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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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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화하는 위기

다가오는 전투

 

이주용기관지위원장

 


한 해의 시작점에서는 일부러라도 희망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만, 2019년을 밝게 전망하는 곳은 많지 않은 것 같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부정적인 징후들이 감지되면서 새로운 침체국면이 2019년 하반기 정도부터 가시화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해외 경제지들의 음울한 반응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한국은 이미 2018년에도 주력산업 위기라는 말이 유행하며 투자와 고용 등 경제지표의 하락을 동반해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자본에 대한 노골적인 구애로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의 정체성과도 같았던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스스로 폐기했고 정부의 정책방향에서 남은 것은 온통 규제완화와 자본에 대한 지원으로 가득하다.

2019년 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의 대공세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천문학적 이윤을 축적하고 있는 재벌은 이윤이 떨어지고 있다며 정부에 규제완화와 함께 노동에 대한 전방위 공격을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그대로 실행하고자 한다. 비단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임금체계 전체를 뜯어고치고, ‘ILO 핵심협약 비준이라는 허울 좋은 약속과 달리 노동조합 자체를 무력화하는 노동기본권 파괴 입법시도가 예고되어 있다. 맞서 싸우지 못하면 모든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형세가 펼쳐진 것이다.

 

다시 드러나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취약성

2008년 경제위기가 세계자본주의의 취약성을 폭발적 형태로 드러냈다면, 지난 10년간의 과정은 그 취약한 구조를 연명시키고 재생산하는 기간이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위기 이후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무려 수천 조 원의 돈을 뿌려가며 위기에 빠진 자본을 구제했고, 제로금리나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며 자본이 더 많은 대출을 받아 경제를 활성화시키길 기대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부채와 부실의 규모는 다시 위기 이전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갚지 못하는 취약기업 비중은 2008년 위기를 겪으며 대폭 줄어들었다가 현재는 위기 이전 수준으로 상승했다. 막대한 부채로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들이 자기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실상의 부실채권 규모도 위기 이전보다 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부채와 부실의 위험은 10년간 더욱 커졌고, 더 이상 양적완화나 초저금리로 지탱하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실물경제 둔화로 어떤 취약기업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게 된다면, 연쇄적인 신용위기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국의 통화긴축 흐름은 이 위기를 부채질한다. 2018년에만 미국은 4차례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일정하게 경제가 회복되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제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할 때마다 미국과 전 세계 증권시장이 급락하며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다. 금리를 인상하면 기존 부채의 상환부담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그에 따라 막대한 부채를 쌓은 취약기업 가운데 상승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기업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지고, 그 취약성은 주가폭락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이 2019년에도 3차례 정도의 금리인상을 시사하면서 이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은 불안정성을 높이는 요소다. 2018년 미국의 대규모 관세부과로 시작된 무역 갈등은 연말에 이르러 양국이 협상국면에 접어들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지만 이 문제는 결코 관세나 수출입 물량을 일부 조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무역 갈등의 배경에는 중국이 해외로 대규모 자본수출을 통해 팽창하고(‘일대일로’) 최첨단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중국제조 2025’) 세계경제질서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국가전략이 미국의 세계패권과 충돌하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가령 2017년 말 미국은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해 중국을 명백한 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무역 갈등은 일시적 봉합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갈 수는 있으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정치·군사적 충돌은 계속될 것이며 교역의 위축은 실물경제를 둔화시킨다. 이것이 축적된 부실, 부채와 맞물리면서 위기를 낳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한국경제: 이윤율 하락과 자본의 공세

2017년 말에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경제성장률이 3%를 유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정부 스스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고 2018년은 2%(2.6~2.7%) 성장에 그친 것으로 예상되며 2019년에도 3% 성장률은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기침체의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주력산업의 업황부진이다. 가령 근 몇 년간 민간소비는 별다른 변동 없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지만 2017년 대폭 상승했던 설비투자가 2018년 바닥을 쳤다. 2017년 설비투자를 이끌었던 것은 반도체부문이었다. 당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자 대규모 라인증설을 비롯한 경쟁적인 설비투자가 이어졌지만, 이후 공급증가로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도 줄고 이윤율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여기에 세계 반도체시장 성장률이 201721.6%, 201815.9%에서 2019년에는 2.6%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2019년 경제정책방향)이라 추가적인 설비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자동차부문은 산업 차원의 재편과 맞물리며 전망이 불투명하다. 전세계적으로 GM과 포드 등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차·자율주행차로의 전환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일차적으로 자동차 부품산업에서의 구조조정이 가시화할 수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로의 전환은 기존처럼 완성차 회사를 정점에 둔 중소규모 하청부품사체제가 아니라 전장·배터리 등 핵심 기술을 가진 거대 부품사체제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삼성, SK, LG 등 상위 재벌들이 미래차 부품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반대로 말하면 미래차 기술을 보유하지 못하는 중소 부품사의 경우 언제든 구조조정의 압력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현대차의 영업실적 축소와 맞물려 국내 부품사 구조조정은 시작되고 있다. 현대차 1차 협력사 가운데 도산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산업부 분석에 따르면 상장된 부품기업 90곳 중 적자기업이 20156개에서 201831개로 증가했다. 상장 부품사 1/3이 적자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부품사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 방침을 세워놓은 상태다. 201812월 정부는 <자동차 부품산업 활력제고방안>을 발표해 신속한 구조조정과 더불어 부품기업의 대형화·글로벌화, 미래차 전환 지원 확대 등을 천명했다. 이미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대형 부품업체 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기존 부품사 노동자들은 산업재편과 정부의 방침이 맞물리면서 2019년 구조조정 압력에 놓일 위험이 있다.

물론 업황부진이나 어닝쇼크(영업실적의 대폭 하락)같은 표현은 철저히 자본의 입장에서 사용된 것이다. , 삼성전자와 현대차 영업이익이 하락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절대적인 수치에서 이 재벌대기업들은 수 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다. 상위 20대 기업의 영업이익 총액은 전년보다 12조 원 증가해 무려 128조 원을 기록했다. 이들은 이윤율 하락이 곧 위기라며 지금보다 더 높은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상대로 구조조정을 포함한 각종 공격을 정당화하려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이냐 노동자의 생존이냐를 두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노골적인 친자본 노선으로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을 앞둔 문재인 정부는 경제지표 하락에 동반한 지지율 추락까지 겪고 있다. 이를 반등시키려는 문재인 정부는 가시적인 지표 반등을 위해 민간자본 투자 독려와 규제완화 등 전면적인 친자본 기조를 표방하고 있다. 2년 전 국정농단 공범으로 국회 청문회에 단체로 불려갔던 재벌총수들이 최근 청와대로 초청받아 대통령과 환담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하반기부터 혁신성장을 정책기조 전면에 배치하면서 의료서비스부문 규제완화와 재벌대기업에 대한 투자요청에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은 문재인 정부의 노골적인 자본친화적 기조를 총체적으로 망라했다.

정부는 민간자본 활성화를 명목으로 현대차그룹의 삼성동 사옥(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건설 등 대기업 투자를 지원하고 나아가 모든 공공시설을 민간자본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사업타당성 분석도 간소화해서 민간자본 투입을 더 용이하게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규제완화 정책으로는 보건의료와 교육 등 사회부문의 영리화를 부추기는 서비스산업발전법을 추진하고, 이른바 규제샌드박스제도를 통해 기업이 요구하는 안전규제까지 모두 제거할 수 있도록 열어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표방했던 재벌개혁은 완전히 유실될 것이다.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가 우선순위로 제시한 16대 과제 가운데 재벌과 관련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주로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독려하는 제도들인데, 이는 총수일가의 지배권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조차 재계가 경영권을 위협한다고 호들갑을 떨자 여당인 민주당은 차등의결권’, 즉 총수일가의 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특혜제도 도입을 당론으로 정했다. 결국 총수일가의 지배권을 보장·강화하고 그 대신 투자를 요청하는 완연한 친재벌 기조가 2019년을 지배할 것이다.

 

노동에 대한 공세의 절정, 그러나 동요하는 노동운동

자본의 이윤율을 높여주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노동에 대한 공세를 수반한다. 이미 지난해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한 휴일수당 삭감,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에 따른 최저임금 삭감이 이뤄졌다. 2019년에는 정부의 친자본 노선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만큼 노동에 대한 공세가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가오는 2월 탄력근로제 확대로 노동시간 단축을 무력화하는 개악입법이 예고되어 있으며 최저임금 결정구조까지 바꿔 또다시 최저임금을 억제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의 경우 임금구간을 미리 설정해 인상폭을 제한하고,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사항으로 추가해 재벌의 막대한 이윤축적은 그대로 둔 채 중소영세 사업장을 핑계로 최저임금 인상을 막으려는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나아가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한다는 방침을 명시하고 공공부문에 먼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연공급제를 해체해 임금상승을 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종간 차별을 고착화하면서 특히 저임금·비정규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구조적으로 지속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관련 위원회를 설치해 직무급제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중대한 전투는 노동기본권을 둘러싸고 벌어질 것이다. 2019ILO 100주년을 맞아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6ILO 총회에도 참석하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상반기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는 핵심협약 비준이라는 공약과 달리 자본 측의 요구를 수용해 노동기본권을 거래하고 대폭 후퇴시키려는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얼마 전인 125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경사노위에서 자본 측의 추천을 받은 공익위원들이 들고 나온 안을 보면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신설, 사용자 측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금지, 쟁의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파업 금지 등 노동조합의 기본적 권리들을 박탈하고 자본의 대표적 부당노동행위인 노조파괴를 합법화하자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렇듯 정부와 자본은 때로는 자신들이 만든 사회적 대화의 틀조차 무시하고 개악입법을 국회를 통해 강행하려 하거나(최저임금 개악, 탄력근로제) 경사노위를 활용해 개악의 명분으로 삼고 기본권을 거래하려 한다. 문제는 노동자의 삶과 권리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이 공격 앞에서 노동조합 지도부가 정부의 사회적 대화 공세에 경도되어 있는 현실이다. 최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 건이 통과하지 못하면서 다시 한 번 유예되었으나, 현 지도부는 민주노총에 대해 더욱 거세질 이데올로기 공세와 개악입법, 그리고 사회적 대화에 대한 집착 속에서 동요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에 대한 전면전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강력한 투쟁을 만들지 못하고 흔들린다면 노동조합은 노동자들로부터 존재 의미를 의심받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정부와 자본의 꽃놀이패에 이용당할 것인가, 맞서 싸워 지켜낼 것인가. 이것이 2019년 노동자들의 운명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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