 사태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라더니…


지난 3월 31일, “코오롱생명과학”이 개발한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인 “인보사-케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판매 중지 처분을 내렸다. 인보사는 ‘첨단바이오의약품’ 중 하나인 유전자 치료제다. 2017년, 식약처는 이 제품에 대해 ‘세계 최초이자 국내 첫 유전자 치료제’라며 국산 신약 29호로 허가를 내줬다. 당시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인보사를 발판 삼아 글로벌 유전자 치료제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까지 임상시험에서 인보사 투여 대상자는 145명이었고, 판매 후 투여 건수는 올해 2월 말 기준 3,404건이라고 한다. 무릎 연골 부위에 주사하는 인보사는 ‘1회 투여로 최대 3년간 통증을 줄이고 관절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한 번 주사를 맞는 데 드는 비용은 약값과 시술비, 입원비 등 700만 원 안팎이다. 2018년 6월 기준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내 60개 종합병원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인보사는 허가 과정에서조차 연골재생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효능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당시 식약처는 허가를 내줬다. 이번에 판매를 중지한 이유는, 최근 주성분 확인시험 과정에서 허가 당시의 세포성분과는 다른 무허가 세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골세포 성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사람 신장에서 유래한 세포로 드러났다. 이 세포는 종양 유발 가능성 때문에 사람에게 치료제로 사용해선 안 된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2004년 인보사 분석 때에는 연골세포로 판단했지만, 최근 검사법을 적용해보니 다른 세포로 드러난 것’이라며 ‘명찰을 잘못 달아준 것뿐’이라고 변명했다. 식약처는 ‘현재까지 우려할 만한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며 회사 측에 동조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조 기업이 약품의 주요 성분을 구성하는 세포 종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며, 식약처의 심사와 허가는 대단히 허술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무허가 세포를 발견한 것은 유전자 정밀성분STR검사* 덕분인데, 기존에는 회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에 대해선 STR검사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업체들의 비용부담이 커지고, 그만큼 심사기간이 길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식약처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 정부 부처다. 그러나 이번 인보사 사태는 식약처가 자신의 임무를 방기했음을 드러냈다. 제약기업 성장을 위해, 의약품 허가 심사를 ‘제대로’ 하기보다 ‘빠르게’ 해주라고 강조해온 역대 정부 규제 완화와 기업 특혜의 결과다.


식약처의 허술한 심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줄기세포 치료제”다. 현재 시판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 8개 중 4개가 한국산이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은 단 하나의 줄기세포 치료제도 허가하지 않았다. ‘한국 제약기업이 유독 줄기세포 치료제를 잘 만들기 때문’일까? 아니다. 식약처가 허가한 줄기세포 치료제 중에는 임상시험 사례도 매우 적을뿐더러, 허가 후 안전성과 유효성 확보를 위해 자료 제출을 요구했음에도 마감기한 내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약품도 있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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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참여연대]



바이오․헬스 규제 완화 3법, 

‘혁신성장’과 ‘첨단’ 내세운 규제 완화


의학적 검사와 진료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해야 안전하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자명한 진실은 현실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기업과 병원은 ‘이윤 추구의 자유’를 요구하고, 정부는 ‘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들이 만나는 곳은 언제나 ‘규제 완화’다.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는 ‘암 덩어리 제거’라고 표현했고,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이라고 이름을 바꿨을 뿐이다.


지난 3월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는 “바이오·헬스 규제 완화 3법”이라고 부르는 △첨단 재생의료 및 바이오 의약품법 △의료기기 산업육성 및 혁신 의료기기 지원법 △체외 진단 의료기기법을 통과시켰다. 이들 법안은 작년에 제출됐지만, 그간 시민사회의 반발에 부딪히는 등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이번에 결국 통과했다.


이 가운데 첨단 바이오 의약품법은 바이오 업계의 숙원 법안이기도 하다. 기존 약사법·생명윤리법·혈액관리법 등으로 나뉜 바이오 의약품 규제를 일원화하고, 첨단 재생의료 임상연구 활성화·바이오 의약품 신속 심사 등 규제를 완화하는 게 골자다. 결국 ‘최대한 빨리’ 바이오 의약품을 심사하고 허가를 내주자는 내용이다.


혁신 의료기기 지원법은 △혁신 의료기기 우선 심사 △신 의료기술 평가 특례 등 ‘혁신성을 입증한’ 의료기기를 조기에 시장 진입이 가능하도록 허용한다. 체외 진단 기기법은 체외 진단 의료기기의 빠른 임상시험 승인, 변경허가 조건 완화, 체외 진단 의료기기 정보 수집과 활용 촉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종합하면, 바이오 의약품·줄기세포 치료제 등 재생의료와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술에 대해 검사·심사·허가 요건을 완화하고, 빠르게 시장에 진출해 상품으로 내놓게 하는 것이다. 의약품과 의료기술에 필수적인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은 약화시키고, 관련 산업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특혜를 주는 게 핵심이다. ‘첨단’과 ‘혁신’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규제 파괴다.


이런 규제 완화는 문재인 정부 정책에 기반한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서 ‘신약·혁신형 의료기기 등 신성장 분야’ 집중 지원의 일환으로 첨단 재생의료, 혁신 의료기기 관련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빌미로 원격진료 허용까지 추진한다.


보건의료 부문 규제 완화의 결과는 인보사 사태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유전자 검사 관련 규제 완화는 10년 후 1,000여 명 정도의 고용증가를 낳는다고 한다. 그러나, 규제 완화로 위협받는 생명과 안전, 국민의 부담 증가는 어느 정도일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 STR 검사는 친자 확인에 주로 사용하는 검사로, 유전자마다 가진 고유의 DNA 염기서열 형태를 비교한다. 한 유전자의 DNA 내 염기서열과 다른 유전자의 염기서열 형태를 정밀하게 비교·분석해, 그 유전자로 구성된 세포가 서로 동일한지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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